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교회
임의진(시인, 목사)
버려진 듯 허물어진 시골 교회가 있었다. 강진 다산초당 옆마을. 과거부터 현재까지 맨 앞줄에 쳐줄만큼 널리 알려진 유배지. 아무도 선뜻 찾아나서기 어려운 먼 길, 여행조차 두려운 땅끝 마을. 그곳은 내 탯줄을 묻은 고향이기도 했다. 게다가 아버지 목사님이 목회를 은퇴하신 뒤 거기 머물고 계셨다. 고령에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모실 아들은 나 혼자 뿐이었다. 서울에서 머물던 젊은 날, 나는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으로 몸을 던지며 살았었다. 그러다가 건강을 잃고 지쳐했으며 마음도 어디 둘 곳 없어 외롭게 휘청거리던 나날이었다.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가 그랬던 것처럼 도심의 게릴라로 만족할 게 아니라 산골에서, 변방에서 자유롭게 춤추며 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 찬 어느 날 밤, 갑자기 내 손은 마음보다 빨리 이삿짐을 싸기부터 시작했다. 땅끝 마을까지 내려갈 차편을 마련해 이삿짐을 싣기 시작한 순간은 아득하고 두려웠으며 한편 상쾌한 심정이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양의 책들과 몸을 누일만한 숙소가 필요해 가축 창고를 방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마치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 마굿간 풍경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은 몇 달 못있다가 도망칠 것이 뻔한, 예쁘장한(?) 청년을 그저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하셨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시골살이는 너무나 심심했다. 첨엔 놀만한 동무도 없고 사람 목소리도 그리워서 라디오만 줄창 들었다.
일요일엔 할머니들이 예배당을 찾았다. 걸핏하면 할머니들은 예배 중간에 조퇴를 했다. 소낙비가 온다고 조퇴, 빨랑 고추 쓸어담아야 한다고 조퇴, 오일장에 가야 한다며 버스 시간 됐다고 조퇴... 어떤 할머니는 집에서 지갑을 안가지고 오셨다면서 목사인 나에게 헌금 시간에 낼 연보 돈까지 꿔갔다. 물론 돈도 갚지 않고 인생 조퇴하시어 나는 기필코 천국에 가봐야 한다. 내게 돈을 꿔간 할머니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이자까지 받아내야 할 돈이 솔찬하다.
할머니들은 때로 너무 귀여웠다. 새벽예배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남의 담장에 매달린 호박을 몰래 따가지를 않나. 수박밭이나 오이밭에 몰래 들어가기도 했다. 들킬까봐 엄청 빠른 속도로 줄행랑 내빼시는 모습은 기가 막혔다.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군내버스가 있음에도 기어 날더러 데려가 달라면서 떼를 썼다. 나이가 들면 어린 아이가 되어간다더니 날마다 징징징. 웃는 모습보다는 어디가 아프다, 쑤시다, 누가 싫고 밉다, 만날천날 투정 섞인 말들... 한뼘이나 튀어나온 입술들... 내 재롱으로는 좌우튼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분들 곁에 있으면 웬일인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삶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유로워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교회 이름을 <남녘교회>라 새로 지었다. 감옥에서 방금 나오신 ‘쇠귀 신영복’ 선생님이 글씨를 써서 보내주셨다. 그래서 예배당 입구에 조그맣게 내걸었다. 남녘땅에 있으니 남녘교회. 교인들과 새 이름을 가지고 감사예배를 드렸다. 다같이 일어나 춤을 추자 했다. 내 아호가 어깨춤이니만큼 나는 맨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 내가 베들레헴에 태어날 때에도 하늘의 춤을 추었다. 춤춰라! 어디서든지. 힘차게 멋있게 춤춰라. 나는 춤의 왕.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 속에 너 인도하련다. 높은 양반들 위해 춤을 추었을 때 그들 천하다 흉보고 비웃었지만 어부 위해서 춤을 추었을 때에는 날 따라 춤을 추었다.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춤췄더니 높고 거룩한 양반들 화를 내면서 나를 때리고 옷을 벗겨 매달았다. 십자가에 못 박았다. 높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춤을 계속 추기란 힘이 들지만 끝내 땅속에 깊이 묻힌 이후에도 난 아직 계속 춤춘다. 어리석게도 그들 좋아 날뛰지만 나는 생명이다. 결코 죽지 않는다. 네가 내 안에 살면 나도 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살련다. 춤춰라! 어디서든지. 힘차게 멋있게 춤춰라. 나는 춤의 왕.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 속에 너 인도하련다.... ”
‘춤의 왕’이라는 이 노래는 함석헌 선생님, 문익환 목사님, 안병무 선생님, 서남동 선생님, 내 마음의 스승들이 좋아하셨던 퀘이커 교도들의 찬송이었다.
나는 예배 간판아래서 춤을 추며 이 노래를 불렀다. 남녘교회는 그렇게 춤으로 시작되었다.
어떤 날은 강아지똥 권정생 아저씨의 편지로 설교를 했다.
“점쟁이가 부적을 나누어 주듯 허수아비 하느님을 들고 다닌 선교사들은 이집트의 마술사 노릇밖에 더한 것이 뭐 있습니까. 지금 강대국이라고 일컫는 나라. 지금 가장 평화로운 척 살고 있는 나라. 지금 부자인 척, 민주주의 국가인척, 약소 국가를 어르고 달래고 음험하게 공갈 협박하며 잰 체하는 나라 쳐 놓고 파라오의 막강한 군대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 솔직하게 인정합시다. 거기에 무슨 하느님이 있고, 복음이 있고, 사랑과 축복과 우정이 있단 말씀입니까.... 갈릴리 들판에서 그가 자기 민족의 수난사를 공부했듯이 우리도 하느님과 함께한 우리의 민족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칩시다... 얼이 빠진 인간은 제 모습이 어떤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가난하고 어질고, 큰 것보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겼던 우리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리석고 순하기만 하면서도 제 주인의 모습을 똑똑히 구분해서 따라갈 줄 아는 똥개는 될지라도 들쥐 같은 백성은 절대 되지 말라고 가르치자는 것입니다.” (권정생 <월간 목회> 기고글)
그나마 참된 주인을 알아보는 똥개라면 몰라도 들쥐가 되어선 안 된다는 각오를 뜨겁게 새기면서 목회에 집중했다. 근본주의적인 성서이해에 사로잡힌 교인들과 논쟁이 생겨나기도 했다. 몇몇은 자기 생각과 다르다면서 빨갱이 목사 어쩌구 하시며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예수님도 싫다고 떠난 청년이 있었는데 나라고 무슨 수로 말려. 그냥 나는 내 길을 차분히 갈 뿐이었다.
예배가 너무 많아 귀하고 달지 않다는 생각에 일주일 딱 한번 예배를 드리자 했다. 삶 전체가 예배일 수 있도록 하자 했다. 동네 아이들을 위해 <남녘학교>를 열고 우리 겨레의 역사와 우리 가락 노래를 찬찬히 가르쳤다.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여 모았던 음반이 있어 읍내 청년들에게 월드뮤직 강좌도 열었다. 여름엔 아이들을 위한 미술학교, 또 때마다 가수 친구들을 모시고 음악회를 몇차례씩 가졌다. 성탄절엔 온동네 사람들과 영화도 한편씩 보았다. 남녘교회를 사랑하는 싯맑은 사람들이 찬찬이 늘어갔다. 교인들 보다는 교회를 지독하게 싫어했던 사람들이 남녘교회를 더 아끼고 반겼다.
마당엔 가득 꽃씨를 뿌렸고, 조그맣게 손바닥만한 농사도 지었다. 예배당은 수리하여 비로소 광택이 반질반질 났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말고 주민들이 자기 집인양 맘대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예수쟁이 자기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점차 주민들, 여행자들의 교회가 되어갔다. 순례자들이 넘치는 교회. 일요일엔 예배당이 꽉차는 일이 잦았다.
목사는 진리를 증언하는 메신저이지 사회복지사는 아니렷다. 착한 일을 하고 주민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목사 아니고도 주변에 많다. 목사에게 그만큼 설교하는 일은 중요한 사명이어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출타를 줄이며 설교 약속을 지켰다. 멀리 여행을 가서도 돌아오는 시간엔 성서를 꼼꼼히 살펴 설교 준비에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 할매들 몇분 계신다고 소홀하게 여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할머니 교인들은 내 설교를 금방 까먹었다. 예배 땡 끝나고 곧바로 댓바람에 날려버렸다. 예전처럼, 아니 주변의 교회들처럼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기도하고 찬송하며 ‘과잉 흥분’하고 싶어만 했다. 다른 교회처럼 은혜 좀 받게 부흥회도 하고 그래야지 왜 안하냐며 만날 따지셨다. 오래고 오랜 습성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도 여전히 그 긴장은 지속되고 있는 중이렷다.
나는 큰소리로 기도하는 것에 질색하는 사람이다. 박수치며 찬송하는 것도 흑인영가를 부르는 흑인교회 말고는 내 취향이 아니다. 설교도 웅변조가 아니라 나직한 친구의 음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평소 사랑을 얘기하면서 노예근성에 빠지게 만드는 짓에 단호했다. 도움의 손길보다 의지의 용맹함을 키우시라고 부추겼다. 외부의 지원이나 원조에 빠지지 않도록 교회 스스로 자립하자며 독려했고, 목사인 나부터 생활비를 받지 않아 교회의 부담을 전폭적으로 줄였다. 그래 지금껏 자비량으로 섬겨오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목사의 호구책이 되고, 밥벌이 사업이 되어선 절대로 안 될 일이다. 봉사와 희생으로 이 시절인연을 다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한해 두해 흘러오면서 내 뜻에 찬동하는 분들이 생겨나니 반갑다. 오로지 영성가 ‘안젤라 아리엔스’의 말에 귀를 기울인 은총일 게다.
“드러내라. 집중하라. 당신의 진실을 말하라. 결과에 연연해하지 말아라.”
그리고 페루의 해방신학자 ‘구띠에레즈’의 충언에도 마음을 집중하며 이 현장에 서 있다. 이 차갑고 시린 폭풍의 언덕, 그래도 당당한 친구들이 사는 남녘에...
“사랑하기 위해 진실을 말하고, 사랑하기 위해 자유롭게 되라!”
(2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