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뉴스, 9시 뉴스
꿩이 꾸웡 꾸웡 하고 울어서 꿩인 줄 알았다. 무슨 징표일까. 꿩이 깃털 하나를 마당에 떨어뜨려놓고 사라졌다. 뒷산에 이토록 아름다운 오색빛깔 새가 살고 있구나 생각하니 서울 어디어디 선남선녀들의 휘황찬란한 거리가 하나 부럽지 않더군. 꿩 깃털을 주워 안주머니에 얼른 집어넣었다.
기차가 저녁 8시에 떠날 때까지 나는 그리스 여가수 ‘사비나 야나투’의 노래를 물리도록 들었다. 늙고 쓸쓸한 소읍의 성당 저녁 미사, 종소리부터 외로워서 신부님의 재미있는 강론도 눈물콧물로 항상 끝맺는다. 신자들 촉촉한 음성공양이 성당 마당에 울려 퍼지는데 건너편 전자제품 가게에선 8시 뉴스를 길 쪽에 보이도록 틀어놓았더라. 어지러운 인간세상의 사건사고들, 동장군 한파 소식과 벌초 안 된 무덤을 덮은 폭설, 통장이 41개라는 장관님의 태평스러운 얼굴이 화면가득 비치는데 불쌍하게 살다죽은 오촌 당숙모는 뉴스에 안 나왔다.
8시 뉴스가 끝나자 이어서 9시 뉴스. 한때 학교에서 쫓겨나 어영부영 이끌려 다녔던 충정로 언덕배기 선교교육원. 거기 한참 선배였던 박몽구 시인의 <십자가의 꿈>을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에서 쪼그려 앉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오월 광주와 진압군의 무자비한 만행을 담은 시들, 나는 아직도 시인처럼 진압군들의 유령에 시달리나 봐. 뉴스에는 여전히 진압군들이 양복을 바꿔 입고 나와 진압봉을 휘두르고 있는 거 같아. 십자가의 꿈은 '보태기 자의 복'으로 바뀌어 나라를 말아 드시고, 제물이 된 구제역병 소들이 대신하여 생매장되고 있는 세상.
뉴스가 끝나자 소읍 사람들은 울울한 얼굴로 가게 문을 닫는다. 언제야 우리는 행복한 뉴스를 듣고 잔잔하게 뛰는 심장으로 사랑하다가 잠들 수 있을까. 꿩의 깃털을 머리에 꽂은 아이들이 평등과 평화에 감격하여 춤을 추는 세상을 과연 볼 수 있을까. 끈질긴 저이들 진압군들과 그 후예들이 정치에서 손을 떼고 떠나는 날은 정말로 올까.
(글, 그림/ 임의진)
<경향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