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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세잔과 미세먼지/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7-05-17 (수) 16:48 조회 : 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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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과 미세먼지 



동네 가로수는 초록 잎의 터널이 되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드리운 푸른 그늘. 맑은 공기에 콧구멍이 먼저 알고 벌룽거리게 된다. 뒷산도 초록이 빽빽하게 들이차서 노루나 고라니 아가들은 어떻게 엄마 뒤를 좇아가며 길을 찾는지 모르겠다. 날마다 초록초로록, 초록빛 세상. 그러다가 가끔 추룩추루룩, 녈비(지나가는 비)가 내리기도 하면 세상이 다 촉촉해져. 그러나 여기도 얼마 전까지 미세먼지와 황사로 끔찍한 날들이었다. 

초록의 화가 폴 세잔의 그림들을 다시 보게 되다니 하늘에 감사. 느림보 초록 빛깔의 귀환이렷다. 느림보 화가 세잔은 한번 붓칠 후 다음 붓칠까지 무려 20분이나 걸릴 때도 있었다지. 사물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세잔의 시선이랄까. 세잔은 남프랑스에 위치한 ‘생 빅투아르’라는 고향 산을 사랑했다. 초록색 범벅으로 무려 40점 넘게 산허리 그림을 남겼는데, 아예 산 근처에다 이층집 아틀리에를 짓기도 했다. “아침마다 초록의 냄새를 맡는다오. 초록 들판과 산의 이끼 낀 바위 냄새를 결합시켜 그려내는 일이 나의 일과라오.” 세잔이 미세먼지와 황사로 고생하는 우리나라에선 그런 명화를 남기지 못했을 거다. 이 나라 화가들을 위해서라도 미세먼지, 황사 폭풍을 어떻게든 막아내야지 않겠는가. 


“인간은 공기가 부족해 숨쉬기가 곤란해져서야 공기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다. 산소의 연소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불을 사용하는 동굴 속의 원시인이라고 할까. 인류는 생각 없이 빛과 열을 소모하고 있다. 풀들을 짓밟고 불도저와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고 질식 시킨다. 폐기물을 처리하면서 폐유라든가 쓰레기 독극물들을 마구 내뱉고 있다. 써도써도 줄지 않는 초록빛깔 대지가 있기라도 한 듯 말이다.” 소련아카데미 회원이었던 작가 블라디미르 솔루힌은 <풀>이라는 책에서, 아주 오래전에 벌써 미세먼지, 더럽혀진 공기, 잿빛 콘크리트 문명을 예견하고 염려하였다. 먼지 뭉치가 굴러다니는 공기 아래서 건강한 아이들, 멋진 자연을 그려내는 세잔 같은 화가를 기대할 수 없지 않겠는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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