경운기를 탄 스승 요다
겨울 추위로 얼어붙은 동네는 어디를 둘러봐도 고요하고 또 차분하다. 자갈투성이 땅을 부지런히 갈아엎는 두더지 말고는 삽을 든 농부도 안보이고... 군내버스조차 경적도 없이 조용히 지나쳐 간다. 시골에 살다보면 심심해 죽겠는 날이 종종 있게 마련이다. 엊그제가 바로 그런 날 중 하루 같았는데, 해거름 때 느닷없는 경운기 발통 걸린 소리가 산촌을 무너뜨릴듯 왕왕거렸다. 커겅컹 개 짖는 소리까지 합세하니 문밖에 나가볼 수밖에.
웬걸, 아니 왠 걸(girl)? 송정댁 할매가 털목도리를 친친 감고서 경운기 위에 올라타 계셨다. 장날도 아닌데 무슨 사정이신지. “최씨 양반이 내가 집에만 바캐있다고(박혀있다고) 바람 쐬자등만이라. 갱운기로 쌔앵하니 요 아래까지 놀다왔소. 새로 장만한 갱운기라 시한(겨울)이라도 한바꾸 돌려줘야 쓴담시로.”
뚜껑 열리는 스포츠카가 뭐 따로 있겠나. 뻥 뚫린 하늘을 벗 삼아 내달렸을 경운기. 동네에서 가장 예쁜 할멈을 골라 태운 뒤, 간만의 드라이브를 즐기신 최씨 영감이 훈훈한 낯빛이로다. 서로들 혼자되어 가족처럼 의지하는 이웃. 내가 요다 아재라 부르는 최씨 아재는 내 작업실 뒷산에 쓰러져있던 소나무 한 둥치를 경운기에 싣느라 낑낑대고 계셨다. “오늘은 울동네 미스코리아랑 드라이브도 해붔고 나뭇짐도 한차 쟁앴으니 아조 큰 부자가 된 날이랑게. 퍼허!” 최불암식 웃음소리가 냄새나는 입김이랑 나란히 공중에 퍼져나갔다.
“별빛이 흐르는 저기 저 호수를 건너면 누구도 찾지 않는 더러운 내 집이 보이네. 아무도 없어도 혼자 밥 먹어도 괜찮아. 얼굴 좀 파랗고 키가 좀 작아도 괜찮아. 지나가는 연인 날보고 웃어도 괜찮아. 900년 동안 애인 없었지만 괜찮아.”(타바코 쥬스 노래 '요다의 하루'에서)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 전사들의 스승 요다... 아재는 죄고만 키에 주름진 미간과 우뚝 솟은 귀, 엉뚱하고 개구진 일상이 영화 속 요다와 판박이로 닮았다. 요다처럼 최씨 아재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사시는 분. 전자 검 대신 도끼를 치켜들고서 마른 나무둥치를 잘게 뽀개어 쟁이셨을까. 아궁이 군불을 지피고 고구마라도 몇 개 던져두었으리라. 낮의 달고 오진 데이트와 온온한 세월을 감사하면서 이른 저녁잠을 청하고 계실지도. 나도 좀 아재처럼 웃음 짓고 살면서 무사태평 코골며 잠들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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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목사. 수필집 <참꽃 피는 마을>, <앵두 익는 마을>, 음반 <멜랑콜리맨>, <여행자의 노래>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