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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멜갑시/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8-08-15 (수) 14:31 조회 :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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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갑시




 일손도 잡히지 않고 나른하기만 하여라. 낮잠 ‘시에스타’가 있는 나라라면 좋겠단 생각. 나 꼬맹이 때 학교에서 강제로 낮잠을 자게한 일이 있었다. 기억에 한동안 그랬다. 의자와 책상을 모두 뒤로 밀치고, 교실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무조건 잠을 자라는 것이었다. 전기불도 언뜻하면 나가고, 외등도 부족하고, 초저녁부터 귀신들이 돌아다니던 판국에 설마 잠이 부족했을까. 군부정권 때였는데, 군인들이 까라면 그냥 까야했다. 콧물을 줄줄 흘리던 못난이 짝꿍이랑 방구쟁이들이랑 누워 잠을 청했으나 한 시간 동안 해찰만 부리다가 땡.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아이들은 급기야 엉덩짝을 두들겨 맞았다. 어떤 해엔 독성 물질이 남아있는 비료포대를 뒤집어쓰고 방공호에 들어가는 훈련도 받았다. 방독면이 없으니 비료포대라도 뒤집어쓰라는 어이없는 지시사항. 사이렌이 울리자 개들이 동시에 으아앙 울기 시작했다. 학교 소사가 키우던 검둥개가 한마리 있었는데, 사택에 살던 교장선생님을 물었다가 철장에 갇혀 양심수로 수감 중. 동네에서 제일 크게 울었다.

  
영화배우이자 감독 멜 깁슨도 아니고 이쪽 동네엔 ‘멜갑시’라는 말이 있다. ‘괜히’, ‘이유 없이’의 방언. 괜히 갇힌 건 아니지만, 갇힌 개는 유독 서럽게 컹컹 울었다. 어린 주인을 따라온 개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보통 만나 연애질. 소사 아저씨네 개는 운동장이 자기 집 안마당이라고 유세를 떨곤 했었는데, 독신 수도회에 가입한 뒤로는 검둥개 씨가 말라갔다.  

여름 한낮 비구름이 말갛게 풀어지고나면 높고 푸르게 드러나던 가을하늘. 멜갑시 가슴이 설레어지는 찬바람. 감과 대추가 발간 얼굴로 익어가고 들판에 벼가 눕는 소리도 들렸다. 소프라노 매미가 공연을 마치고 떠날 즈음이면 멜갑시 어디론가 나도 떠나고 싶어졌다. 완행버스가 먼지를 뿜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풍경. 형과 누나들이 속속 동네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산업화로 바뀌어 기억속에나 있는 내 고향 풍경들. 
멜갑시 질벅질벅 여자애들을 놀리고 괴롭히던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소사네 개가 그 애를 콱하니 물어버렸다. 두번째 구속 수감. 지긋지긋한 양심수 생활로 '개고생'하던 개를 풀어주기 위해 난생처음 쇠톱을 가지고 열쇠를 잘랐다.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도둑’이 되어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멜갑시 여자애들이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검둥개가 내 이야기를 했던걸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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