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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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바지락 반지락/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6-11-07 (월) 23:35 조회 :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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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 반지락



전라도 어느 잡지에선 이런 상을 주었다는데 질로존상, 팽야오진상, 어찌끄나상...

질로존상은 아무나 받는 상이 아닐 것이다.

먼 여행에서 돌아오면 질로존상으로 무지무지하게 맛난 물김치 한사발.

거기다가 서해안 어디 항구들 근처에 가서 바지락죽을 끓여먹고

바지락전을 지져먹으면 비로소 ‘바지락바지락’ 몸이 깨어나는 거 같아.

껍데기 집에 인디언 문양을 저마다 새겨놓고 갯벌에 흔하게 살던 바지락.

동무들이랑 바지락을 캐며 놀기도 했지. 여기서는 바지락이라 않고 ‘반지락’이라 부른다.

나 어려서 이야기꾼 장로님이 그러셨지.


“반지락은 말여. 원래 뻘구덩이에 안살고 밭뙈기에 살았재.

그란디 하도 게으른 할마시(할머니)가 물을 안주니께 쩌런 것도 쥔이라고

기둘리다 기둘리다 망달이 나부렀재. 백일정성으로 기도를 바쳤재.

그랑게 하늘이 감화를 받어가꼬 비가 솔찬이 내렸다등마.

반지락은 저그 앞바다까정 확~떠내려 가부렀재. 저실(겨울)이 오니라고

바람 끄터리가 차가운디도 물을 만낭게는 조아서 입을 짝~벌렸재.

오매 그란디 이거시 짠물 아닌갑서. 으짜쓰까잉 묵는대로 내뱉었재.

묵으믄 뱉고 묵으믄 뱉고 안되겄다 싶어징께 봉창문을 딱 닫아걸어부렀재.”

“그래서요?”

“그걸로 끝이재 뭐여.”

“에이 거지깔(거짓말).”

“나가 느그들 놔두고 거지깔 하긋냐.”

“얘기가 싱겁잖아요. 더더 해주세요.”

그제서야 장로님은 씨익 웃으셨다.

“싱거우믄 반지락한테 가서 입좀 벌려보라고 그랴. 짠물이 나올 거시다.

땅금(땅거미)이 진디 질검나게 놀았으믄 날쌉게 집에들 돌아가그라잉.”


문득 바지락이 생각나 하루 먹을 치 사들고,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날쌔게 집으로 돌아왔다.

줌파 나히리의 소설 <저지대>에서 읽었지.

과거는 흘러가버리는 게 아니라 가슴 밑바닥 저지대에 고여 있는 거라고...

부레옥잠으로 가득한 늪을 건너거나 간이침대나 곡물자루에서 잤던 기억,

그 때 먹었던 음식들이 이토록 평생을 끈덕지게 휘감는구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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