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 인도 여행
연한 전구 등불에 들판의 비닐하우스가 밤바다처럼 출렁이고 있구나. 보노라니 밤새 오색창연 환하던 힌두교 사원이 생각난다. 농부도 마찬가지 기도하는 사람들 아니런가. 별똥별처럼 동그란 방울토마토와 꿀단지처럼 달달한 딸기가 그 기도 안에서 차근차근 영글고 있으리라. 지난겨울 가난했던 나무들은 훈풍 부는 이 밤에 새잎을 틔우고 있겠구나. 나무 밑둥치를 살펴보면 마치 코끼리의 굵고 까칠한 발목 같아라. 밤바람 소리가 사나운 날엔 나무숲에서 코끼리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아. 나무들은 분명히 코끼리와 인연이 깊은 족속인 게다. 죽은 코끼리들이 나무로 환생하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나무가 코끼리로 환생하는 것일까.
왁자지껄 겨울방학 패키지 관광객들을 피해 이맘때쯤엔 불쑥 인도 땅으로 여행을 떠나고는 했었다. 느림보 기차를 타고 동서남북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하며 쏘다녔는데 서쪽하늘 사막 모래가 씹히는 라자스탄에선 착하디 착한 쌍봉 낙타를 타보기도. 평지나 밀림에선 사람을 태운 코끼리도 만났는데 우람한 풍모만큼 걸음걸음 의젓하더군. 문제는 길가다가 똥을 누는데 무슨 아기를 낳는 줄 알 정도로 커다란 풀똥을 누더라. 벵갈 지역 촌장은 코끼리가 호랑이보다 위험하다면서 나를 멀리 떼놓았다. 엄마를 따라다니는 귀염둥이 아기 코끼리를 한번 만져보고 싶었다.
닳아빠진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인도 사람들의 발을 볼라치면 모두 코끼리 발을 닮았다. 얼굴도 코끼리처럼 쭈글쭈글, 땡볕에 그을려진 피부는 붉으스름. 그러고 보니 코끼리와 사람과 나무가 애당초 한 족속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 앞으로 코끼리가 보고 싶으면 동물원이 아니라 숲으로 갈 일이다. 거기 나무들, 아니 코끼리의 발이 있고, 구름 너머엔 코끼리의 넓적한 귀가 신나게 날개짓하고 있으리라.
(글, 그림/ 임의진_시인)
<경향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