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흘러가는 떠돎의 길
“근래에 와서 그가 무척이나 변해 나이에 비해 늙어보였다. 방랑과 떠돌이 생활이 준 고초가 겉늙게 만들었으리라” (헤르만 헤세, 지와 사랑)
문을 활짝 열고, 창문을 열고 바람 맞으며 달려가는 여행자들, 고초에 전 얼굴 주름 사이로 먼지가 잔뜩 끼어있구나. 캠핑카 지붕에 매달려 가는 사람들은 짐가방에 머리를 묻고 쪽잠을 청한다. 구름이나 바람이나 물이나 철새처럼, 저마다 흘러가는 인생이여...
삶은 얼마나 허허롭고 욕망은 또 얼마나 부질없는 무엇이런가. 사막의 교부 제노 아빠스는 제자가 되기를 청하는 어린 벗들에게 이처럼 말했다. “흘러가라! 흘러만 가라. 유명한 장소를 좋아하지 말아라. 유명한 사람의 제자가 되려고 하지도 마라. 수방(기도방)을 지을 땐 어떤 튼튼한 돌기초도 놓지 말아라.”
주름이라곤 하나도 없는 팽팽한 얼굴, 기름기 줄줄 흐르는 얼굴로 휘황한 사원에서 격조 높은 성가를 감상하는 이들은 모른다. 정녕 모른다. 겉늙은 얼굴을 하고 사막횡단 캠핑카에 올라탄 예수의 저 떠돎을... 저 떠돎의 이유를...
(20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