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여! 나를 괴롭히는 자 왜 이리 많사옵니까? 나를 넘어뜨리려는 자 왜 이리 많사옵니까?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빈정대는 자 또한 왜 이리도 많사옵니까? (셀라)
그러나 야훼여! 당신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이십니다. 내 머리를 들어주십니다.
나 야훼께 부르짖으면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들어주십니다. (셀라)
자리에 들면 자나깨나 야훼께서 이 몸을 붙들어주십니다.
적들이 밀려와 에워쌀지라도 무서울 것 하나 없사옵니다.
야훼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느님, 구하여 주소서. 당신은 내 원수의 턱을 내리치시고 악한 자의 이빨을 부수시는 분,
야훼여, 승리는 당신께 있사오니 당신 백성에게 복을 내리소서. (셀라)
1948년 제국의 등에 업힌 시오니스트들이 유대 땅에 속속 입성한다. 유대 땅에 잔류를 결심한 26만 명의 아랍 사람들(대부분 농부)은 그날로 제2, 제3의 히브리 민중이 되었다. 구약의 하느님을 유태인의 민족 신, 부족 신으로 보는 눈은 하느님을 한참 잘못 이해한 엉터리 시각이다. 하느님은 온세계 모든 가난한 자의 하느님, 억눌린 자의 하느님, 남몰래 눈물 흘리는 자의 하느님, 길 잃은 방랑자의 하느님이다. 비운의 가족사를 종합선물로 받고 태어난 레바논 시인 아사드 사이드의 노래는 시편 3장의 연장선임이 분명하다.
“우리들은 지배자의 안색을 읽고 그들의 비열한 행동을 눈치 채리. 블랙리스트며 회유, 벌금, 이 따위가 그들의 무기. 우리들이 겨우 가진 권리마저도 빼앗으려 드네. 우리들의 무기는 오로지 단결뿐이리. 단결은 우리의 명예. 적의 보복이 두려워 자기 밭 반마지기도 갈 수 없는 신세. 자기 소유의 집을 짓기 어려운 우리들. 혹시라도 우리들이 한 마음으로 뭉친다면 우리들 우정이 견고하고 강인해지면 그들은 우리를 영원히 멸망시킬 수 없으리라.”
정든 농토를 잃은 실향민의 하느님, 꽁초 담배를 주워 피우는 거렁뱅이의 하느님, 쓸쓸하게 웃으며 골목을 누비는 스쿠터 언니들의 하느님이 바로 우리 하느님이시다. 특정 민족만을 위한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세속적 이익에 혈안이 된 자들은 전쟁과 불의와 혼란에 빠져 결국 허둥대고 말 인생.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민족과 국경에 갇힌 조잔하고 지질한 하느님에다 봄의 복사꽃이 어디 피었는지도 모르는 맹탕 가짜 하느님이리라. 하느님의 시선은 무릇 “땅거미 질 녘 돌이 된 문둥병 곁에. 도망쳐 온 우리들의 손들 곁. 최근의 박해 때 무너진 담벼락 총알받이 너머로” 잠잠히 흐르는 연민의 눈길... (파울 첼란의 시 스트렛토에서)
내 하느님! 내 목소리로 주님께 부르짖을 때 하느님은 그 목소리를 들으신다. 내 목소리로 부르짖는다는 말씀에 그대 주목할 것. 내 목소리 높여 주님께 부르짖나이다! “콜리엘 아도나이 에크라”(4절) 내 목소리가 아닌 남의 목소리로 기도하는 일은, 죄송하지만 헛염불 공염불일 따름이다. 남이 지은 기도문으로 기도하지 말 것! 그게 예수님이 일러준 기도라 해도... 이른바 ‘주기도문’은 기도를 할 때 이런 식으로 하라는 예안으로 가르쳐주신 기도 일 뿐, 이걸 반복해서 주문을 삼으라는 지시가 아니렷다. 인류의 모든 성인들이 바친 기도도 내 마음으로 내 입술로 고백되고 되뇌이는 기도가 아니라면 공중의 뜬구름이요 허망한 주술 미신일 뿐이렷다. 내 삶으로, 내 가슴으로, 내 부족함으로, 내 목소리로 기도하라! 목사 신부 수도자의 입으로 대신 기도하도록 떠넘기지 말 일이다.
3장은 남몰래 눈물 흘리는 약자가 노래하는 굳은 믿음의 노래다. 다윗과 그루스왕국의 공주 마아카 사이에서 태어난 압살롬은 야욕이 가득한 호전적인 셋째아들이었다. 압살롬은 결국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요르단까지 쫒기며 고통당하는 (Passio) 쇠약한 아버지 다윗은 이 실패와 좌절의 길목에서 부활과 승리를 예견하는 예수처럼 하느님의 정의와 선한 심판을 무한 신뢰한다.
앞서 시편 2장의 마시아흐(하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마침내 신약성서에서 예수(하늘이 기름 부은 아들)로 현현해 정의의 승리를 거머쥔다. 예수는 ‘다윗의 자손(마태오 12, 23)’ 으로 여겨지고, 또 불리운 젊은이였다. 다윗의 자손이란 결코 굴하지 않는 생명력, 병마와 시련을 끝끝내 이겨내는 강인함, 궁지에서도 변심하지 않는 믿음의 승리자에 대한 명예로운 꽃다발이다.
‘승리는 당신께 있다’고 고백하는 다윗의 이런 힘찬 찬미(Cantus firmus)는 언제나 승리의 목전에서가 아니라 목숨마저 달랑달랑한 절체절명의 위기, 무너져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때에 바쳐졌다. 반란군 아들에게 쫓기는 한심한 처지의 아버지, 그러니 대놓고 마음대로 울 수도 없는 사람. 남몰래 눈물 흘려본 사람은 다윗의 서글픔을 얼추 짐작이나마 할 수 있으리라. 자기 안위, 자기 부와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백성의 복된 삶을 바라는 다윗!((8절) 착한 농부의 쌀뒤주나 넘보다가 덫에 걸려 죽어가는 쥐 따위는 이런 가슴 뜨거운 간구와 찬미를 정녕 바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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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은 시인, 수필가다.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