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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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조을라고/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8-09-19 (수) 14:57 조회 :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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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을라고 


오래도록 기억나는 얼굴이 있다. 순수하고 해맑은 평양 소녀의 얼굴. 까마득해라. 20년도 더 지난 일. 기자출신 사진작가 임종진 샘이랑 가끔 만나곤 했는데, 북한에 다녀온 사진들을 교회에서도 전시 하고 싶었다. 남녘 아재 아짐들이 평생처음 소박한 북한 보통사람들 얼굴을 보게 되었다. “아그덜도 순허고 이삐요잉.” 뿔난 사람들은 없다는 걸 새삼 확인했던 전시였다. 

우리 모두는 한때, 아니 지금도 김광석의 노래를 사랑한다.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간 잊힌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날들이다. 잔뜩 찌푸린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본다. 광장에 함께했던 가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이를 윽 물고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흐린 가을 하늘에 쓴 노래 편지였다. 이쪽 사람들은 이 말을 자주 한다. “조을라고 안 그라요.” “아따 조을라고 그라재.” 궂긴 일, 아픈 일이 생기면 그때마다 조을라고, 조을라고... 곧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비나리를 한다. 
한때 이런 제목의 책이 유행이었지. 거꾸로 읽기, 삐딱하게 보기, 급기야 ‘오랑캐로 살기’가 나오자 앗~ 이제 그만. 세상이 요지경으로 돌아가자 저항과 반항의 시대는 불길처럼 타올랐다. 지나고 보면, ‘조을라고’ 좋아지려고 그랬던 게다. 

구름도 쉬어가는 땅. 북에선 개마고원, 남에선 진안고원. ‘조을라고’ 폭염이 괴로웠어라. 바람이 살랑살랑, 구름은 둥실둥실. 광산이나 산판 벌목공들이 산위에서 땀을 식힌다. 계단밭에는 짚으로 죽을 쑤어 먹은 소들이 보인다. 소녀가 입은 치마처럼 푸른 하늘아래 염소가 뛰논다. 빨간 목도리 같은 홍시와 능금밭. 흐린 날에는 우산을 들고 나가는 것처럼 당신이 내 곁에 있어만 준다면 겨울이 와도 끄떡없으리. 손 저리도록 감사납고 뼈아픈 일 닥친대도 기억하세요. 좋아지려고 그런다고. 어금니를 물고 참고 견디다보면 그렁그렁해진 당신의 눈에 무지개가 피어난다. 눈뿌리가 아득해도 머잖아 좋은 날 꼭 보리라 믿으며, ‘조을라고 조을라고’를 반복해본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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