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
무엇보다 신발장의 인연이 그리 흘렀던 때문이었겠지. 수년간 역마살에 휘둘려 고산병에 시달려 가면서 4천∼5천, 이름만 들어도 숨막히는 고산 티베트와 북인도 라다크까지를 떠돌아 다니게 되었는데, 이보다 더 높은 곳, 그러니까 8천고지 히말라야 고정을 올라 다니는 등산인들이 경이롭게만 보일 밖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쪽 방면엔 소질과 인연이 아녔는지, 턱 낮은 고원이나 찾아 휘돌고 머무적머무적 거리면서 사막 고지로 발길을 돌리고는 하였다.
최근 한국의 한 여성 산악인이 히말라야 14개봉우리, 8천의 고지를 속속 정복했다면서 호들갑스럽게 자랑하는 걸 구경했다. 유감스럽게도 완등이라는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증언과 함께 심층보도물이 방영되는 데도 말이다. 구경조차 딱한 노릇이다.
이미 오래전 세계의 산악인들은 후원사 자본을 등에 업고, 현지인으로 구성된 전문 셀파들에 의해 기획된 등정 행위를 반성하고 있는 마당이다. 인간의 한계를 이겨내며 차근차근 산을 흠숭하듯 오르는 일, 방송사나 기업 자본의 도움 없이 스스로 개척해 오르는 등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 그게 등산인의 바른 자세라는 것이다. 더구나 뜻있는 산악인들은 무슨 아이돌 스타나 유명배우나 된 것처럼 언론에 과잉 노출하는 일을 멀리하고 광고 산업 따위에 이용되는 것도 극도로 자제들을 하더라. 앞선 정상정복시대에 대한 뼈저린 반성으로 오염된 히말라야 캠프일대를 청소하는 등산인도 생겨났다. 인류의 대모신 히말라야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변모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산악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그런 방향으로 선하게 바뀌어야 옳다. 와보아도 별 볼 일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앉아있는 낮은 산 언덕,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인 사막, 그런 처녀지에 한번 가보려는 탐험가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어떤 유난스러울 일도 없겠고, 무욕한 바람을 따라 다만 적요하고 숙연한 밤을 지새고 누운 게르 움막 지붕 위에 몇포기 떠있는 어린 별들. 그 별들조차 반갑고 고마운 소박하고도 고독한 여행. 이게 내가 바라는 여행이며 등정이며 유랑의 진면목이다. 산을 올라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오르고 싶고, 바다에 이르러서도 그런 마음으로만 다다르고 싶어라.
지난 달 나는 몽골 사막에 가 있었다. 서쪽 고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은 동쪽 고비 사막. 삐끗 열린 문틈을 통해서 별빛이 한움큼 쏟아져 내리던 고비 사막. 도르르 말린 풋풋한 바람을 펼쳐서 청천에 날리면 거기 검은 독수리가, 독수리 떼가 소낙비를 몰고 찾아오는 곳. 비암 바수렌 다바 감독의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개>에서 보았던 유목민 양치기 부부와 세 아이들, 그리고 늑대와 개, 어디라도 둘러보면 야트막한 구릉 지대. 하늘에도 양떼구름, 땅위에도 양떼무리... 그런 영화속 잔잔한 풍경이 현실로 코앞에 닥치는 경이로움. 허브꽃향기가 끝없이 푸른 목초지를 아침안개마냥 뒤덮고 있더라. 나는 지글거리는 평원을 시원스럽게 달리던 흑마와 백마, 건강한 넓적다리를 지닌 황마, 걸음마를 막 뗀 듯 귀엽고 앙증맞게 걸어 다니는 망아지들, 옹기종기 모여풀을 뜯고 있는 순한 염소와 양떼, 그리고 자유로이 방목된 소떼가 찻길을 가로막기도 하는 초원의 게르 촌을 따라서 온종일을 사륜 구동 지프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름모를 작은 꽃에서부터 바람만 살짝스쳐도 후욱- 요동치는 진한 향기의 허브식물들이이 “야호! 야야호!” 술렁이며 꽃방석을 깔고 앉아들 있었고, 나는 사막으로 접어들기 목전의 그 풀밭에 주저앉아 시름겨운 범벅땀을 닦으면서 책을 꺼내 시 한수를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 "나는 시들어 잠든 꽃처럼 떠나가리라. 명성 따위 허망한 것. 세상에서 얻은 명예나 평판 따위 참으로 부질없는 것. 꽃은 무수히 피어나고, 알고 부르는 노래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내 영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 슬프고 괴로워라. 이 땅에 태어난 것이 헛되고 헛된 것이었음을... 그러니 친구여. 오늘 어깨동무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노닐자꾸나. 지금 우리는 꽃들의 세계에 초대받아 살고 지나니 생명의 근원이신 분의 처소에 마련된 이 꽃들과 노래들도 만약 당신이 죽게된다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땅은 잠시 잠깐 머무는 곳, 알 수 없는 하늘나라도 매 한가지 아닐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사랑과 행복이 거기에도 있을 것 인지는... 진정 영원한 사랑은 여기 이 세상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 (멕시코 사막의 어느시인이 부른 노래)
나 또한 물론이다. 나도 꽃들의 세계에 초대 받은 몸으로 충분히 감격 감사! 노란 들꽃이 만발한 몽골초원에서 지긋 눈을 감고 감사의 기도를 바치지 않을 수 없는... 오! 이다지도 환한 눈부심이라니, 아름다움이라니. 다만 헛되어도 여기서부터 시작인 영원한 인연들이여!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바 없이 맨바닥에 털부덕 주저앉아 쓸쓸한 바람의 여운을 호젓하게 즐기고 싶었다. 이란의 수피들은 여행이 세가지 형태를 가진다고 믿었단다. 첫째는 일상의 수면에서 깨어남이나 우리의 망명의식과 함께 시작하는 신에게 향한 여행, 둘은 자신을 부정하는 데에서 인간적 자아의 해체후에 시작되는 신 안에서의 여행, 셋은 신으로부터 시작하며 동기 부여된 순례여행이나 인간 영혼의 본연을 찾으려 애쓰는 신을 통한 여행... 그래 스페인의 영성가 십자가의 성 요한은 모든 것을 음미하는 그곳에 가려면 아무런 즐거움도 찾지 말아라. 모든 것을 알수 있는 그곳에 가려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말아라.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곳에 가려면 아무 것도 가지려고 하지 말아라.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그곳에 가려면 아무것도 되려고 하지 말아라." 이렇게 여행자들에게 긴히 조언하고 있더군. (도로토 죌레의 <신비와 저항>에서)
사막의 게르에 도착하기 전 나는 몽골 말을 떠듬떠듬 배웠다. "샘배노! 안녕하세요, "마이를라! 감사합니다, 비뜨기 사나저! 걱정하지 마세요. 거우는 사막, 애매는 할머니, 이워는 할아버지, 애지는 엄마, 아프는 아빠, 솔롱거스는 무지개란 뜻으로 한국 땅과 한국인을 그렇게 부르곤 한단다. 우리가 정말 몽고인들에겐 무지개 사람들일까? 태매는 낙타, 머루는 말, 어뜨는 별, 아름답다라는 말은 “살릉베나!”라고 한다고... 몽골 여행 중에 만나는 모든 여인들에게 살릉베나라고 말해 줄테다, 흠흠.
울란바토르 외곽 지대에서 시작해 하루 종일을 차를 몰고 달려가 캄캄한 오밤중에 도착한 사막엔 고개를 날름 내밀고는 황급히 도망치는 사막쥐, 무릎이 굵은 쌍봉 낙타와 틉틉한 흙탕물처럼 고인 마유주 한 사발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시릴 지경이던 초록빛은 오간데 없고 검고 쌀쌀한 밤이 삽시간에 내려와 촛불을 켜고 군불을 지펴야 하는 시간. 놀랍게도 게르 바깥은 천지간 적막을 가르는 은하수의 물결이 선명하고도 분명하게 찰싹거리고 있었다. 나는 게르의 당번지기 청년이 퍼다 준 미지근한 물에 날렵하게시리 고양이 세수가 늘상이다. 거나해지는 술자리를 뒤로하고 밤하늘 가까이로 한 발 짝 더 다가섰다. 모든 도시의 전깃불로 속이려 해도 속일 수 없는 이 남루한 지구별의 허위와 가식, 저기 저 별들은 전깃불도 없이 저렇게도 소중하고 아련하게 빛날 수 있는 것인데... 지평선을 모조리 잇고도 남을 만큼의 굵고 넓은 은하수의 띠. 전깃불의 문명이 아니라면 이것을 어디서라도 보고 살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시방 너무 많은 양의 전깃불을 켜고 사는 것이다. 일순간 별빛을 야코죽이는 전깃불 따위 얼마나 옹색하고 옹졸한 댓거리인지 분개심조차 들 정도였다. 오로지 경쟁과 경쟁, 물신주의로 가득찬 세상에선 따돌림 당하는 저 순수한 별빛들... 사람의 눈에 별빛을 담으면 사람은 별이 되는 것이고, 사람의 눈에 전깃불을 담으면 사람은 전깃불이 되는 것이다. 전봇대들이, 전깃불들이 야밤에 웅성거리면서 신이 주신 고유의 별빛을 내쳐왔고 배제하여 왔다. 기계 문명의 사람들은 마침내 기계가 되어 버린 채 사랑도 그리움도 모르는 망가진 심장으로 깜박거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 여행자의 시계에 사는 시침 분침은 너무도 빨리 달아나는 게 흠이라면 흠이겠다. 하루 이틀 시간이 금세 흘러 사막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당번지기 청년은 끼니때마다 빵을 굽고 양을 잡아 손님을 대접하고, 낙타를 몰아 사막 길을 인도하는가 하면, 어떤 장애라도 그는 척척 해결하며 앞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쉴틈이 생기면 일행과 저만치 떨어져서 담배를 태워 무는 게 유일한 낙 같아 보였다. 저물녘이면 서편 하늘의 노을을 바라보면서 말아 피우는 봉초 담배를 입에 물고, 밤사이 방목한 낙타떼를 데리러 새벽 일찍 일어나 말을 몰고서 너른 초원을 뒤지고 다녔다. 문명의 어떤 그늘도 느껴지지 않는 그 해맑은 청년의 눈망울에는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스물하고도 일곱 살 더 보탠 그 청년의 세월. 사막에서 태어나 사막에서 자라고, 초원과 사막을 오가면서 게르에 몸을 누이고 생활하는 청년. 지금은 여행자들에게 모래산 사막 길을 순례하도록 돕는 일을 맡아 근근이 밥벌이를 하고 있는 청년. 그의 가슴엔 시방 사랑이라는 꽃이 필 나이. 꽃물이 번져 입술조차 붉고 머리칼은 유난히도 검은, 몽골리안 유목 청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빛나던 그 사막 청년이 내 귀에 들리도록 내던진 한마디는 나를 일순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나마익 아와드 야와치!" 우리말로 나를 데려가 주세요 그런 뜻이란다... 대관절 어디로 저를 데려가 달라는 말인가. 절대 극빈의 상황으로 치달을 살벌하고도 냉엄한 도회지 한복판으로? 그 메마른 전깃불 밤하늘 속으로? 혼기에 차면 무수한 조건들을 따지고 사랑의 감정은 하찮게 치부하는 도시의 불나방 여자들 속으로? 그러나 청년은 의미없이 내던진말인 듯 피식 웃더니만 게르로 바쁜 발걸음을 떼며 돌아섰다. 청년도 자신의 처지와 사정을 잘 알고 있고,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제법 순응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등을 토닥거려주고 싶었다. 사막여우처럼 종종 걸음으로 뒤따라가서 사랑의 결핍, 그보다 큰 결핍은 없을 것이라며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의 게르에 먼저 촛불이 꺼지고, 밤하늘의 별들이 저만치 사라져갈 즈음 나도 짐을 부린 내 게르로 돌아와 일과를 마감하는 양치질을 시작했다. 미간의 늘어가는 주름살에 놀라는 그대여. 사막의 주름을 한번 만나보면 될 일이다. 사막에선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세월을 돌이켜보게 만든다. 인생, 꿈, 사랑, 청춘, 기억들 모두...
이튿날 사흗날 하루에 한뼘씩 자라나는 사막의 주름살, 그러다가 광풍이 불어닥치면 송두리째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리는 비운의 면면들. 낙타를 타고 그 무소무욕의 길을 타박타박 순례하다보면 깨달음을 얻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랴. 끈끈이 녹색테이프처럼 붙어있던 견고하고 완강한 문명의 습성들, 질긴 기계 문명의 인연들조차 소금 사막에선 한발 두발 뗄 때마다 모두 옛구습 옛생각 옛인연일 따름. 벗어던지라, 지워버리라.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의 호흡과 걸음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지금을 옳게 사는 것, 자연의 일부로 나를 받아들이는 일, 불사막에서는 이런 삶의 바른 태도가 보다 분명하게 터득되고 실천되는 땅이다. 불볕더위, 말로만 들어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상 40도를 훌쩍 뛰어 넘는 폭염 가운데, 아프리카 사막의 유목민이 부른다는 기우제를 위한 민요라도 한바탕 불러야 좋을 성 싶은, 물 한방울 비 한방울이 아쉬운 사막. 쩍쩍 타는 입술에 마른 침을 바르면서 노래를 부른다.
"비 한방울 보내지 않는 샛바람을 어떻게 견디나. 비여! 내려다오. 폭포수같이 퍼부어 다오, 우리는 비오기만을 애타게 바라네. 비만 내린다면 모든 게 잘 될 텐데. 비만 내리면 곡식도 우수수 자라고, 아이들은 좋아라 하고, 여인네들이 즐거워하며, 젊은이들은 밤새껏 노래를 부르리. 노인들이 행복해하면 모든 게 잘 될 텐데. 비만 내리면 모든 게 잘 될 텐데. 마파람으로 바뀌기만 한다면 개울물이 철철 넘쳐날 텐데. 곡식은 창고로 들어가 곡식창고는 넘쳐날 텐데. 비만 내리면 모든 게 잘 될 텐데."
몽골에도 비슷한 노래가 있다더군. 당번지기 청년이 부르던 노래 “비야 내려라. 초원이 더 푸르고 아이를 가진 말이 배부르도록. 비야 내려라. 사막은 덥고 여행자는 갈증에 시달리네. 사랑하는 사람이 건너편에서 기다린다. 비야 내려라."
사랑을 구하는 청년의 노래가 고비 사막에 두루 울려 퍼진다. 구관조가 따라 부르는 노래처럼, 나도 입술을 벙긋거리며 낯선 노래를 짐작으로 따라 부른다. 황금빛 목청을 지닌 뮤즈 칼레오페의 아들은 바로 오르페우스. 연인을 찾아 먼길을 나서려할 때 그에게 쥐어진 무기는 오직 노래였다. 오르페우스가 부른 노래는 죽음의 강을 오가는 뱃사공을 감동시키는 것은 물론, 지옥문을 지키며 철두철미를 입에 달고 살던 수문장까지 잠재우기도 하는 신비하고 놀라운 힘을 가졌다. 사랑을 만날 때도, 단비를 부를 때도, 그리고 세상이 보다 쓸쓸하거나 안타깝지 않았으면 싶을 때도, 우리여! 노래를 부르자꾸나. 노래를 가까이 하자꾸나. 무난히 낮은 구릉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불타는 사막에서, 가슴이 무너지듯 별들이 무너지는 새벽하늘까지, 연민과 애상에 젖은 모든 노래들을 기억해내고 함께 열창하는 것이다. 인간이 찬송가를 부르지 않으면 하느님이 지상에 머물 수 없는 것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더 이상 부르지 않을 때 민주주의가 위독하게 되는 것처럼, 위독한 사랑을 되살리는 데에도 노래만한 응급처방은 다시없을 것이리니.
(전국녹색연합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0. 9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