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섹션/ 임의진의 세계음악여행 1]
검은 돛배, 파두의 땅 리스본에 정박하다
음악이 생긴 전설 가운데 가장 허망한 얘기는 도미틸 드 비에나시스의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라는 짧은 동화. 옛날 옛적에 거대한 침묵이 있었단다. 침묵이 재채기를 크게 했는데, 온갖 음표들이 공중으로 튀어나왔고 그게 음악이 생긴 시초. 예측불허 재채기답게 갈피를 잡기 힘든 무엇이라는 것. 재채기라니. 버스나 지하철에서 누가 재채기를 하면 방금 튀어나온 음악을 붙잡아 볼 일이다. 북미 인디언의 전설엔 슬픈 미망인 곁에 대신 곡을 하며 울어주는 새에게 다음 생에선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단다. 새처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새의 환생이라지.
옛 포르투갈 사람들은 사우다지(Saudade)에서 음악이 생겼다고 믿었다. 사우다지는 심장에 피톨만큼 가득 찬 슬픔, 망망한 바다 건너편의 그리움, 간절하게 뻗어만 가는 보고픔. 고향을 생각하는 눈물어린 가슴들. 그 뿐만이 아니다. 마치 우리 한국인들이 즐겨쓰는 ‘정’이라는 낱말처럼 미운 정 고운 정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다. 바다로 떠난 어부를 기다리던 여인이 있었는데, 어부의 시신을 싣고 검은 돛을 단 배가 항구로 돌아오자 여인은 통곡했고 그 울음은 바람을 타고 번져서 처음 노래가 되었단다. 노래가 울음이라고 믿은 포르투갈 사람들은 가슴을 뜯으며 우는 것처럼 구슬프게 노래를 부른다.
‘파두(fado)란 말은 운명, 숙명이라는 뜻의 파툼(Fatum)에서 나왔다. 이베리아 반도에 유행하던 세속음악 칸티카(Cantiga)와 만난 브라질풍의 음악 모디나(Modinha)가 거리로 나가 불리면서 아주 간편하게 기타 한대 반주면 충분했다. 거기다 이슬람의 음유시인 영향을 받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풀듯 노래를 한다. 파두는 여자가수들이 등장하는 리스본식 파두가 있고, 남자가수가 등장하는 코임브라식 파두로 나뉜다. 독재자 살리사르는 파두의 내용이 비관적이고 슬픈 현실을 다루는 게 못마땅하여 금지곡들을 지정했다. 3F라 하여 지배자의 입맛에 맞는 파두와 플라멩고 음악, 축구, 투우(fight bull)로 민심을 조종했다. 파두의 노랫말에 기층 민중들, 어부들의 가여운 삶과 사랑 이야기 대신 스타반열에 오른 투우사의 승전보를 노래하게 했다.
리스본 사람들을 리스보아라고 부르는데, 리스보아들은 리스본 전망대가 있는 언덕지기 골목에서 주로 파두를 부르고 또 들었다. 비밀경찰들이 돌아다니는 낮을 제외하곤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공연을 했는데, 남몰래 더 서럽고 더 비관적인 노래를 부르는 게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그들의 방식이었다.
12줄짜리 악기 ‘기타라’는 파두를 위해 만든 기타. 기타라가 울리기 시작하면 리스본의 가장 유명한 파두 골목 알파마는 청중들로 들썩이게 된다. 돌길과 수은등의 좁은 골목인 이 알파마에 파두 가수들이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한 여인이 바로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다. 그녀는 이 알파마 빈민촌에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말리아가 한살 때 가출하여 할머니 손에서 자라야만 했다. 알파마 지역은 브라질과 아프리카 등에서 이주한 흑인 혼혈들이 주로 거주했다. 낮에는 알칸타라 항구를 떠돌며 할머니랑 오렌지 행상, 재봉사, 탱고를 추는 춤꾼으로 밥벌이를 삼아 살았다. 10살 무렵부터 그녀는 노래를 달달 외우기 시작했는데, 라디오에서 가르델의 탱고 노래가 나오자 그 순간 반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열아홉 되던 해 오빠가 대신 파두대회에 이름을 올려 출전한 게 전국구 파두 가수로 데뷔 .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돛배’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 모두 넋을 놓았다. 이는 파두의 전설인 마리아 세베레를 흉내낸 것. 항상 맨발로 노래하던 세베라는 리스본 최초의 파두 가수였다.
“당신이 탄 검은 돛배는 밝은 불빛 속에서 너울거리고
당신의 두 팔은 지쳐서 흐늘거리는 듯 했어요.
당신이 그 뱃전에서 나에게 손짓하더군요.
그러나 바닷가 노인들은 말했어요.
아마도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요.”
절절한 사랑노래 파두는 코임브라 지역에 가서는 민주주의를 노래하고 시민들의 합창이 되어 울려 퍼졌다. 검은 망토를 걸친 대학생들이 파두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민속 음악의 채집과 함께 대학생들의 의식이 맞물려 격정어린 노래가 되었다. ‘수제 알폰수’는 대표적인 민중가수요 파두가수. 그는 새노래 운동 ‘노바 깐쏭’ 운동을 이끌었다. 게다가 기타 제작자와 연주자들을 발굴하여 학구적인 기반과 기교까지 진일보할 수 있었다.
로드리게스는 리스본 파두와 코임브라 파두를 절묘하게 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재정권에 기생하면서 현실도피를 노래한 파두의 흐름에 쐐기를 박고, 포르투갈의 블루스를 정착시킨 것이다. 그녀는 하늘로 떠나고 딸 ‘둘체 폰테스’가 대를 이어 파두를 들려주고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와의 오랜 인연을 힘입어 파두로 옷을 입힌 ‘시네마 천국’이나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부를 때는 마치 어머니의 환생을 보는 듯싶다.
리스본 알파마 지구엔 뮤소 두 파두, 파두 박물관이 있어 2백년의 파두 걸음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골목엔 포투 와인을 파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도우르 강변으로 늘어선 포도나무들은 햇빛에 달구어져 어디보다도 검고 붉은 즙을 낸다. 바다에서 죽지 않고 포도주에 죽을 수 있는 확률이 더 높다는 속담이 있다. 또 이런 속담도 있다. ‘파두를 듣고 울지 않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아라. 네가 힘들고 슬플 때 박수치고 웃을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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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 작가. 월드뮤직 전문가. 현 아울로스 미디어 월드뮤직 담당자. 스테디셀러 <여행자의 노래> 등 20여장의 선곡음반을 펴냈다. EBS 세계테마기행,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등 방송을 통해 제3세계 음악을 소개하기도... 메이홀 & 이매진의 관장으로 지역문화 발전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