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4대강 수난곡
신학생 때 독일 개신교회 벗들과, 절친한 한글 서예가의 도움을 입어 한동안 독일 체류기회를 입었었다. 중세와 근세, 반역과 반성을 두루 거친 그 오래된 나라를 나는 내 영혼을 맑게 씻는 사원으로 삼아 잠잠히 순례 길에 들었었다. 베를린에서 유서 깊은 동물원역 근처에 조그만 방을 하나 잡았다. 온돌 난방이 아닌 유럽이 다 그렇듯 밤엔 땡땡 고드름으로 얼었지만 아침이면 볕이 부드럽게 창문에 스며들고 넝쿨식물이 집 째 포위한 정겨운 수도원풍 가옥은 정이 들었다. 학교에 가서 밀린 독서를 주로 하는 걸로 일과를 삼았고, 한인유학생들을 사귀어 서툰 김치볶음밥을 해먹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녹차를 그리워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된장국을 그리워하며 고기 수프를 떠먹고, 밥을 그리워하며 딱딱한 빵을 씹을 땐 내 나라 생각이 참말 간절했다. 그러나 일상은 매우 평온하였고, 상식의 범주 안에 문명인으로 사는 일이 오히려 무료함을 느낄 정도로 외적 자극이 적은 시간이었다. 주말엔 주로 잘 가꿔진 공원 산책을 즐겼고, 베를린 시내 서점과 음반점도 훑고 다녔다. 특히 그때 나는 고전음악에 담뿍 젖어 살았을 때라서 구닥다리 물건들을 놓고 파는 길거리 장터에 값싼 음반들이 나오지 않을까 꼭 뒤지고 다녔다. 그야말로 횡재에 가까운, 아주 귀한 음반을 손에 넣으면 폴짝폴짝 뛸 정도로 기뻐했다. 바흐나 윤이상 선생이나 구스타브 말러가 스치고 지나간 흔적어린 장소를 찾아 앉아 사색에 젖는 날은 하루 종일 물만 마시고도 전혀 배고픈 줄 몰랐다. 주머니에 돈이라도 생기면 장거리 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멀리 고흐와 렘브란트의 땅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나 내 사랑 에디트 피아프의 프랑스 파리 골목, 집시 보헤미안의땅 체코 프라하까지 기차를 탔다. 크로아티아의 해변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가까이는 강변에 위치한 마인츠에 가서 포도주를 마시기도 하고, 북부 산악지대 보쿰에 가서 한국인의 애환이 서린 탄광촌을 둘러보기도 했으며, 쾰른에선 반전 평화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예술생애를 접했다. 한창 맥주 맛을 배울 때라 뮌헨에 친구들이랑 놀러가서 주야장창 맥주 세례를입고 병자처럼 실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베를린에서 가까운 도시 구동독의 궁벽진 시골 동네 라이프치히였다.
라이프치히는 교회 음악의 절정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다. 초행길이라 먼저 숙소를 알아 보는 일이 급했는데, 칼 마르크스가 한동안 묵었던 여관에 나도 묵기로하고 루터교회 목사님에게 방을 얻어달라 부탁을 드렸다. 다행히 그쪽 여관집 주인이 방을 싼값에 내주기로 해서 토요일부터 들떠설랑 짐을꾸리고 이틀을 손꼽아 자고 기차에 오른 것은 월요일 아침나절이었다. 폭설이 야무지게 내린 뒤 차량통행이 힘들어지자 기차역은 평소보다 배나 승객들로 붐볐다.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에 나는 바흐의 음반을 휴대용 시디플레이어에 넣고 들었는데, 여행길에 내내 바흐 음악만을 고집하고 싶어서였다.
바흐는 라이프치히에 머물며 위대한 작품들을 완성지었다. 마태수난곡은 바흐를 대표하는 곡으로, 라이프치히 성토마스교회 악장으로 머물 때 작곡, 그리고 그곳에서 초연도 하였다. 내친 김에 바흐는 4복음서, 그러니까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예수 수난과 부활 장면을 차례차례 음표로 바꾸어 담는, 그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집중하여 작곡 삼매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애석하게시리, 현재까지 분실되지 않고 남겨져 연주되고 있는 그의 수난곡은 마태와 요한 수난곡 두가지 뿐이다. 라이프치히는 아주 조용하고 음울하면서도 매혹적인 시골 동네라는 첫인상을 안겨주었다. 녹물이 흐르는 철제 대문들과 짙은 회색의 벽과 건물들, 거리에는 코트를 입고 걷는 이들이 모두 작곡가 같았고, 어김없이 길거리 집시연주자들의 독특한 바흐 해석은 고요한 골목들을 가로등보다 환한 음표로 밝혀주고 있었다. 거기에 나도 휘파람을 보태어 바흐를 따뜻이 기렸다. 바흐는 몇해 동안 악상을 모아 1729년 4월15일 금요일 봄날 마태수난곡을 초연한다. 처절하고 눈물겨운 예수의 최후 수난사를 담은 노래들. 이 노래들이 울려퍼진 성토마스교회는 라이프치히 중앙역교회와 더불어 통일독일의 구심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곳에서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되었고, 동서독의 모든교회들이 힘을다해 베를린 장벽을 부수는데 앞장서게 되었다. 바흐의 수난곡 초연처럼, 라이프치히 교회들이 독일의 분단을 깨트리고 통일과 화해의 십자가를 가장 먼저 진 것이다. 바흐의 수난곡을 감상하며 보낸 며칠의 라이프치히 여행은 이후로도 언제나 그 선율을 들을때마다 추억을 풀무질 하고는 했다. 뿐만 아니라 시란 고요 속에서 회상해 낸 감정이라던 워즈워스의 시론대로나는, 그 고요한 시골동네에서 넘치도록 많은 낙서 같은 시들을 끌쩍이며 시심에 잠겨 지냈었다.
사방 오리 안개가 자욱하고 퍼석퍼석 이는 먼지의 골목들에 선연한 핏자국 따라 아득한 저 너머 불빛 켜지는데까지 “어쩨야 쓰까잉 어쩨야 쓰까잉”울고 섰는 성모님의 통곡 소리 따라 울다 멈춘 여기 순례의 길, 풀똥을 누는 토끼처럼 선해진 가슴이 되었구나 글쎄, 동그란 눈을 가물거리며 귀를 종긋 세운다. 어느 혹성에서 이처럼 촘촘한 비극의 무덤을 쌓을 수 있을까 반쯤 허물어져야 제대로 무덤 같은 무너진 집들과 교회당들. 당신의 피로 범벅된 교회에서 흐르기 시작한 4개의 복음과 4개의 강물이 4개의 눈에서 떨어져 흐른 시원(始原)의 현장. 나와 성모님의 두 눈에서 터져 나온 눈물이 노래가 된 자리. (성토마스교회)
이야기는 다시 4대강 수난사다. 이것은 복음서의 예수 수난사만큼이나 억울하고, 참담하며, 비극적인 수난극이다. 바흐가 오늘날 한반도에서 자행되는 4대강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다면 크게 충격을 받아 4대 복음서 수난곡 말고도 4대강 수난곡을 반드시 작곡하고야 말 죽음의 현장이다. 울컥울컥 목울대를 조이는 울음을 토하지 않을 자가 어디있는가. 저들 무뢰배들말고 사람이라면 이 허망한 죽음앞에서 주먹 불끈 쥐지 않을 자 누가 있겠는가. "나의 주여! 나를 가엾이 여기소서. 내 눈물을 보시고 나를 굽어 살피소서. 마음도 눈도 주님 앞에서 서럽게 울어 대는 나를,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제47번 아리아가 흘러 나온다. 예수를 거듭 모른다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면서 세 번씩이나 배신을 한 비겁쟁이 베드로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노래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정치동업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라고 들었다. 대체 그분들이 다니는 교회는, 그분들이 믿는 예수는 누구란 말인가. 백성들과 우주 만물의 고통을 함께 겪고 마침내 불의를 깨트리며 부활하신 정의와 평화, 생명의 주 예수가 과연 맞는가. 온통 삽질로 소수의 토건족에게 금은보화 축복을 나눠주시는 분이 그들이 믿는 예수인가. 가난한 나라들을 등쳐먹고 삼림을 빼앗아 배를 채운 G20 정상들을 초대하여 최고급 잔칫상이나 즐기려는 변사또보다 못한 가짜 예수가 아닌가. 저들은 지금 거짓된 눈물을 흘리며, 거짓된 애국을 선동하고, 거짓된 진실로 우리 국민들을 눈속임하려 든다. 생명이신 예수를 부인하고, 생명인 강을 자기들이 죽인게 아니라며 세 번아니라 골백번 거짓부렁을 일삼는 자들이다.
바흐가 라이프치히 시골교회에서 고독과 절망을 이겨내고 마태수난곡을 비롯한 4대 수난곡을 작곡하지 않았다면 후세에 통일 독일은 분명 어려웠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간절한 신심과 기도 그리고 영성으로 가득찬 문화 예술의 힘이 두고두고 세계사를 바꾸었고 문명사적으로 인류를 한차원 진화시킨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우리가 오늘 바흐의 수난곡, 아니 우리들의 4대강 수난곡을 유념하여 새겨듣고, 이 수난에 각자 동참하며, 이 수난을 마침내 부활로 반역해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라 나는 감히 예언하고 싶다. 평화도 통일도 꿈도 희망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물이 아니고서는, 금모래 은모래 쌓인 강변이 아닌 그까짓 시멘트 인공 수로를 가지고서는 이루어질수 없는 장밋빛 청사진이다. 한강에선 마태수난곡이, 금강에선 마가수난곡이, 영산강에선 누가수난곡이, 낙동강에선 요한수난곡이 들려오고있는 시점이다. 4대강 수난곡은 장차 황금만능주의의 이명박정권의 조곡이 될 것이 분명하며, 생명누리를 지키고 생명의 강물을 지켜낸 선한 천사들의 승전보 오라토리오로 불리어 질 것이다. 패악한 토건족들과 정부는 꿍짝짝이되어 4대강을 개발하면 장차 관광객을 대거 유치할 수 있게되고 경제도 살아날 것이라 호언장담하지만, 미안하게도 문화와 예술을 꽃피워야지 그렇지 않고선 어떤 여행객도 그리고 후손들도 시멘트수로와 조악한 가짜 수변공원에 나들이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몰래 살짝 체포하여 속전속결 신속하게 처단한 예수는 결코 죽지 않고 살아나서 강렬하게 부활했던 것처럼, 시원하게 쏟아질 장마성 폭우와 대자연의 갖가지 섭리는 절대로 인공 구조물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연한 뿌리로 시멘트를 뚫어 부수는 나무와 풀들까지 결코 한해도 가만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저들 아귀 같은 토건족들에게 끊임없이 국민 혈세를 부어대면서 군데군데 땜방질을 해대다가 결국은 막강한 자연의 위력 앞에 두손 두발 다 들 수 밖에 없는, 이건 개발 성장 마귀에 들린 무리들이 백퍼센트 질 수 밖에 없는, 불보듯 뻔한 지는 싸움이다. 사람은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선 도저히살 수 없는 나약한 존재 아니런가. 어떤 정권도 국가도 문명도 자연앞에 세월앞에 무상하지않을 손가. 어떤 인공구조물도 무궁무탈할수 없음을 역사를 통해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지 않은가. 북방의 만리장성도,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그저 한 시절의 유물로 그쳤을 뿐이듯, 5년짜리 단임 이명박 정부가 공적을 삼으려고 급하게 서둘러 세운 거대한 저 담수보나 온갖 조악한 구조물 따위 모두 매한가지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것뿐이면 말도 않는다. 4대강 수난곡이 울려 퍼질 때마다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 우리들의 친구 예수를, 우리들의 작은 예수들을, 생명의 모든 갈래갈래 친구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만든, 고이고 썩게 해서 악취 나게 만든, 홀홀히 멸종하게 만든,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로마 황제와 앞잡이 본디오 빌라도처럼 명백한 역사의 범죄자로 두고두고 취조될 것이다.
(전국 녹색연합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5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