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작은것이 아름답다 2018. 1월호
세상의 모든 음악(월드뮤직), 귀를 쫑긋해보는 떠돌이 개
생명운동은 휘어져서 구불구불 갈래길 가지가지 샛길. 통통배를 탄 어부들은 까무룩 잠들어서도 바닷길을 훤히 짐작해. 항구를 나선 배들은 툭 튀어나온 겹눈으로 머나먼 길을 훑어보고 톺아보면서 제 길들을 착착 찾아간다. 생명이다 생태다 하면 자연환경 초록빛으로 물든 숲부터 떠올리는 게 일반. 하지만 생명을 모신 그물망엔 세계를 구성하는 갖가지 요소들이 노아의 방주처럼 하나 가득 포함되어 있다. 저마다 다르고 별난 문화 예술과 역사를 지닌 사람들. 그들이 모여 사는 마을. 뚜렷이 자기 자리에서 빛날 수 있게끔 만들어나가는 일이 바로 생명운동이겠다.
은은한 미광으로 반짝이는 별 지구는 직경이 12,742 킬로미터. 목성이 무려 139, 822 킬로미터인 것에 비교하면 정말 새끼손톱만큼 작은 별이렷다. 빛은 1년 동안 9조 4억 5천만 킬로미터를 달려간다. 끝도 없이 넓은 이 우주. 그 가운데 은하수라 불리는, 우리가 거주하는 이 은하는 4천억 개 이상의 별을 품고 있는데, 폭이 10만 광년이고 두께가 1만 광년 되는 나선형 원반 은하란다. 이런 은하수가 우주에는 어림잡아도 1천억 개가 넘는다고 하니 놀랍다. 이 한없이 넓고 큰 우주에 우리 인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경우의 수, 압도적인 다양성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이러한 천연의 자연 환경도 그렇고, 인류라는 ‘생각하는 동물’이 나타난 것도 바로 다양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그 다름으로 우리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신비. 다양성이 용인되지 않는 자리엔 어떠한 창조와 변화도 생겨날 수가 없다.
다양성은 개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고립이나 단절을 뜻함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동시에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나무와 나뭇가지, 그 끝에 나뭇잎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떨어져 구르는 낙엽은 썩어 거름이 되고 양분이 된다. 꽃과 씨앗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바깥세계 우주와 합일 한다.
인간의 몸은 70퍼센트가 물이라고 한다. 우리는 강물과 하늘을 날아가는 비구름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 강이 인간의 한 켠이고 구름이 또한 인간을 구성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점을 자주 간과해버린다. 연결부정이란 무관심과 냉소까지도 포함된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여기고 무관심해 버릴 때, 눈을 닫고 귀를 닫아걸 때 생태계와 나는 단절되고 끊어진다. 곧바로 숲이 훼손되고 강물은 썩어 들어간다. 마을이 찢어지고 공동체가 무너지는 무서운 일이 생겨날 것이다.
만약 이웃에 대한 관심을 끊고 더는 노래를 같이 부르지 않는다면 ‘공존하는 미래’가 가능할 수 있을까. 세계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종교와 문화예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특히나 음악은 세계의 공용어, 그 자체로 세계 공용어다. 음악을 통해 인류는 하나가 되고 언 마음을 녹이며 자매형제애를 나누게 된다.
민요는 매우 단순한 멜로디와 리듬을 따서 만들어졌다. 원형질이라고 할 만큼 밑바탕이 되는 음악인 게다. 마치 휘파람을 불고 바람의 소리로 흥얼거리는 것. 그것이 처음 노래가 되어 불리어졌다. 시각 영상은 전두엽을 통해 여러 경로를 거쳐 뇌로 들어가지만 음악은 귀로들어와 해마를 지나 뇌로 직접 들어간다. 청각은 시각보다 그래서 먼저 눈뜨고 아주 늦게 닫히게 되는 것이다. 내 노래가 내 귀로 들리고, 우리가 부른 합창이 우리 귀로 들릴 때. 인간은 입과 귀를 가지고 음악이라는 경을 외는 것이다.
인류 최초엔 토템들이 몸짓으로 음악을 동시에 표현했다. 무당은 죽은 선조의 목소리가 이승에 나타나도록 기를 쓰고 애를 썼다. 어느 때는 죽은 동물의 소리가 덜컥 나오고, 자연계의 온갖 잔소리가 풀어지고 잔웃음을 지으면서 ‘예기치 못한 상징’을 드러내고 그랬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희생양
예수를 가슴에 되살리려고 순례자들은 노래를 합창했다. 그렇게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는 오늘날의 서양음악을 낳은 모태가 되기에 이른다.
아시아에서도 토템은 여러 갈래 여러 줄기의 음악을 쌓아올렸다. 악기들이 태어나고, 악기는 아기처럼 끅끅 울어댔다. 대나무처럼 속이 텅 빈 나무들을 구해다가 입으로 부는 악기를 만들고, 쇠줄을 꼬아 퉁기는 악기도 만들었다. 여기다가 가객들은 이야기를 얹어서 노래를 불렀다.
한국 사회에 부족한 다양성 가운데 하나가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전에는 영미권 팝이 주한미군과 함께 들어와 호재를 맞았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지고 케이팝이라는 아이돌 댄스곡들이 범람하면서 딴 세상이 되어버렸다. 민속악기와 전통 창법으로 맥을 이어온 우리 국악은 날로 쪼그라들면 들었지 여태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전통을 경시해서는 물론 안 되겠지만 한편에서는 악기를 개량하고 현대화하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남태평양 발리에 가면 가믈란이라는 타악기가 주가 되어 흐르는 전통 음악이 있다. 그간 많은 개량을 통해 오늘의 구성미를 갖추게 되었다. 주로 우붓에 가면 가믈란 연주를 어디서라도 들을 수 있는데, 요즘엔 호텔 고용인으로 음악인들이 생겨났지만 과거엔 평범한 동네 주민들이었다. 옷을 지어 팔거나 기념품을 만들어 내다 팔던 사람들이었다. 우붓 사람들은 저녁이면 하나둘 모여 가믈란을 연주한다. 그들은 마음으로 서로 통한, 수세기를 걸쳐 내려온 그들의 일체된 호흡으로 놀라운 음률을 들려준다. 여행객들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게 된다. 더러 무관심한 이들은 호텔로 쏙 들어가 버리고 말지만, 그러면 여행의 재미 절반을 잃어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첼리스트 요요마는 거대한 중국과 서양의 만남을 <고향집을 노래하네 Sing Me Home> 음반에 담아냈다. 협연한 ‘실크로드 앙상블’은 강남사죽과 고금의 선율, 경극의 격한 감정까지도 담아냈다. 대만에서 월금을 연주하며 민요를 부르다 죽어간 ‘천다’라는 소리꾼을 기억한다. 우리로 치면 소리꾼 임방울이라 하겠다. 그는 월금의 줄이 끊기면 나뭇잎에 부딪히는 바람소리에도 장단을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잘 아는 중국 악기 얼후는 심장을 쥐어짜게 만드는 악기다. 얼후와 삼현이 궁합을 맞춰 소글소글거리면 밤하늘도 슬퍼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데 그것이 별똥별 유성우다. 일본의 오키나와엔 사미센이라는 악기가 있다. 고양이 가죽이나 개가죽으로 만들던 것이 오키나와에 들어가서는 뱀가죽으로 만들어졌다. 중국의 삼현이 이곳에 전파되어 사미센이 된 것이다. 몽골에 가면 산위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메아리로 울려퍼지는 ‘후미’라는 창이 있다. 후미란 목구멍이라는 뜻으로 알타이 주민들의 노래 기법이다. 산골짜기의 물소리와 산의 메아리 소리를 닮은 노랫가락. 낙타몰이꾼들은 말의 형상이 새겨진 마두금을 들고 노래를 들려준다. 몽골말로 모린호르, 모린(말) 호르(칠현악기)란 뜻. 마두금 하나면 어디서나 노래판이 걸쭉하게 벌어진다. 아시아만 해도 이처럼 수많은 음악의 다양성이 서로 연결되고 영향 받으면서 촘촘히 짜여 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은 민속음악(민족)과, 고전음악(계급), 그리고 대중음악(시대상황)으로 나뉜다. 이제 와서는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은 거의 한 가닥으로 통전되고 교환된다. 비틀즈를 클래식으로 연주하고, 베를린 필은 록밴드와 협연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걸 크로스오버라고 한다.
보통 월드뮤직이라고 부르는 건 제패자, 강자들로부터 강요된 음악이 아닌 모든 것들을 가리킨다. 그런 대중음악을 가리켜 월드뮤직이라고 통칭한다. 1980년대 들어서 이른바 제3세계 음악을 ‘세상의 모든 음악, 월드뮤직’이라 부르게 되었다. 쿠바 음악인들을 소개했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월드뮤직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라틴 음악 붐을 일으킨 불후의 영화였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엘콘도 파사’ 정도를 찾아듣거나, 비틀즈가 인도악기 시타르로 연주한 노래들을 기억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원형질에 대해 관심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구슬피 울다’라는 뜻의 ‘쇼로’가 뿌리내린 브라질, 19세기 말에 피어오른 삼바. 쿠바의 손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조앙 질베르토의 보사노바가 울려 퍼지고, 빅토르 하라는 기타를 총처럼 쥐고서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웠다. 가르델은 탱고를 위해 평생 수많은 노래를 불렀고, 인디오의 피가 흐르던 집시 비올레타 파라와 안데스 산처럼 웅장했던 메르세데스 소사는 망명을 거듭하며 노래를 불렀다. 공산주의의 미학을 노래한 실비로 로드리게스는 지금도 신화의 한 장면으로 전설의 ‘유니콘’을 노래한다. 카에타노 벨로조와 질베르토 질이 기타를 찰랑거리며 노래하면, 카를로스 조빔은 보사노바풍으로 시를 읊고, 유팡키는 음유시인 파야도르(기타하나를 들고 민요 팜파를 노래하는 유랑악사)가 된 것처럼 여행자의 선율로 노래하고, 그룹 킬라파윤은 수염을 나풀거리면서 민중의 단결을 강력히 호소한다. 반도네온이라는 작은 아코디언으로 피아솔로가 탱고 춤곡을 연주하면 누구든 짝을 찾아 춤을 추고 말게 된다.
신화의 나라 그리스 항구에서 자란 노래풍인 렘베티카. 우리가 잘 아는 테오도라키스나 하지다키스, 반젤리스와 같은 작곡가들. 나나 무스쿠리 같은 가수들이 그쪽 항구에서 뼈가 굵어졌다. 파바로티의 우렁찬 목청과 엔니오 모리코네의 서정적인 가락은 이탈리아의 성글대는 바닷바람이 느껴진다. 포르투갈의 블루스라는 파두와 사우다데. 아르헨티나의 부두에서 태어난 탱고는 모두 한없이 슬픈 작별의 가락이다. 자메이카의 음악신 밥 말리의 레게 사운드와 쿠바 항구의 살사춤은 파도가 출렁거리는 모든 ‘울렁거림’이다. 대륙을 건너던 떠돌이 집시들도 노래를 낳고 키웠는데, 플라멩고와 러시아의 집시 로망스, 떠돌이 유대인의 음악이 그것이다. 예술가들이 한데 만나는 파리에서는 샹송이 ‘빠담빠담’ 울려 퍼졌다. 북미의 인디오들은 플루트와 전통악기, 가죽 악기들로 자연에 깃든 신성을 찬미했다. 멕시코에선 결혼과 장례식에 그룹을 이룬 마리아치들이 음악을 들려주는데, 뚜나(방랑자)의 후예들이다. 피들과 오르간으로 장중히 노래하는 노르웨이와 북유럽의 성가들은 가히 압도적이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시인들이 들려주는 신비로운 켈틱 음악과 포크송들. 장차 북미 대륙으로 건너가 위대한 작사가이자 가수인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를 낳게 된다. 어디보다 별이 맑게 뜨는 아랍 땅. 수피들이 들려주는 꾸란 낭송과 악단이 들려주는 춤곡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모래사막의 서사요 한편의 교향시다.
세상에는 무궁무진 다양한 음악들이 존재한다. 다채로운 삶들이 빚어낸 무지갯빛 풍경이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유명한 방랑자요 그 자신 유랑 악사였다. 노래를 곧잘 부르고 ‘리라’라는 악기를 전문가 수준으로 켤 줄 알았다. 만토바 후작은 다빈치에게 류트 기타와 바이올린 현을 골라주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피렌체와 밀라노를 거쳐 프랑스로 떠나고 그가 결국 별세했던 투렌 지방까지, 긴 여정동안 불멸의 화가에겐 식지 않는 호기심과 음악이 늘 곁을 함께했다. “지인들과 악기를 타고 노래를 부르기를 즐거움으로 삼은 방랑이었다. 물리학과 수학에서 심오한 관점과 대담성을 찾아냈다. 생물학자의 느긋한 배려심과 의사로부터는 인체를 탐사하는 예리한 응용을, 수리학자는 물의 조류에 대한 과학을. 그가 보기에 지구는 어마어마한 태양계에서 별 것 아닌 별일 뿐. 그러나 미지에 대한 줄기찬 호기심을 이끌어냈다. 이 지상의 것에 대해 위대한 예술가는 열렬한 관심을 쏟아냈다.” 전기 작가 앙드레 드 헤베시는 이 방랑자의 무한한 관심을 이처럼 얘기하고 있는데, 다빈치가 들려주는 음악이 어떠했을까 너무도 궁금하고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유랑 악사들이 노래하는 걸 자주 봤다. 내 인생은 그들이 불러준 노래가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어떤 값나가는 물건보다도 귀하고 소중한 노래들. 떠돌이 개들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음악을 같이 들었다. 길거리 연주자 앞에 개와 내가 단둘이서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개와 내가 길거리에서 살아남아 축복받은 것처럼, 사막여행을 하면서도 낙타와 게르바라 불리는 물가죽부대만 있으면 평온한 천막집에 잠들 수 있었다. 무거운 무쇠 솥단지를 끼고 사막을 어슬렁거렸던 족속들은 모두 도망치고 말았다. 오직 낙타 등에 가벼이 앉아 질긴 게르바에 물을 챙긴 이들만이 사막을 횡단할 수 있었다. 사막 길에서 모래바람은 곧잘 노래를 들려주었다. 우웅우웅 울어대는 모래바람소리. 유목민의 거처에는 늘 음악이 함께 있었다. 그곳에서 들은 낯선 음률은 무한히 다양한 세계를 대면하는 첫대목만 같았다.
상품으로, 또 대중매체를 통해 강요되는 돈벌이용 음악들. 이 노래나 저 노래나 마찬가지이고 이 가수나 저 그룹이나 다를 바 없는 재생산 복사된 음악과는 차원이 다른 만남이었다. 알량한 명상 음악 부류가 아니라 ‘다른 음악’, ‘낯선 음악’ 그것이 바로 정직한 생태 음악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노래하는 건 목소리를 자랑하기 위함이나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라네. 내 기타도 이상과 감성을 갖고 있지. 내 기타는 대지의 마음과 비둘기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네. 기쁨과 슬픔 모두를 축복하는 성수 같은 존재라네. 비올레타가 말했던 것처럼 내 노래의 의미는 노동하는 기타, 봄바람에 속삭이는 기타에 대해서라네. 내 기타는 부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네.
내 기타는 사다리. 저 별까지 성큼 올라가는 사다리라네. 노래하며 죽기로 결심한 사람의 참된 진실이 담겨있는 노래라네. 의미 있는 노래는 고동치는 핏줄을 타고 흐른다네, 내 노래는 덧없는 칭찬이나 어떠한 명성 따위 필요 없네. 그러니 한 마리 종달새의 노래. 이 땅 저 깊은 속에서 들려오네. 세상만물은 잠들고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이곳에서 용감했던 이 노래는 영원히 부활할 것이리라.”
빅토르 하라가 남긴 노래 ‘선언(Menifesto)’의 노랫말은 달콤하면서도 엄중하다. 1973년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 과정에서 처형된 그가 남긴 노래가 핏물이 되어 흐른다. 그의 몸에는 30발이 넘는 총탄이 발견되었다. 우리들의 가슴속에도 잇따라 총탄이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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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은 시인, 순례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