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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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6-08-10 (수) 15:46 조회 :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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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나는 밀물과 썰물이 사이좋게 들고나는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냇물보다는 짠물에서 멱을 감는 일이 훨씬 잦았다. 주민들은 모두 구릿빛 피부를 가졌고 웃을 때만 새하얀 이빨이 드러났다. 흑백 테레비가 칼라 테레비로 일제히 바뀌자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까무잡잡한 구릿빛만이 아니라는 걸. 아버지처럼 나도 그 바닷가에 머물며 십년도 넘게 짠 내 풍기는 어부, 구릿빛 농부들의 종지기 목사로 살았다. 뽕짝 디제이 이장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잔칫날이면 보사노바나 삼바 음악을 몰래 틀었다. 언젠가 ‘나오미 앤 고로’라는 일본인 보사노바 밴드의 음반을 한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남미 음악 불모지에 사명감으로 한 일이었다. 대중의 싸늘한 외면으로 멋쩍어 뒤통수만 긁었던 기억. 

조빔의 저 살가운 보사노바곡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브라질 리우의 해변 말고 우리네 땅 바닷가에서도 듣기 좋은 노래. “둠둠둠 둠둠둠 그녀를 보라! 신이 내린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우아하게 해변을 걷고 있는 걸음걸이. 이파네마 해변의 태양이 축복을 내린 구릿빛 피부의 아가씨. 마치 외로운 시인처럼 걷고 있어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의 선물이여. 그런데 왜 나는 혼자란 말인가. 이다지 슬픈 것일까. 눈앞에 보이는 저 눈부신 아가씨가 꼭 내 님이 아니더라도 그녀가 해변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 세상은 얼마나 눈부시고 사랑스러운 곳인지...” 

한번은 리우에서 꿈같이 짧은 며칠 밤을 보냈다. 숙소에 짐을 풀기가 바쁘게 택시를 잡아타고 해변으로 달려갔다. 코파카바나 해변과 이파네마 해변. 노랫말처럼 보사와 삼바의 청춘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내 귀엔 보사노바, 가슴에 오래 새겨둔 소녀의 노래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새로운 감각, 새로운 경향,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보사노바. 세상의 모든 외롭고 슬픈 청춘들이 그 바닷가에서 행복해하며 물장구치고 놀았으면 싶었다. 해변을 걷는 청춘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이미 눈부시고 사랑스런 천국인 것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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