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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북극여우와 여관/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8-12-19 (수) 15:18 조회 :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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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여우와 여관



 강원도에선 여우를 영깽이라고 한다. 강원도민 율곡 선생이 십만 양병설을 주장할 때도 영깽이를 들먹이셨다는 우스갯소리. “왜눔들이 움메나 빡신지 영깽이(여우) 같애가지고요. 조총이란 것을 맹글었는데요. 쪼그마한 구녕을 뚤봐서 눈까리를 들이대고 존주어서리 들이 쏘며는요. 쎄사리가 빠지쟌소. 일이만은 택도 없고 십만 군사는 길러내야 떼까리로 뎀비도 끄떡없지비요. 내 말을 똑떼기로 들어야 될 끼래요...” 조선시대에도 야생에 흔했던 여우, 여시, 영깽이. 
야생사진가 호시노 미치오는 사십대 초쯤 불곰에 습격당해 죽었다. 알래스카에서 대학생활을 했는데, 여우 사진을 많이 찍었다. 북극여우는 깜찍하고 귀여우나 먹이 앞에선 날렵하고 생존 능력도 뛰어나다. 연보라빛 야생 크로커스가 핀 강가 둔덕. 가문비나무숲이 흐드러진 에스키모 마을. 바다표범 육포를 나눠먹으면서 겨울을 나는데 야생쥐가 ‘떼까리’로 기어든다. 배고픈 겨울엔 큰사슴 무스와 카리부, 여우도 사람 사는 마을에 출몰한다. 사진가는 “여우가 사람 길목에 나타날 때는 ‘아- 정말 춥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술회한다. 


덴마크 작가 요른 릴은 그린란드에서 16년을 살았다. 일기 삼아 쓴 <북극 허풍담>은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폐지수집상이 하도 글씨체가 특이하고 내용도 재밌어서 출판사에 보내 빛을 보게 된 책. 어둠과 추위 속에서 개들을 기르고 곰을 사냥하고 여우를 만나는 일. 북극 사람들이 모여 노는 풍경은 정말 재밌다. 사람이 하도 귀하고 소중해서 여기선 비정규 인력이다 뭐다 사람을 괄시하거나 착취하진 않는데, 사기꾼들은 어디나 있다. “개벼룩을 함께 나눌 예쁜 여자가 있다면 좋겠네.” 허공에 키스를 날리던 고독한 아이슬란드인. 문명인들은 이 원주민들 상대로 사기를 치고 총을 팔고 사람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바리장대로 사방을 두른 여관. 북극권 툰드라 캠프. 정성을 다해 먼길 손님을 마중하던 원주민들. 벽난로는 공기를 잘 돌리고 있는지, 방은 따신지, 주인은 마치 제 친척이나 자녀가 온 것처럼 손님을 맞았다. 장작불 아래서 커피를 마시며 첫 사냥길을 들려주던 그 촌로들은 이제 죽고 없어라. 카리부 사슴뿔이 걸려있는 북극 시골 여관. 앙금쌀쌀 다가온 북극여우가 불빛에 안도하며 살길을 찾던 집. 그런 여관은 이제 책속에나 있는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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