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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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경향 신문] 앞으로의 삶/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8-10-24 (수) 16:34 조회 :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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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삶 




명상하는 모임에서 벌어진 일. 각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단다. “손가락을 잘라야 할 성 싶네요. 도박에서 헤어나질 못해요. 부인 몰래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삽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예요. 오늘도 사실 거짓말하고 이 자리에 왔어요.” “나는 요즘 누구를 사랑하고 있어요. 배우자가 알면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 사내가 말했다. “나는 남의 말 하는 걸 좋아한답니다. 그것도 배나 부풀려서 말이죠. 이 자리가 파하면 동네방네 다니면서 떠들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흥분이 되네요.”  


사람들은 모였다하면 남의 말하길 좋아한다. 그만한 재미도 없겠지만, ‘카더라 통신’에다가 ‘주관적인 오해’도 적지 않다. 시골사람들은 순박해서 최소한 뒤통수를 치지는 않는다. 양동이 가득 톱밥을 떠 난로에 집어넣고 불을 쬐는 시간.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소설가 임철우의 <사평역>엔 역장이 톱밥을 바께스(양동이의 일본말)째 부어놓고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첫눈 얘기, 지난 농사와 물가에 관한 얘기, 얼마 전 새로 갈린 면장과 머잖아 읍내에 생기게 된다는 종합 병원까지 화제는 이어진다. 처음엔 역장과 농부가 주연이었지만 차츰 여자들도 끼어들게 된다. 그들 중 음울한 표정의 젊은 사내만이 끝내 입을 열지 않은 채로다... 톱밥 난로의 열기가 점점 강하게 퍼져 오르고 있다.” 데모를 하다 유치장에 잠깐 갇히고, 그 후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대학생 청년. 젊은 날 내 모습 그대로여서 이 소설을 한참 사랑하였다. 소설엔 미친 여자도 등장하는데 기차를 타고 떠났다가 또 돌아오곤 반복한다. 그녀는 오늘 막차를 타지 않았고, 역 대합실에서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중이다. 


겨울채비로 장작개비를 쪼갰다. 시꺼먼 연탄을 닮은 강아지, 아버지 고향이 시모노세키인 시바견 블랙탄도 놀러와 거들어 주었다. 시바 시모노세키. 무슨 욕 같아라. 남의 흉한 말, 남 얘기는 개한테나 들려주련다. 난롯가에  빙 둘러앉은 뒤엔 덕담부터 건네자. 또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을 나눠보자. 우리에게 있어 진정 귀중한 시간은, 앞으로의 삶일 테니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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