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외계인과의 조우
겨울밤마다 별구경이 즐거웠을 야산의 목동, 시편 8편에서 목동은 똘똘하게 노래한다. “이 무변광대(無邊廣大)한 우주공간에 널려있는 모든 성좌들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이 지구라는 별 위에 붙어사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돌아보시나이까.” 우주 어딘가에 우리 인류와 닮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그들에게 우리도 다만 외계인일 뿐이리라. 지구에서 가장 가까이 얼렁거리는, 가장 생김새가 닮은 별이라는, 약 15광년 떨어진 물병자리의 M 왜성. 거대한 별 ‘글리스 876’ 별을 돌고 있는 이 행성은 반지름이 지구의 2배이고 질량은 지구의 6-8배. 표면온도가 204-371°C로 무척 뜨겁지만 땅속에 산대놀음을 하며 사는 생명체가 살지 않으란 법도 없다. 뿐만 인가. 지구를 닮은 별들이 우주 곳곳에 셀 수 없이 많고, 태양을 비롯하여 비슷한 주변 환경을 대부분 가지고 있단다. 이 많고 많은 꿀단지 별들 속에서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우리들,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도르래로 독생자까지 선물로 받아 누린 우리들.
이 땅에 허겁지겁 살기도 바쁜 마당에 무슨 대관절 외계 생명체 얘기에 말려들어가나 따져 묻는 건 너무 각박한 트집이겠다. 우리는 항상 열린 눈으로 우주 건너편까지 내다보고 하다못해 풍선 다발을 한가득 띄울 줄 아는 우주만유의 일원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떠밀리는 지하철 개찰구에서도 우리는 우주로 향하는 은하철도 티켓을 사러 가는 날을 가끔 상상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페가수스’ 별자리는 몰라도 ‘폐가숙소’는 잘 안다. 세계여행을 하면 만날 폐가에 다름 아닌 숙소에서 밤을 새우기 때문이다. 그게 지금 나의 우주여행이라면 우주여행이겠다. 페가수스별이야 지구 어디에라도 가볼 수 있지. 아니 폐가숙소는….
나는 가끔 영화 속 외계인보다 더 흥미진진 호기심 만땅으로 외계인을 닮은 친구들을 만나곤 한다. 우리 주변에 그런 기이한 ‘외계적 삶’을 사는 친구들은 널려있다. 뻔할 뻔자 답답한 인간은 재미없다. 한눈에 목사님처럼 생긴 목사님은 정말 재수 없다.(?) 게다가 돌고래를 비롯하여 동물들도 서로들 사람 못잖게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밤새껏 사랑을 속삭인단다. 우주를 담은 SF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게 본 뤽 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 블루>, 언제보아도 유쾌한 영화다. 첫 장면의 수염 덥수룩한 그리스 정교회 신부님은 우주인처럼 크고 검은 모자와 우주복처럼 생긴 신부복을 걸치고서 아이들 물장난에 찾아와 마음 여린 소년을 애틋하게 격려한다. 그 소년은 장차 산소통 없이도 지구별에서 가장 깊이 바다 속을 헤엄치게 될 아틀란티스의 사나이요 인어의 연인이며 돌고래의 형제로 자라난다.
멀리 우주 저편으로 갈 것까지 없다. 면사무소 건너편 미장원에서 파마를 한 아줌마들은 둥그런 헬맷을 감싼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 식당으로 향한다. 주인 마음대로 개조한 번호판도 없는 일명 ‘딸딸’ 무적 차량은 간벌 개간하는 산채에 활보하며 우주탐사중이고(화성탐사는 이 녀석을 보냈으면), 밤마다 우주비행접시에 놀라 개들은 짖어댄다. 부부싸움이 크게 나면 아랫동네 김씨는 접시를 창밖으로 내던지는데, 밤하늘 휘영청 달그림자 사이로 비행접시들이 출몰하는 것이다.
예수도 땡땡하고 또글또글하게 생긴 별을 따라서 이 땅에 내려왔다. “왕의 부탁을 듣고 박사들은 길을 떠났다. 그 때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마침내 그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눅 2:9) 예수는 마침내 별을 따라서 이 땅을 떠난다. 예수는 하늘로 승천하였다. 별이 되어 나와 그대 어두운 가슴마다 붉고 선명하게 반짝거리는 분이시다.
이제 외계 생명이 ‘있다 없다’의 논쟁은 진부한 소리처럼 들린다. 없다면 너무 심심하고 외롭다, 지구 행성에서의 외톨이 삶.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진화는 우주 전반에 걸쳐 우리의 생각 너머까지일 것이다. 그러니 외계 생명이 꼭 있어주면 좋겠고, 누구들처럼 만날 전쟁 좋아하는 친구들은 아니기를… 그들 외계 여행자들에게도 예수가 인류를 대표하는 여행자임을 알려주고 싶다. 우리의 우주탐험대 대장님임을… 그리고 생 떽쥐페리의 <어린왕자>도 들려주고 싶고, 먼 바다 돌고래 떼를 만나게 해주고 싶고, 매운 김장김치와 흑산도 시큼한 홍어 애탕도 끓여주고 싶다.
그건 그렇고, 아기 예수의 마구간까지 안내한 그 별은 도대체 무슨 별일까. 우주건너편 페가수스별이나 물병자리 은하에서 날아온 미확인비행물체일까. 전쟁놀이 좋아하는 미국의 전신 대로마 제국이 만든 신형 비행체일까. 아니면 아랫동네 김씨가 부부싸움중에 날린 비행접시일까.
웃다가 죽어라
“사막의 수도승들은 완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수도승들 가운데는 죄인들, 실패자들, 조난자들이 있었습니다. 교부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해주는 것이 유머 감각이라 알고, 이 또한 겸손과 밀접합니다. 그래서 자기 죄를 슬퍼 울 줄 알았던 이 옛수도승들은 또한 생각을 너무 확대하지 않는 법과 자기 자신에 대해 웃는 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유머와 형제애를 결합시키는 법도 잘 알았습니다.”(씨토회 수도승 뤽 브레사르의 『수도승 영성』 중에서)
하루는 도둑이 수도원에 들어와 수도승의 물건을 훔치고 있었는데 방 주인인 수도승이 도둑과 마주쳤다. 검은 수도복을 걸친 수도승을 보자 오히려 도둑이 깜짝 놀랐다. 수도승은 멀그스름 서있는 도둑에게 말했다. “형제들이 오기 전에 어서 서두르시오. 그런데 대체 가져갈만한 것이 있기는 하오?” 수도승의 유머에 도둑은 파안대소를 하고 싸던 짐을 아마 풀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이쿠나 하면서 보따리를 내던지고 줄행랑을 놓았을 것이다. 담력 짱에다 유머 짱인 이 수도승, 예수에게서 웃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제자답다.
예수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웃었을 법한 장면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린이들을 안으시고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막 10:16) 무릎에 앉은 아이들, 바짓가랑이를 꼭 붙잡은 꼬맹이, 노총각 예수는 아마 아빠가 된 듯한 기분을 사뭇 느꼈을 장면이다. 또 “예수께서 올리브 산 내리막길에 이르렀을 때 수많은 제자들은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에 대하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대망하던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나귀를 탄 예수는 민중의 환호에 답하며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으리라. 게다가 갖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예언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예수를 바라보며 제자들의 기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음도 물론이거니와.
속을 다 뒤집어 보이는 ‘안성얼레지꽃’처럼 깔깔 목젖이 다보이게 웃는 예수의 얼굴. 뜨거운 피가 화악 도는 생기 넘치는 일순간, 삶의 고비를 제대로 넘긴 사람들과 함께 예수는 밝게 웃으며 매끈둥한 얼굴을 서로 부볐다. 예수는 아마도 유머가 굉장히 넘치는 분이셨을 게다. 청천 하늘에 별들도 많은 밤, 흙굼벵이처럼 고향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과 ‘날밤을 까면서’ 어울리며 뜨거운 구들처럼 재미난 이야기들을 다붓다붓 나눴을 것이다.
그대여, 부디 울다가 죽지 말고 웃다가 죽어라! 뼈 시린 겨울밤 친구들과 무릎을 포개고 앉아 발밑의 벼랑만을 괴로워 말고들 제발 드높은 창공의 하나님을 우러르라. 그래 시린 이빨을 드러내며 하늘만큼 땅만큼 웃고 또 웃으라. 팽팽한 생의 긴장감, 서걱서걱 칼 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대도 나침반은 어김없이 한 방향을 가리키느니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자. 그리 살면 우리 입술은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핀 것처럼 굳이 치과의사가 사용하는 핀셋으로 벌리지 않아도 다물 수 없이 벌어진 웃음 얼굴이 되고 말리라.
호숫가 사람들
“겨울 추위도 무시못할 만큼 매섭던 나의 어린 바닷가. 여름엔 바지락 겨울엔 굴을 따다 채운 가난한 호주머니. 시골의 장터, 오늘은 일요일. 해뜨기 한참도 전 대야를 이고 향하는, 할머니의 꿈. 우리 건강한 꿈. 빌고 또 비는 할머니의 꿈….” 가수 ‘루시드 폴’의 노래가 FM을 통해 흐른다. 두더지가 쪼르르 달려가듯 일순 지나가 버리는 노래인데 여운은 그러나 마음을 오래 울리는구나. 바닷가 마을에서 목회할 때 나도 그런 할머니들의 목사로 한솥밥 먹으며 지냈었다. 고소한 굴전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바람찬 포구 갯땅에서 직접 굴을 따오던 할머니 신자의 사랑. 새벽 일찍 예배당 마루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던 할머니들.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분들을 한시라도 잊을 수 있을까.
겹겹 쌍둥이 연탄들이 빼곡 쌓여진 골목, 고장이 난 문짝들이 동시다발 덜컹대는 집들, 그 어두컴컴하고 추운 집들에 노란 알전구가 끄먹끄먹 반짝인다. 외롭고 슬퍼도 주님을 의지하며 돋보기안경을 꺼내설랑 성경책을 타령조로 읽는다. “복되어라, 딱하고 가난한 사람 알아주는 이여, 불행한 날에 야웨께서 그를 구해 주시리라.”(시 41:1) 시리던 마음 든든해지는 하늘 말씀들… 예수님도 갯일 하시는 할머니들이 계시는 호숫가(바닷가)에서 공생활기 많은 날들을 ‘눌러 앉아’ 사셨다.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리로 가셨다. 그러나 나사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공동번역에 의하면 ‘사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로마 군대의 중요한 주둔지이기도 한 이 곳은 또한 예수운동의 거점으로 제자들을 규합하고 하나님나라 소문을 널리 퍼트리기 시작한 곳이다.
예수가 가버나움 동네에 머물고 있을 때 로마군의 장교 백부장이 어느 날 문득 찾아왔다.
“주님, 제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럼 내가 가서 고쳐주도록 하지요.” 흔쾌히 청을 들어주셨다. 그러자 로마장교 백부장은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낫겠습니다.”
이방인인 로마 사람의 이런 믿음에 예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어떤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습니다. 친구들이여. 잘 들으시오. 많은 사람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겠으나 이 나라의 백성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땅을 치며 통곡할 것입니다.”(마 8:5-13)
하인은 호숫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가난한 신분의 사람이었다. 백부장의 믿음은 어디서 출발했을까. 궁금증은 중풍병으로 누워있는 하인에게로 마음을 모아본다. 그만큼 사랑하는 하인이라면, 얼마나 충성되고 발바투 납작 엎드려서 섬기는 종이었겠는가. 이국에 정착하여 외롭고 거칠어진 백부장의 마음을 온전히 앗을 만큼 아름다운 마음과 행실을 지닌 하인이었을 것이다.
바닷가 마을에서 나는 그런 튼튼한 믿음과 섬김을 살아가는 아름답고 선한 낮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하인의 마음, 백부장의 나란한 마음… 그 진실함과 겸손함에 축복하신 예수의 마음까지….
약자보호법
해마다 반복되는, 미흡한 복지 정책과 예산. 이번엔 새로운 이슈가 된 아이들 학교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쪽 목소리가 제법 큰 무리로 고약하다. 부자든 가난뱅이든 모든 아이들이 나라의 따순 울타리 안에 있음을 배우게 될 좋은 기회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최소한 학교에서 만큼은 더 이상 배고프지 않게 될 획기적인 방안임에도 왜 한쪽에선 반대를 주장하는 걸까. 다수를 위한 시설 개선은 전자제품이 자주 바뀌듯 해마다 바뀌는 문제다. 이보다 생존권을 박탈당한 어린 생명을 위한 기본권 확보에 관심을 가져야 할 교회조차도 목소리가 저마다 다르다. 성서의 주된 입장인 ‘약자보호’에 대한 이해가 전반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어떤 가난한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양식을 꾸러 와서 겉옷을 담보로 잡혔을 때는, 해가 질 때까지 품팔이해서 갚지 못하거든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라” 출애굽기 21장부터 23장까지 계약법전을 살펴볼라치면 시종일관 이와 같은 약자보호법이다. 민중은 가난하고(poor) 억압받고(oppressed) 소외당한(estranges) 사람을 가리킴이다.
원하는 만큼 잘살지 못할 때 느끼는 상대적 가난은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해도 틀린 표현이 아닐 것이다. 이는 소득격차와 전혀 상관없이 느껴지는 감정일 것이다. 이와 달리 어찌할 수 없어 배고프고 추운 절대적 가난을 가리키는 프토코스(ptochos)는 신약성서에 34회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16장의 주인공 거지 나사로도 바로 이 처절한 가난상태를 겪고 있던 애달픈 사람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신약성서는 프토코이(ptochoi)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절대적 가난에 주눅 든 사람을 가리킨다.
예수 당시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당시의 상류층 사람들에 의해 멸시, 형벌, 격리당하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사람들 모두를 말한다. 가령 강제로 로마 수비군에 협력했던 세리들, 그리고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수준으로 인해 율법을 지킬 수 없었던 나머지,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불리었던 사람들을 말한다, 죄인이란 말은 종교적 세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붙여준 레텔임이 분명하다, 이밖에도 당시 노예로서 사창가에 잡혀 있거나, 다른 노예의 감시 하에 돈 많은 포주에게 봉사하던 창녀들도 이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거지, 가난뱅이, 장애인, 즉 사회에서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보호도 받지 못하는 모든 사람이 포함된다. 그밖에 여자들, 양치는 목동들이 포함된다. 요컨대 가난한 사람들이란 인권을 박탈당하고, 신분이 격하되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집단(실제로는 사회의 다수 집단)을 가리킨 것임을 알 수 있다(쇼트로프, 슈테게만 공저 『나사렛 예수: 가난한 자들의 희망』에서)
예수는 이 가난한 사람들 곁에 머물며 비참한 그들 현실 속에서 하나님 나라 소식을 골골샅샅이 전파하였다. 또한 수시로 나눔의 밥상공동체를 가지고, 긍지를 가질만한 격려의 설교를 영검하게 보탰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눅 6:20)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을 부효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약속해주신 그 나라를 차지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약 2:5) 그의 제자들은 예수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누구와 함께였는지에 대해 이처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민중이 목회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켜 계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역사의 자랑스러운 주인이라는 것을 깨달아 스스로 일어서게 해주는 일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목회의 정수이리라.
“너는 할 말 못하는 사람과 버림받은 사람의 호소를 위해 입을 열어라. 입을 열어 바른 판결을 내려 고통 받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어라.”(잠 31:8-9)
그들 ‘프토코이’들이 당당하게 입을 ‘열어’ 자기 목소리를 너끈하게 내도록 하는 것, 그들의 목소리를 ‘강구어 듣고’(북한말, 고루 듣고) 그들 입이 ‘되어’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 이것을 병행하는 일이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명심해야할 사명이렷다.
시인 예수의 시낭송회
예수는 모름지기 시인이다. 시인이라는 게 무슨 무공훈장도 아닐 것이고, 신춘문예가 안겨주는 증표가 아닐 터, 누구나 시인이라 자칭 타칭 할 수 있는 거겠지만, 시인은 세상의 모든 어런더런 야단스러운 말을 휘갑쳐서 오므리고 반듯이 펴는 위대한 존재다. 모름지기 예수가 남긴 말씀들을 살펴보면 면면이 당대 시어의 여지없는 꽃놀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도 스승으로부터 시를 배운 사람들이기에 하나같이 시인의 어투, 글투를 ‘따라쟁이’로 사용한다. 시인이 되지 못하고서는 예수를 말짱하게 모시는 제자라고 할 수 없음은 이 때문이렷다. 뿐만 아니라 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스승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 새겨들을 수도 없음이다. 대신에 예수는 어려운 시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이른바 ‘그들만의 시세계’에 빠져 무동 타고 계시는 분이 아니었다. 예수의 시는 쉽고도 쉬운 시시한 시, 해방의 불덩이가 되어 쉬쉬하면서 퍼트려진 불온의 시, 독특하고 괴상한 어법의 주목받는 시가 아닌 평범한 ‘껴울림’을 가진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노래였다.
내가 쓴 시인데 내가 읽을 때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아버지란 시를 쓸 때 나는
연필을 살짝 책상위에 놓고
노점에서 과자 팔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입 속에서 중얼중얼
“아버지, 아버지…” 부른다
어머니란 시를 쓸 때
지금쯤 엄만 어디서 일하고 계실까?
점심을 길 한복판에서 잡수고 계실까?
모래 나를 때 큰 돌이 발 위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나는 결코 울지 않는다
그러나 시를 읽으면서
내가 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이름 모를 한 나라바깥 아이가 지은 시라는데, 예수의 시가 바로 이런 시렷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는 고향산천에 남겨놓고 유랑생활을 시작한 청년 예수. 본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미혼모의 아들로 기구한 인생. 마병장사를 다니다가 돌아오면 “본래 네 아버지는 하나님이다!”고 말하던 손등 갈라진 어머니의 슬픈 목소리. 식민지 백성의 설움과 목수 노동자의 고달픈 오방부리 몸뚱아리, 돌아보면 모두 노점상하는 아버지들, 모래와 돌을 나르는 잡역부 어머니들…. 예수는 이 ‘땅의 시인들’ 속에서 집게뼘만큼 도드라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시인으로 자라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일까. 크리스티아누스란 누구일까. 바울 형제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어서 사는 삶’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처럼 시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자기 이야기를 자기가 쓰고 자기가 말하게 되는 경지일 것이다. 바울 형제는 우리가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 질 때까지 내가 너희를 다시 낳는 수고를 하겠다”고 각오한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란, 곧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정신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시인의 마음이렷다. 초라하고 꾀죄죄한 낮고 천한 세상을 지극이 바라보며 연민하는 마음이다. 자연세계를 우습게 여기며 앉아 뭉개지 않고 만물의 신음(롬 8장)에 귀 기울이는 어깨울음의 사람이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연을 어떻게 괴롭히고 못살게 굴까 쪼아보는 걸 용납할 수 없는 게 시인의 마음이다. 4대강 난개발을 찬성하고 지지하는 시인, 그리스도인, 성직자, 사제라는 작자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하여 글을 좀 쓰시고 말씀도 좀 하시는 분들이 엉정벙정하게 늘어놓는 궤변에 가까운 말들은 다 무엇인가. 우리는 오늘 예수의 마음을 가슴가득 품고, 예수가 읊던 시가 바로 내가 읊고자 했던 시라는 것을 시인(是認)하는 시인(詩人)이기를…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시가 그리스도인다운 내용, 그리스도인다운 언표(言表)이기를….
내가 쓴 시에 내가 눈물 흘릴 수 있기를... 내 양심이 찔리고 아프지 않는 시를 쓸 수 있기를… 헛공부 안한 그런 말, 꾸밈없이 진솔한 설교와 강연, 두루두루 이어 나를 수 있는 그런 본보기 글을 쓰는 우리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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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은 목사이며 시인, 화가다. 남녘교회에서 10년동안 지내다가 지금은 담양 병풍산 골짜기에 은거하며 가끔 여행을 떠난다. <참꽃 피는 마을>, <종소리>, <예수 동화> 등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