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 > 수필창고 > [마중물 칼럼/ 신년호] 우유니 소금사막/ 녹색연합 작은것이아름답다 2014. 1월호

볼리비아 소금사막,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임의진

소금땅 소금바다 소금별... 당신에게선 소금 냄새가 난다. 바다는 맵고 짠 입술을 하고 그의 긴 혀를 내밀어 짠맛을 전한다. 바다는 대체로 한가하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에, 사랑에 아주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붓는 모양 같다. 그의 심장은 붉은 피 대신 하얀 소금을 쏟아내고 그 소금은 사랑의 눈물 떨기가 분명하렷다. 사랑은 눈물이 동반될 때야 진정성이 입증되는 무엇이라서 바다는 아주 잦은 시간대로 울음을 토해내는가 보다.

요술 붓을 지닌 뤼코 팍스라는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왕에게 초상화를 한 장 그려주었다. 그림 속 자기 얼굴이 어찌나 무섭고 못생겼던지 왕은 그걸 보고는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뤼코는 공주랑 결혼하여 왕이 되었는데, 한가한 시간을 즐기며 그림이나 그려야지 내가 무슨 정치냐며 모든 권력을 대신들에게 나눠줘 버렸다. 그리고선 궁궐을 작업실 삼아 그림을 그리면서 재밌게 살았다. 백성들은 뤼코의 그림을 보고 아름다움이 과연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로부터 모든 백성들은 비로소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폴 콕스의 <예술의 역사>라는, 만화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바다처럼 그리고 화가처럼 한가한 시간, 한가한 사랑, 한가한 산책이야말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리라. 그런 여유, 그런 작당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생기는 무엇이지 어디 누가 있어 냉큼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렷다.

성탄 전야 굴뚝을 타고 들어오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말고는 별다른 선물을 가져다가 줄 영감탱이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하느님도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고마움의 키스를 나눌 수 있도록 한발 짝 뒤로 물러나 계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사랑에 개입하지 않는 분이시다. 철딱서니 없이, 소가지 없이 인간 세상에 무차별 개입하여 축복을 남발하는 신이란, 죄송하지만 없다. 연인이 용기를 갖지 않으면 사랑은 더 이상 깊어지지 않으며,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세상은 전혀 바뀌지가 않는다. 소금이 자루에 담기는 그 긴 고요와 긴 시간의 투쟁를 묵상해보라. 그 고요와 한가함, 지난한 견딤들이 인간에게 또한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의 그리움이 눈물로 영글어질 때 소금은 우뚝새뚝 제 지경을 넓히고, 세상의 모든 소금사막들은 영롱하리만큼 새하얀 결청체를 품게 된다. 그래 지구행성이 암흑 공중에서 총총히 빛나는 것이다. 별과 별들이 빛을 뿜으며 사랑을 노래할 때 우주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난다. 이 우주나무에 달린 열매를 가리켜 우리는 구원이요 영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난 여름날 나는 볼리비아 소금사막이 있는 우유니에 찾아갔다. 백남준의 비디오 부처처럼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관조심이 생기는 법. 남미는 묘한 인연을 연결하는 역사와 문명의 삼각지, 나스카에선 외계의 친구들까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문득 드는...

볼리비아의 입구엔 티티카카(Titicaca)호수가 펼쳐져 있다. 티티카카 호수는 창조자 비라코차가 만든 호수다. 바다 거품이라는 뜻의 콘 티티 비라코차는 땅과 시간을 만든 자라는 명성을 입어 파차카막(Pachacamac)이란 이름을 지니게 된다. 비라코차는 이 호수를 중심으로 여러 마을에 사람을 만들어 살게 하고 하늘의 달과 별과 해를 동시에 지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못된 짓을 많이 하자 뿔따구가 난 신은 모든 사람들을 산언덕의 돌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제야 화가 조금 풀리자 호수 가운데 섬에다 사람을 다시 만들어 살게 하였다. 그러니까 갈대 섬의 사람들은 제2의 인류인 셈이다.

잉카제국의 왕 중에 야우아르 우아카가 있었다. 우아카는 일곱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의 이름은 우르콘, 아버지를 빼닮아 성격이 매우 급하고 욕심꾸러기였다. 막내는 유팡키였는데 선하고 유순하지만 때에 따라 용맹한 성격이었다. 이웃한 찬카 부족이 영토 깊숙이까지 침략해왔다는 소식을 접하자 장남은 얼른 도망가야 한다고 발을 굴렀다. 그러나 막내는 “지금 도망가면 겁쟁이란 소리밖에 더 들을 게 있겠습니까. 저 혼자 남아서라도 싸우겠습니다.” 잉카왕 우아카는 말렸으나 막내는 결연한 태도였다. 왕과 장남은 계곡으로 서둘러 피신했고, 유팡키만 남아서 태양신전에 올라가 용기를 달라며 기도를 바쳤다. 그런데 잠깐 졸음을 참지 못했다. 꿈에 태양신이 유팡키에게 찾아와 오른손엔 마법의 거울을, 왼손엔 황금으로 만든 칼을 쥐어 주었다. “네가 만약 이번 전쟁에서 이기면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대왕이 되게 해 줄 것이다!”

눈을 떠보니 진짜로 손에 마법의 거울과 황금 칼이 들려 있는 것이었다. 유팡키는 거울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거기 침략군이 쿠스코에서 만취상태로 승리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유팡키는 곧바로 군대를 모아 술에 취한 침략군을 물리쳤다. 퓨마처럼 용맹한 유팡키는 침략군을 모두 내쫒고 1471년 잉카의 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이름을 비라코차로 바꾸고, 마법의 거울을 들고 다니면서 그 넓은 땅을 평화롭게 다스렸다. 마법의 거울엔 아주 멀리 티티카카 호수가 보였고, 우유니의 소금사막도 보였다. 안데스 절벽에 사는 콘돌이 마법의 거울에 앉아 찰진 옥수수를 세상에 가득 뿌렸다. 새하얀 타로토란꽃과 벌새가 숱한 밤과 숱한 계절을 찬미했다. 스페인 군대가 화약 대포를 쏘며 쳐들어오기까지 잉카는 오래오래 풍요로웠고 평안하였다.

나는 우유니 소금사막에 당도하자마자 광활한 소금들녘 한가운데 쌓여진 소금벽돌을 매만졌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순간 입술에서 맴도는 듯 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네 손바닥 안의 무한을 붙잡아 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느껴라.” 오! 이것이 비라코차의 마법의 거울입니까... 나는 영원을 만난 시간처럼 꺄악! 하면서 소리쳤다. 꽃들이 파업을 선언한 소금사막엔 홀로 선인장이 섬을 이루고 서있었다. 양력설이 지나가면 음력설이 찾아오듯 나는 그 후생의 섬에서 오래도록 갇혀 살고 싶었다.

관절이 삐거덕거리는 어떤 시간에 나는 물고기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소금사막을 횡단했다. 바다의 손금을 매만지듯 그 소금사막에서 간절해진 삶을 보듬어 안았다. 잃어버린 신화,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소금기... 우리는 너무 싱겁고 우리는 너무 밋밋하고 우리는 너무 계산속 뿐이다. 세월을 통해 깊어지지 않고 오히려 간악해진 것은 아닌지...

망망대해라는 아픔을 목도하기도 했지만 망망대염전은 처음이었다. 내가 좀, 내 영혼이 좀 간이 들고 짠맛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달의 표면과 같이 울퉁불퉁한 그 소금 사막을 건너면서 내 인생의 전후행각이 다 보이는 마법의 거울을 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디 한사람 운명뿐이랴. 우리의 문명도, 우리의 현실도 고인 비밀의 발설을 새들이 엿듣듯 모두 알아차릴 것만 같았다. 허공에 총총하던 별은 지상의 환한 흰색들에 기가 질려 영원히 캄캄한 밤이 사라지고 없을 것만 같았다.

극장에서 덜컥 나오듯 소금사막을 빠져나온 뒤 한동안 먹먹해진 가슴으로 정신마저 혼미했다. 다시 잠을 잔 뒤 마법의 거울과 황금 칼을 그곳에 놓고 올 수 있기를 바랬다. 사막의 밤은 어디라도 추운 법. 쥐처럼 생긴 머리 굵은 야생 토끼들이 여행자의 숙소를 밤새 킁킁거리며 맴돌아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배고픈 토끼들은 오직 굶주림의 해결을 위해 골몰하고 있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예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을까. 간을 맞추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궁리하고 골몰해야 할 시기가 아닌지, 지금 이 순간 말이다. 부정과 불법으로 정권을 창출하고, 거짓된 음모로 숭엄한 자연을 파괴하고, 자본과 문명의 이기와 바꾼 세계는 퇴진과 침몰, 멸망의 조짐 아래 놓여있다.

맛을 잃은 소금, 인간이기를 포기한 욕심쟁이들이 저수지에 던진 정의로운 주검들, 광주에서 공수부대에 의해 죽임당한 민주 투사들과 죄없는 시민들, 밀양과 강정을 비롯 도처에 내몰린 가난한 목숨들. 세상의 소금인 그들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이다.

볼리비아는 더 이상 옛시절 체를 죽인 그 옛날의 볼리비아가 아니렷다. 인디오출신 첫 대통령 모랄레스 동지와 함께 소금의 짠맛을 기필코 되찾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사인들의 농사를 돕던 주술사가 나타난 것처럼 모랄레스는 이제 남미의 희망이고 자존감으로 우뚝 서서 잉카의 제의를 이끌고 있다. 마치 유팡키가 살아온 것처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볼리비아의 모랄레스가 차례로 줄무늬 라틴 남방을 입고 폭풍우에 휘어진 가지를 일으킨다. 거리의 약자들 곁에 서려는 프란체스코 교황을 비롯 남미 사람들이 제국과 자본으로 어둡고 침침한 세계에 새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올해 우리는 소금의 사명을 다했으면 싶다. 썩고 부패한 세상에 부디 소금되어 녹아 흘렀으면... 당신은 이 세상에 간을 맞추는 소금인형이 아닐 것인가. 당신의 선한 마음이 녹아 흘러 이 세상이 보다 사람살기 좋아진 갈대섬이 되기만을... 우유니 소금사막이 우유니를 넘어 우리들 가슴까지로 지경이 넓혀지기를. 잉카왕 비라코차의 시대가 다시 열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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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은 시인, 목사다. 담양 산골짝에 곰처럼 웅크리며 살고 있다. 재작년부터 광주정신의 예술적 승화를 위해 세워진 최초의 시민예술공간 <메이홀> 관장으로 가끔 대문을 나서기도.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앵두 익는 마을>, <예수동화> 등이 있으며, <여행자의 노래>를 비롯한 월드뮤직 선곡음반과 <멜랑콜리맨>과 같은 여행노래집을 발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