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로 쏟아져 나온 추수꾼
창포빛 하늘이 눈뜬다. 어서 일어나 추수하라며 새가 와글다글 우짖는 아침이다. 어떤 여행가가 이런 말을 했단다. “새와 책이 다른 말을 한다면 그대는 새의 말을 들어라!” 이 아침 나는 자연의 곁에서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을 일으키는 새소리에 부지런을 떨고 일어선다. 우렁우렁한 목청에 정신머리를 버쩍 차린다.
나는 새의 말을 들으려고 성서를 잠깐 덮었는데, 그 때문인지 본문의 말씀이 안경너머 가슴으로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를 말하는 것이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요 추수 때는 세상이 끝나는 날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추수 때에 가라지를 뽑아서 묶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끝날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마태 13, 37-40)
만신창이 병든 몸이지만 일으켜 추수를 시작하는 천사들... 병들고 늙은 농부들을 바라볼 때 나는 세상 끝날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스산한 바람에 서둘러 몸을 떨구는 낙엽 같은 농부들... 그래도 남은 사람들 몇 있어 들판엔 추수가 아주 간신히, 어렵사리 가능한 형편들이다. 과연 가라지는 뽑고 추수를 하고 있는 것일까. 빈천하고 빈한하기 짝이 없는 추곡 수매가로 해마다 가슴 아픈 농부들은 위정자를 비롯 세상을 바라볼 때 모두 가라지로만 보일 것이다.
한미 FTA는 이 겨레 농민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경운기 밧줄로 목매고 죽을 농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땅은 하늘의 것이요 농부들의 것인데, 강남 노른자위 땅을 비롯하여 권력자와 일가가 차지한 땅은 금싸라기 비싼 땅에 드넓기도 하시다.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떼를 빼앗아 기르며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욥기 24, 2-4)
그들은 경계표를 수시로 옮기면서 농부들을, 가난한 자들을, 아니 천사들을 이 땅에서 추방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역겹게도 매일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나눔에 인색한 부자들은 낙타도 바늘귀를 통과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 8) 선언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눈씻고 찾아볼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말했다 치더라도 또 다른 꼼수를 쓰고, 사익을 노리며 비자금을 감춘다.
요한 웨슬레 목사는 3대 경제 원리를 설파하면서 “최선을 다해 벌어라. 최선을 다해 근검절약하라. 최선을 나해 나누라”고 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최선을 다해 돈 버는 일만 했을 뿐 근검 절약도, 나눔도 없는 생지옥이었다. 뉴욕의 경제중심부 월가를 타깃으로 자본주의 반대시위가 전 세계로 엄청난 파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추악하고 추잡한 자본 놀음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농부와 노동자들, 실직자들, 희망을 잃은 어린 세대들이 가세하고 있다.
이사야 5장을 보면 빚에 치인 농민들을 괴롭히며 포도원을 지속적으로 사들이는 지주들을 고발하고 있다. 이 지주들을 물리칠 이는 물론 소작농 농부다. 가라지를 불에 태우는 일을 하는 사람도 소작농 농부이리라. 약탈적인 제사장 지배자들, 그들의 피신처 월가를 비롯한 저 웅장한 건물들이 속히 무너지게 되리라 했다. (마가 13, 1-2) 교회 건물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송장처럼 변두리에 버려진 무지렁이들이 캐캐 잔기침을 하고서 밖으로 뛰쳐 나오고 있다. 우둘투둘 씨방에 갇혀 숨죽이던 꽃씨들이 오랜 침묵의 고막을 터트리며 빠져나오고 있다. 마침내 가라지를 불태우고 신세계에 평등 평화의 꽃을 피울 것인가.
돌볼 사람 하나 없는 고향집, 고구마와 감자가 영글고 도랑에 물닭이 알을 낳고 살던 시골에 다시 사람냄새 나는 군불이 피어날까. 추수꾼들이 그러모은 가라지를 밑불로 삼아 춥고 가난한 집집마다 차가운 방을 뎁힐 수 있을까. 끝없는 사리사욕, 과연 끝낼 수 있을까.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이 풍랑 나 때문이라
어떤 냉혈한 개혁가 수피가 길을 걷고 있었다. 무지한 대중이 수피를 향해 이단자라고 비난 하면서 돌을 던졌다. 그러나 수피는 오히려 기운을 다해 일어나 가던 길을 마저 갔다. 그러자 어떤 지혜로운 수도원장이 장미꽃을 꺾어 수피를 내리쳤다. 수피는 데구르르 구르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장미 채찍을 맞은 수피는 오만한 얼굴로 개혁을 외치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 풍랑 나 때문이라!”(요나 1, 12)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도 받아들여 자성하며 성찰하고, 진리의 가르침에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몸부림쳤다고 한다.
직설적인 비판은 아프지 않지만 간접적인 유머를 통한 비판은 매우 아픈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나는 꼼수다’ 라는 유머러스한 인터넷방송은 기성정치계는 물론이고 국민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꼼수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직업이 목사님인 게 참 ‘거시기’하다. 뿐만 아니라 피디수첩을 통해서도 적나라하게 부패한 대형 교회의 면면이 드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부끄럽게 불편하게 만들었다. 개구리도 자기가 사는 우물의 물을 다 마셔버리지 않는데, 대형교회들은 지금 이 땅의 모든 물을 마셔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 세대 선교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짧은 역사를 딛고 주류 세력이 된 한국교회에겐 이제 주님의 집을 지키는 개가 아니라 자본의 집을 지키는 개가 필요한 모양이다. 그런 일부 목사님들이 기독교가 손해를 보고 있다면서 정당까지 세우고, 이웃종교와 북녘 이웃과 가상의 사단 세력(?)을 향해 정치적 대결국면을 펼쳐 나가고 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그것을 짓밟고 돌아 서서 너희를 물어뜯을 지도 모른다.”(마태 7, 6) 개와 돼지들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도 모자란지 돌아서서 물어뜯고 있는 형국이다.
바람은 불어 뽕나무 회양나무 침엽수 복숭아나무를 흔드는데 저 홀로 흔들리지 않겠다니, 무슨 수로... 회개의 바람, 자성과 성찰의 바람이 우리 안에 가득 불어재끼는 시대임을 거부하겠다니, 무슨 수로...
“요나는 자기를 바다에 집어넣으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야 바다가 잔잔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태풍을 만난 것은 내 탓인 줄 압니다.”...” (요나 1, 12)
요인을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개혁을 외치고 변화와 혁명을 꾀하는 이들은 요나에게서 배워야 한다.
요나의 회개가 마침내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로 이어진다. 먼저 희생하고, 죄책을 고백하는 삶이 세상을 바꾼다.
이 풍랑은 너 때문이다, 이 수모는 너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다. 자본의 일반화 경향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에서 교회는, 그리고 목사 신부 목회자들은 주술적 힘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당면한 죄상을 고백하고 이 풍랑의 원인을 내부에서 가혹하게 찾아야 한다.
소모적인 이념 논쟁과 남진(전쟁)의 두려움도 떨쳐버려야 한다. 북한 노동당 아니라 공산당 할애비가 무슨 묘수를 쓴다고 하더라도 강고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쉽게 무너뜨리지 못한다. 일찍이 구시대 전쟁무기로 벌인 동족간의 전쟁으로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지금은 한순간에 뼈도 못추리고 사라질 핵무기가 난무하는 시대이고,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단 하루만에 태평양 경제는 물론 세계 전체가 와르르 무너진다. 종교 생활에 관대하지 못한 북한 체제에 무서워 벌벌 떨고 교회가 당장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하는데, 저들의 고립과 기행을 만들고 부추긴 쪽이 남한식 자본주의와 화해 용서 나눔을 잊은 교회였다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좌파 척결 운운하지만 우리 안에 비인간화 자본 숭배는 더 심각한 죄상이다.
종을 떠난 목소리는 온 사방으로 퍼트려져 꽃이 되고 불이 되고 샘이 되고 숲이 되고 별이 되리라. 예수 복음 종소리는 사방에 퍼지기 전에 먼저 세게 자기 머리를 부딪치고 아파하는, 자기 회개가 우선이며 시작이다.
이 풍랑은 내가 원인이라고 말하면서 모두를 대신하여 죽을 것을 자처하는 요나. 이런 요나를 보시고 하나님은 분노를 거두셨다.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고, 마침내 위대한 선지자 요나로 다시 살게 하셨다.
녹색 별엔 녹색 교회
나비를 날려 보낸 가을바람이 스산하다. 푸르던 세상이 잿빛으로 바뀌어 저물듯이 죽지도 않았던 4대강은 벌건 대낮에 참수당하여 4대강 살리기 슬로건으로 펄럭거리고, 흐르던 강물엔 시멘트 보가 생겨 막히고, 피흘린 사랑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버려져 묻히고 말았다. 이제 역사가 심판하리라.
천변 봉제공장 여공들이 사라진 자리에 대관절 명예퇴직자의 자전거가 싱싱 달리고, 그것이 생태니 친환경이니 집권자들과 권력자들이 독점한 언론에서 연일 보도 되는 마당이다.
어머니의 분홍치마 옥색 깨끼저고리가 나풀거리는 햇살 가득한 마당에서 내다보던 비툴빼툴 아름답던 강물은 이제 없어졌다. 맹꽁이 물새떼 물고기떼 희부연 침묵 속에서 죽어나가는 시간들, 안타까워라. 주어진 자유만큼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할 사람들이 그 본분을 망각하고, 아니 과유불급 과다한 오버 액션으로 질서를 통째 뭉그러뜨린 이 현실은 참혹하고 참담하다. 누구는 반듯한 직선과 잘 정돈된 수변환경을 박수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자연 그대로의 존재 사명, 최소한의 조처와 참견, 그런 배려와 이해 조정이 사라진 아수라장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위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창 1, 26-28)
세상의 각양각색 피조물들을 다스릴 때 신의 대리자로 인간을 세우셨는데, 풍차가 선 바람언덕에 돈키호테식으로 ‘돌진 앞으로’를 명하신 게 아니다.
망치는 부수는 데 쓰는 물건만은 아니다. 망치로 기울어지고 휜 것을 세우기도 한다. 망치가 망치는데 쓰는 물건이라고 판단하면 곤란하다. 망치라고 망치는데만 사용되고 싶겠는가. 인간에게 주어진 망치를 망치는데 사용하는 부류들은 ‘땅을 정복하라’는 말에 영향을 깊이 받은 종류일 것이다. 그러나 정복이라는 낱말엔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다. 다스림도 물론이다. 인류의 마지막 수공업장이 될 이발소 미용실처럼 숲의 나무를 가지런히 자르는 전지 가위와 톱 하나면 족하다. 강물이 범람하지 못하도록 강이 마를 때 온 동네가 모여 삽 한자루씩 들고 울력을 하면 족하다.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굴삭기나 기중기나 폭탄이어서는 절대 아니 된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교회협 생명윤리위원회가 궁리하여 만든 ‘녹색교회위원회’에선 녹색교회 다짐이라는 열 가지 선언을 내걸었다. 1. 만물을 창조하고 보전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한다. 2. 하나님 안에서 사람과 자연이 한 몸임을 고백한다. 3. 창조보전에 대하여 교육한다. 4. 어린이와 청소년을 친환경적으로 키운다. 5. 환경을 살리는 교회 조직을 운영한다. 6. 교회가 절제하는 생활에 앞장선다. 7. 생명밥상을 차린다. 8. 교회를 푸르게 한다. 9. 초록가게를 운영한다. 10. 창조보전을 위하여 지역사회와 연대한다.
열혈 투신으로 교회 성장과 부흥의 목표를 향해 불사르는 목회자들이 단 한번이라도 녹색교회를 꿈꿔 보았다면 오늘 이러한 환경 대재앙의 암흑시대는 오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희박한 희망이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리라. 창조주의 대리자, 그러니까 인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만큼 책임 또한 막중함을 알아 이 지구행성에 녹색 별에 녹색 생명이 번성하고 충만하게 하여야 한다.
거짓된 핵에너지와 전시행정의 소산물들로 난무하는 시멘트 덩어리들을 우리네 강과 바다, 숲과 마을에서 마침내 퇴출시켜야 한다. 이보다 더 낮고 이보다 더 불편하고 이보다 더 가난해져야 우리는 살 수 있다. 송전탑에 붉은 꽃들이 무성하게 피고, 막힌 보가 열려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녹색 별엔 녹색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목회자들은 녹색 스톨을 걸치고 기도해야 한다. 군인들은 수류탄이 아닌 붉은 석류를 투척하고, 건축기술자들은 철근이 아닌 나무토막으로 파랑새의 새집을 지어야 한다.
육체의 가시
근육질 뽀빠이 아저씨라도 인생에서 병고가 없이 사는 일은 희박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것이다. 인간은 병을 앓고 자라며 병을 통해 깊어지고 병을 끌어안고 죽는 존재다. 파미르 고원이나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에서부터 늪과 같은 인도 뭄바이와 저지대 타일랜드의 수상가옥 아이들까지 저마다 몸에 찔린 가시 같은 아픈 병 하나씩 달고 살아간다.
추워 서로의 체온이 필요하듯 병은 자석처럼 사람에게 날름 달라붙고, 사람은 병을 잘 모시는 일로 한층 겸허해지고 진중해지면서 건강을 보살피게 되어 천수를 누릴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미풍과 광풍이 교차하며 불어오는 것처럼 감기 몸살과 같은 미풍은 잠깐, 지독한 중병에 걸려 입원환자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끼 낀 옛 집터같이 병을 얻어 허물어지는 삶은 쓸쓸하고 가엾다. 두통이나 이명처럼 만성질환이 시작되면 울적하고 과민한 시절을 꾸욱꾹 견뎌야만 살 수 있다.
볕 좋은 날 토방에 앉아 햇살 가득 한상 받고 긴 호흡을 느끼는 날. 서리 맞아 늙고 찌그러진 감을 파먹던 까치가 싱겁고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나는 내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는 순간, 단속 닦달에 움츠린 포장마차 같던 내 살림살이도 살짝 펴지는 순간 같다. 배앓이를 한 뒤로 된장국이 자주 상에 오르고 몸의 깨진 균형을 맞추려 신경을 적잖게 쓰고 있다.
내가 가족으로 속한 교단인 복음교회는 이제마 사상의학과 인연이 깊다. 토착교단 창립동지들 가운데 이제마의 제자들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교단 신학과정에 한의 민간의학을 잠깐 배운다. 그 때 배운 가락으로 말씀드리자면 사람마다 성정 식성 재능 병리가 다르듯 몸의 장기도 크고 작음은 물론 제각각이라 체질을 알아서 필요한 약이나 음식을 조절하는, 이른바 예방과 치유를 같이하는 의학이 사상의학이란다. 사상의학에선 네 가지 욕심이 병과 화를 부른다고 말한다. 비인(鄙人)은 예를 중시하지 않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욕심을 내는 자를 말한다. 박인(薄人)은 지혜를 버리고 알량한 지식으로 삿된 욕심에 사로 잡힌 매우 경박한 자를 말한다. 탐인(貪人)은 인애를 버리고 오직 호시탐탐 욕망으로 살아가는 짐승만도 못한 자를 일컫는다. 나인(懦人)은 의리를 버리고 무사안일을 살아가는 심약하고 나약한 자로 이 또한 자기만족의 욕심스런 삶이다. 비박탐나(鄙薄貪懦)를 몰아내고 인의예지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삶의 추구라 하였다.
사도 바울은 병을 끌어안고 살아갔던 대표적인 환우였다. 맥문동과 아네모네가 나란히 자라는 길목에 쓰러진 나그네는 한번 쓰러지면 일어날 줄 몰랐다. 까페에 쉬어 앉아 발목을 까딱거리며 놀고 싶었겠지만 그에게 맡겨진 선교 사명은 지중해를 한 바퀴 돌고 나서야 한차례씩 멈추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건강한 몸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환자의 몸으로 이겨낸 놀라운 의지와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하고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 7-10)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란 무엇이었을까. 혹자는 간질 발작이라고도 하고 눈병, 풍토병 다양한 추측이 이어진다. 이탈리아에선 타란텔라라는 춤을 추는데 독거미에 물려 이를 해독하기 위한 춤이다. 그러나 사실 사람이 죽을 만큼의 독을 가진 거미가 아니라고 한다. 바울의 춤도, 생애도 타란텔라 춤이나 마찬가지. 그의 육체를 괴롭힌 가시는 독거미의 독침에 불과하고 이를 춤으로 탈바꿈하여 추어댄 이는 바울이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통해 진부함에서 새로움으로 거듭 날 수 있었다. 제도권적인 기성세대의 고착화된 종교 틀을 부수고 나아가는데 그의 약함, 가시가 오히려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일반인들에겐 낯선 죽음일 텐데 이를 일상 속에서 무차별 느끼며 비박탐나의 삶에 빠져들지 않고 예수 복음에 집중하였다. 오직 예수가 눌러쓴 가시면류관의 그 가시가 자신의 병약한 육체 속에 박힌 가시가 되길 소원하였다. 몸의 균형을 깨트린 병을 통해 영혼을 일으키는 것으로 심신은 비로소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이렇듯 바울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무사히 공동체를 규합하고 예수 복음을 안착시켰다. 육체의 가시가 없었다면 기고만장 오만부동으로 살았을 것이라 누차 얘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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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은 시인, 화가다. 10년동안 남녘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시무했으며, 지금은 산골에 은거해 고요히 살고 있다. <예수 동화>, <참꽃 피는 마을>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