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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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냉장고/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7-08-09 (수) 16:37 조회 : 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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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할머니, 어머니 무릎에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고 자랐던 우리. “할마니. 옛날 얘기 하나만 해 주라이. 으응?... 무서운 도깨비 얘기 말고 재밌는 거.” “나는 슬픈 이야기가 젤 좋드라. 꽃이랑 뻐꾹새 이야기...” 임철우의 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에 나오는 춘례 누나. 턱을 괴고 할머니를 조르는 말. 부채를 부쳐주며 들려주시던 전설따라 삼천리. 냉장고에서 막 꺼낸 수박 맛, 구수한 보리 미숫가루 맛 같은 달달하고 시원한 이야기들. 엄마들은 자기는 더워도 땀띠가 난 아이들을 향해 쉬지 않고 부채질을 했다. 부채 바람들이 모이고 모여 가을바람이 되었지.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굴뚝처럼 키가 자라나고 바람 따라 한들거렸다.    


초등학교, 옛날엔 국민학교. 그 때 처음 집에 냉장고가 생겼다. 어머니는 날마다 미숫가루를 풀어 냉동실에 얼리고 그걸 교회 일보는 분들에게 열심히 날랐다. 그러면서 한 알씩 살짝 내게 집어주셨는데 그게 얼마나 달고 맛났는지 몰라. 집집마다 냉장고가 생겨나고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각자들 살림하는 재미가 생겨났다. 이웃끼리 함께 먹고 마시던 일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대나무로 짠 평상에  드러누워 보았던 달구경 별구경도 줄어들었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생긴 뒤부터 누구든 한번 집에 들어가면 얼굴보기가 귀했다. 외로운 천국에서 냉방병을 앓고 사는 현대인들은 날로 늘어만 갔다. 


영화 <장군의 아들>은 재밌었는데, 요즘 장안의 화제 ‘장군의 집안’ 이야기는 속상하고 끔찍해라. 그분들 개신교 장로와 권사라던가. 대형식당도 아닌 가정집에서 무슨 냉장고를 아홉 대 씩이나 굴리며 살아. 음식이 썩어 버려지는데도 나누지 않았단다. 냉장고도 부끄러워 숨고 싶었을 게야. 하필 그런 집에 팔려 들어가 썩어가는 음식물을 바득바득 쟁이면서 속 고생 맘고생 했을 생각하면 쯧쯧. 냉장고는 잠깐 신선하게 보관할 때 쓰는 물건이지 썩을 때까지 쟁여두라고 있는 물건이 아니렷다. 아래마당 팽나무 그늘에서 동네 동무들과 둘러앉아 먹었던 엄마표 수박화채. 가난한 친구 집에 놀러 가도 군납 건빵, 하다못해 심심한 오이라도 나눠먹으라 내놓는 나눔의 잔치였지. 냉장고에서 노랗고 파란 ‘아이스께끼’를 꺼내 안겨주는 날엔 그 집에 양자로 들어가 살고 싶었을 정도였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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