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치는 소년
희끗희끗 높은 산에 눈소식이 들려온다. “말구유 아기께 파람팜팜팜 람팜팜팜... 평화의 노래 파 람팜팜팜...” 한달 후면 크리스마스. 별장식을 단 전나무가 불빛을 깜박이는 가게도 벌써있다. 어젯밤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을 읽었는데 독립군이 불렀다는 겨울노래가 가슴에 아려온다. “이곳은 우리나라 아니언마는 무엇을 바라고 이곳 왔던가. 백두에 찬바람은 불어 거칠고, 압록강 변상에 은원이 얼어 고국에서 들려오는 피비린 냄새... 아깝고 원통하다 우리 동포들. 물어보자 동포들아 내 죄 뿐이랴. 너희 꺼도 있으려니 함께 나가자!”
올해가 장군의 서거 70주년, 아직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카자흐스탄에 묻혀계신 무덤에는 흰눈이 쌓였겠지. 러시아 산맥들을 타고 다니며 일본군을 부들부들 떨게 만들었던 독립군 대장.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의 북치는 병사를 잊을 수 없다. 70년이 지나도 득시글거리는 친일파 놈들. 걸핏하면 빨갱이 사냥으로 누리는 부와 권세... 새로운 세상을 깨우는 북소리는 누가 있어 울리랴!
“여시비(여우비)가 내리등마 겁나 추어졌소야. 싸뎅이다가 뱅이 댐배들믄(쏘다니다가 병이 덤벼들면) 소도독놈(소도둑)이라도 허세비(허수아비) 맹키로 자빠져분당게라. 집에 가만히 붙어잔 계시쑈잉.” 바깥 일로 싸돌아 댕겼더니 염려하시는 말씀이 그랬다. 비사리(싸리나무)를 뜯어오던 순이 어매는 망구텡이(할머니) 소리 안들을려고 입술을 빨갛게 바르고선 총총 걸음이었다. 나는 난로에 밑불 피울 솔가지를 한소쿠리 거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고고 추워라잉’ 이른 캐럴인가 싶으나 북쪽 사람들 감기 안걸리고 배고픔 견디며 겨울나기를 기도하면서 캐럴을 듣는 밤이다.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증오하고 색출하고 쌈질하며 우리는 또 얼마나 춥고 사나운 겨울이런가. 남이나 북이나 복둥이 아기들을 낳아 키우는데...
북소리가 둥둥둥. 가을걷이 끝난 들에 바람도 둥둥둥. 별스럽게 그리운 사람들 이름을 불러보누나. 북치는 소년병사가 찬바람 치는 창문 밖에 꼭 서있는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