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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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사소한 생의 아름다움/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5-08-26 (수) 14:59 조회 :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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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생의 아름다움



전쟁이 나도 목포나 벌교, 담양에 살면 최소 하루 이틀은 더 목숨이 붙어있겠지. 핵폭탄이 터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날마다 벌어먹고 사는 일이 전쟁 같아서 총칼 든 군인들이 대치하는 것만 전쟁은 아니지. 치매 걸린 영감 대문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할매는 영감을 방에 가둬놓고 열쇠를 채운 뒤에 밭일을 나선다. 남의 동네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동네 이야기. 아저씨가 쇠똥을 싫어해 마당에다가 똥무더기를 놓아두기도 한 대. 지뢰가 따로 없지. 
다음주 압구정에서 개인전이라 문 닫아걸고 그림만 그렸는데 친구들이 계곡에 가 낮술을 마시잔다. 울화증에 못 이긴 척 끌려 나갔지. 밖에서 열쇠를 채우기 전, 자주 밖으로 나가 놀아야지. 계곡으로 물놀이 가는 여인들 속에 사내는 나 혼자. 바리바리 짐도 많고 수박은 뭘 이렇게 큰 놈을 샀누. 낑낑거리며 짐을 날랐는데 이제부터는 백숙을 먹기 좋게 찢으란다. 내가 무슨 노비인가. 


통학버스에서 짓궂은 남학생이 “이보시게 낭자. 책가방을 받아주시게.” 여학생에게 추파를 던지자 여학생 왈 “행색을 보아하니 상놈인 것 같은데 짐은 바닥에 내려놓고 몸은 멀리 떨어져 있거라.” 톡 쏘는 벌침.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멀리 떨어져 짐 나르고 고기를 바르며 종노릇. 한판 전쟁을 치른 끝에 돌아오니 집이 얼마나 좋던지. 

틈틈이 영정조기 야인이었던 흠영 유만주의 <일기를 쓰다>를 탐독. 그야말로 ‘사소한 생애’.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큰 공적을 남긴 위인은 아니었으나 그는 빼어난 문장의 일기를 남겼다. 당시 조선의 처참한 가난과 역병, 정치놀음과 멸문지화 입은 이웃에 대해서도 눈감지 않았다. 2백년이 지난 지금, 흠영의 아버지인 유한준의 회고에 적힌 일찍 죽은 아들(흠영)에 대한 기억 “언제나 주렴을 드리운 채 책상 앞에 고요히 앉아 있고, 창밖에선 오직 새소리만 들려오는” 그 풍경이 설핏 어룽거리는 것이었다. 사소한 생의 아름다움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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