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장 한눈 팔지 않기
내 무죄함을 밝히시는 하느님, 부르짖사오니 들어주소서. 이 곤경에서 나를 빼내 주소서. 불쌍히 여기시고 내 기도를 들으소서.
너희, 사람들아! 언제까지 나의 영광을 짓밟으려는가? 언제까지 헛일을 좇고 언제까지 거짓 찾아 헤매려는가?
알아두어라, 야훼께서는 경건한 자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내가 부르짖으면 언제나 들어주신다.
무서워하여라, 다시는 죄짓지 마라. 자리에 누워 반성하여라, 고요를 깨지 마라.
제물을 바쳐 죄를 벗어라. 그리고 야훼만을 의지하여라.
"그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줄까?" 하고 말하는 자가 많사오니, 밝으신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야훼여.
이 마음에 심어주신 당신의 기쁨, 곡식이다, 포도주다, 풍년에 흥겨운 저들의 기쁨보다 크옵니다.
누운즉 마음 편하고 단잠에 잠기오니, 야훼여, 내가 이렇듯 안심하는 것은 다만 당신 덕이옵니다.
나뭇잎 요람마다 아기 예수 같은 희망이 움트고 풀꽃들 다투어 벙글고 있을까. 만물이 새라새롭게 일어나는 봄날, 돌고래 먼발치서 뛰어노는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엔 연일 사이렌소리와 발파, 화약 냄새로 역하더라. 나는 며칠 동안 기도회와 미사를 쫓아다니며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바닥까지 조아렸다. 언제부턴가 자색 스톨을 걸치고 목소리를 내는 일이 부끄러워 입에는 자갈을 물고, 엉덩이와 무릎엔 흙을 묻힌 채 자매형제들 곁에 앉아있다. 내 옆자리엔 나처럼 수줍음 많은 이웃들, 손을 맞잡고 생명과 평화의 단잠을 주님께 청하며 눈물로 기도하였다.
시편의 여기 말씀처럼, 평화와 안정(안심)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지 군사력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이집트제국도 하느님의 사람 모세 한사람 앞에 와그르르 무너졌다. 열 가지 마술시합(출애굽기 7-13장)에서 하느님이 보여주신 대자연의 위력은 그 어떤 군사무기와 해군기지 공군기지로도 당해낼 방도가 없는, 속수무책 멸망뿐이었다. 이는 제국의 위용 넘치는 군대를 무릎 꿇린 자연의 승리라 할 것이며 떠돌뱅이 노예들의 값진 승리요 평화세력 민주주의의 최후 승리였다.
누차 말하건대 진정한 기쁨, 참된 위로와 행복, 발 뻗고 누워 안심하는 단잠은 하느님이 동행하는 삶이라야 가능하다. 유대 땅에선 명절마다 ‘하그 싸메아흐’라고 서로들 인사한단다. ‘기뻐하다’는 뜻의 이 말. 기쁨의 동사형이자 형용사형인 ‘싸메아흐’를 서로 나누면서 이 기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지긋 입술을 깨무는 것이다. 유리하고 방황하는 떠돌이 백성을 거두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찬미하는, 염치가 있고 은혜를 아는 사람들!
오! 기쁨의 뿌리는 하느님이고, 기쁨의 열매는 예수님이렷다. 신의 현현(deus incarnatus)은 이집트 파라오왕도 로마제국의 시저도 네로도 분봉왕 헤로데도 아니었다. 하느님은 떠돌이 히브리 백성과 양치기 다윗과 목수노동자 예수와 갈릴래아 민중으로 나타나셨다. 하늘의 영광, 땅에서 평화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군대와 저 시커먼 기지촌에서 비롯될 리 절대로 없다. 허구헌날 헛일을 벌이고 거짓말을 놀리는 혀로 속임수를 쓰는 자들, 그들은 하느님 대신 돈, 평화 대신에 군대를 섬기는 악인들이다. 부디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 회개해야 살리라.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슈마 트랄라티) 애타게 주님을 찾다가 곧바로 ‘들으신 것을 믿나이다’(이슈마)라고 못을 곧바로 박아놓는 이 순박하고 동심 가득한 믿음.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리라(비트후 엘 아도나이)! 이 당차고 굳센 의지(5절)... 방울새의 눈알처럼 방울방울 반짝거리는 이 단단한 신뢰와 순종... 대개 사람들은 허풍쟁이에 속아설랑 오로지 곡식과 포도주와 풍년, 경제 성장과 번영과 군사력 증강과 부흥만을 좇고 거기서 기쁨을 구하려 든다. 하지만 시인은 진실과 정의를 좇아 살아가는 사람을 복주시고 돌보시는 주님에게서만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시인의 이러한 믿음은 세속 권력자들의 눈으로 볼 때 바보스럽고 엉뚱하며, 때로는 반역이고 모반처럼 비춰질 것이다. 세속권력의 달콤함을 거절한 바보 예수의 하느님나라 운동이 왜 십자가 수난으로 귀결 되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제물을 바쳐 죄를 벗어라’(5절)는 구절은 공동체 회복, 마을 구원을 약속하는 말씀이다. 이 제물제사는 공동 식사로 이어지는 밥상공동체다. 밥으로, 제물로 ‘서로 하나가 된’(헤세드 웨에메트)관계는 한 식구, 한 식솔, 한 운명의 공동체다. 이런 제물 제사를 ‘셀레밈’이라 하는데, 제물을 먹고 마시며 나누는 공동체 식사가 의식의 가장 절정부다. 계약 제사라 하여 ‘베리트’라고도 하는데, 계약을 앞둔 상대편에게 호의를 얻기 위한 태도로(창세기 32, 13-21) 정성을 다한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제물 그 자체가 아니라 ‘제바헤 체데크’를 원하신다. 불화와 불의가 아닌 '평화'와 ‘정의’를 바치는 제사를 원하신다. ‘제바흐’, 곧 의로운 사람, 경건한 삶의 자세는 주님께서 가장 바라는 것이며, 감사제사 때마다 반드시 요구하시는 영적 제물이다.
성경 여러 곳에서 주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달랑 물질 뿐인 제물과 예물을 바라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다. 대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고 주님 말씀 앞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마음 다한 순종을 확인하기 위해 제물을 바쳐 죄를 씻으라고 명하신다. 그래 순종이 확인되면, 그제서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축복하시고 하늘의 평화를 풍성히 선물하신다. 예수는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의 평안과 다르다”(요한복음 14, 27)고 말했다. 그대는 이 다른 평안, 참 평안을 맛보고 싶지 않으신가.
낭랑히 부르짖어 주님을 깨우는 이는 누구란 말인가. 묵묵부답인 잠든 신을 깨우는 의식은 근동지방에 더러 산재해 있던 풍습이었다. 채소의 신(deity of vegetaion)을 깨우는 주술의식이 그 한 가지 예다. 식물, 작물이 있는 곳에 잠자고 있는 정령을 깨우는 농사 의식(열왕기상 18, 27)은 여기 시편에서 하느님을 깨우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렇지만 히브리 떠돌이들의 하느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 항시 눈을 부릅뜨고 가련한 당신 백성들과 구럼비와 돌고래와 말똥게를 지키신다. 죽임에서 살림으로, 전쟁에서 평화로, 거짓에서 진실 가운데로...
주님의 얼굴을 뵈며 우리는 안심한다. “주님 안에 피난처를 둔 사람은 모두 행복합니다!"(아슈레이 콜 호쎄이 보)... 쓸쓸하고 어수룩한 당신을 안심시키는 이 말씀, 피난처!(시편 2, 12)... 우리의 피난처는 반공으로 무장한 투철한 안보관도 거대하게 조성되는 해군기지도 공권력을 앞세운 공안 정부도 기계문명의 신기루 핵원자력도 시멘트 보로 가두어놓은 4대강도 아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오직 주님 한 분 뿐이시다. 주님의 진실과 주님의 정의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피난처요 기쁨인 것이다. 그대여, 부디 한눈 팔지 말기를!
-----------
임의진은 시인, 수필가다. 남녘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위원이다. 펴낸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