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게시물 474건
   
[임의진의 시골 편지] 오리알/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7-08-23 (수) 14:09 조회 : 967
글주소 :



오리알



 계란말이를 엄청 좋아한다. 김을 넣어 쫄깃해진 계란말이 한 조각. 봄소풍과 가을 운동회 때 맛보던 음식. 계란탕도 못지않게 좋아한다. 거기다 하얀 쌀밥 한 숟갈, 깍두기 몇 조각 넣으면 계란 비빔밥. 간호사였던 누나랑 잠깐 자취를 했던 때가 있었는데 석유곤로에 올려서 찐 계란탕. 퀴퀴한 자취방에 맛난 훈기가 올라왔다. 미대를 나와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꺽다리랑 연애를 한참 할 때였는데, 훗날 매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셋이서 종종 밥상에 둘러앉았다. 지금 같았으면 짜장면 값 뜯어내 얼른 밖에 나갔을 텐데(자리를 비켜드렸을 건데) 계란말이 계란탕이 너무 맛있어서 미안 쏘리. 

아버지는 넓은 목사관 뒤뜰에다 닭과 오리를 키웠다. 마당엔 지렁이들이 살고 냇물엔 물풀이 가득. 닭은 타조처럼 키가 크고 오리들은 거위만큼 뚱뚱하게 자랐다. 오리들도 닭처럼 알을 낳았다. 그런데 알이 하얗고 굵었다. 삶으면 계란보다 맛나다. 오리알 요리도 종종 맛을 봤는데 입에 넣을 때마다 오리가 꽉꽉 울어서 미안했다. 오리는 애교많은 친구다. 뒤뚱거리며 걷는 것도 귀엽고 입주댕이도 노란 립스틱을 발라 재미있다. 물장구를 칠 때는 정말 부지런해. 날개는 있으나 마나지만 물갈퀴 발목 하나는 야무져서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없다. 땅을 두발로 걷던 오리가 물에 들어가면 편안하게 앉아 헤엄을 치는 건 참 신기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풍자 산문 <코이너 씨 이야기>. 오리를 닮은 코이너 씨에 실긋 웃게 된 장면. 코이너씨가 냇물에서 물놀이를 하는데 갑자기 물이 들이찼다. 근처에 구조선이 있나 둘러보는 사이 턱밑까지 물이 차올라 버렸다. 코이너씨는 희망을 버리기로 했다. 냅다 물가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희망을 버려야 산다는 싱겁디싱거운 이야기.  
비좁은 철창에 갇힌, 한없이 불쌍한 닭과 오리들 이야기는 마음 아프다. 오리알만한 눈물이 뚝뚝. 그 옛날 청정한 냇물과 마당은 남아 있지도 않다. 허우적거리다 제 힘으로 헤엄을 치게 된 선각자들도 매우 드물다. 이 총체적 난국의 세계에다 둔 희망을 버릴 때 비로소 모두가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 



<경향신문>





   

게시물 474건
번호 이미지 제목 날짜
374 [임의진의 시골 편지] 게미 맛집과 평양 동무/ 경향신문 04-25
373 [임의진의 시골 편지] 당나귀 귀/ 경향신문 04-18
372 [임의진의 시골 편지] 리틀 포레스트/ 경향신문 04-11
371 [임의진의 시골 편지] 나무 목요일/ 경향신문 04-04
370 [임의진의 시골 편지] 잔소리꾼/ 경향신문 03-28
369 [임의진의 시골 편지] 유행가/ 경향신문 03-21
368 [임의진의 시골 편지] 차력사/ 경향신문 03-14
367 [임의진의 시골 편지] 신문지 한 장/ 경향신문 03-07
366 [임의진의 시골 편지] 귀하고 귀한 것/ 경향신문 02-28
365 [임의진의 시골 편지] 요롤레이 요롤레이/ 경향신문 02-21
364 [임의진의 시골 편지] 강강술래와 윷놀이/ 경향신문 02-14
363 [임의진의 시골 편지] 강원도 팝콘/ 경향신문 02-07
362 [임의진의 시골 편지] 참새와 까마귀의 마을/ 경향신문 01-31
361 [임의진의 시골 편지] 농민가/ 경향신문 01-24
360 [연재/ 임의진의 세계음악여행 1] 검은 돛배, 파두의 땅 리스본에 정박하다/ 무등일보 01-17
359 [특집/ 임의진의 그림 여행]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광주일보 01-17
358 [임의진의 시골 편지] 어촌 겨울풍경/ 경향신문 01-17
357 [임의진의 시골 편지] 눈썰매/ 경향신문 01-10
356 [임의진의 시골 편지] 통일 올림픽/ 경향신문 01-03
355 세상의 모든 음악(월드뮤직), 귀를 쫑긋해보는 떠돌이 개 / 녹색연합작아 2018. 1월호 12-27
354 [임의진의 시골 편지] 솔로 천국/ 경향신문 12-27
353 [임의진의 시골 편지] 동계 캠핑장/ 경향신문 12-20
352 [임의진의 시골 편지] 늑대가 우는 겨울밤/ 경향신문 12-06
351 [임의진의 시골 편지] 시인의 사랑/ 경향신문 11-29
350 [임의진의 시골 편지] 별이야! 눈이야! / 경향신문 11-22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