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게시물 441건
   
노루 궁뎅이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9-05-01 (수) 14:47 조회 : 136
글주소 :


노루 궁뎅이

 

산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 올 테야. 고개 너머로 부엉이가 넘어가고 산토끼도 넘어간다. 큰 산이 뒤로 쭉 늘어져있는데, 호랑이만 없고 다 사는 거 같다. 노루 엄마와 아기가 행차를 하는 날엔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나도 숨을 꾹 눌러 참게 된다. 산비탈은 미끄럼틀이고 칡넝쿨은 천연 그네. 동물원 식물원 찾아갈 필요가 없다. 미국에 다녀온 할매에게 물었다. “어디가 가장 재밌으셨나요?” “으응. 디질년들이라고 아시오? 거기가 참말로 재미지고 좋등마.” “아아. 디즈니랜드.” “암만 좋대도 울 동리만 하겄소. 사람이 말이 통해야 쓰재잉. 당최 귀머거리론 못살재.” 동네는 흥미만점 디즈니 수준. 거기다가 소일거리 밭일이라도 손발이 착착 맞는 이웃들이 산다. 창고에는 노루발 못뽑이가 있고, 뒷산에는 노루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봄날. 소들이 사는 아랫동네 우사엔 소들이 항상 웃는 낯이다. 소 우자를 써서 우하하웃는다. 강아지와 송아지가 뛰노는 풀섶엔 무당벌레가 기지개를 켜고 비행을 준비 중이다. 뭐든 제자리에 있고, 제 할일을 하며 지내야 동네가 평안하다. 개도 똥을 늘 싸는 곳에 싸고, 노루똥도 늘 같은 곳에만 보인다. 고라니와 노루는 울음소리도 다르고 얼굴 생김도 달라. 우는 건 알지만 웃는 건 모르겠다. 옛날에 아버지가 충청도 교회에서 집회를 하고 오셨는데, 아무리 웃긴 얘길 해도 반응이 싸늘하여 여쭤보니 집에 가서 웃을라는디유.” 그랬다나 어쨌대나. 노루는 항상 웃는 표정이다. 궁뎅이는 하얀 털로 하트자가 새겨져 있다. 사랑을 아는 놈임이 분명해. 노루가 행복하면 산이 왼통 행복해진다.

노루 궁뎅이를 보면 재수가 좋다 해서 산사람들은 비손을 모으고 합장. 칡 캐러 산을 타는 이들이 돌을 깨고 지렛대로 삼고자 노루발못뽑이, 속칭 빠루를 챙겨가기도 하는데 이 빠루가 네 빠루냐 산신령이 금빠루로 바꿔주기도 하는 모양. 나도 노루 궁뎅이처럼 비짝거리며 산둘레를 거닌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 세상. 산짐승의 아기들도 무럭무럭 잘 자라길.

     

 

 

 

    


   

게시물 441건
번호 이미지 제목 날짜
441 싹둑싹둑 싹둑이 09-18
440 명절 국수 09-18
439 천사들의 합창 09-04
438 심야버스 08-30
437 레몬 나무의 기적 08-30
436 참깨 들깨 08-30
435 줄줄이 약봉지 08-30
434 꼬무락 꼬무락 08-13
433 짜이 고프스키 07-17
432 사막과 슬픔의 볼레로 06-29
431 오로라의 집 06-25
430 이야기, 춤, 명상 06-25
429 느린 강 05-31
428 블라디보스토크 05-31
427 가면 올빼미 05-22
426 부산 갈매기 05-22
425 망명객 05-08
424 노루 궁뎅이 05-01
423 중국 영화 04-24
422 전화 소동 04-24
421 성냥불 04-24
420 북한 여행 회화 04-24
419 개그맨 04-24
418 실업자 04-24
417 마음의 크기 04-24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