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집, 불타는 블루
(글, 그림/ 임의진 시인)
1
산골 작업실 내가 지금 앉아있는 방의 창문은 개한마리 드나들 만큼 비좁고 조그만 ‘빛구멍’이다. 흙을 구워 만든 새를 창문 꼭대기에 걸어 두었는데 문득 쳐다보면 창밖으로 새가 비행하는 거 같다. 허공엔 그래도 새가 날아다녀야 평화롭고 그윽하질 않던가. 저 시퍼렇게 멍든 하늘을 위무하고 치유하는 간호사 새들, 오늘도 부지런히 활공중이다. 여기 흙으로 구운 창문 안쪽 새는 오로지 나를 위한 간호사로 복무하는데 한없이 고맙고 다정하여라.
석고처럼 창백한 내가 이 창문 앞에 서면 비로소 파릇파릇 생기가 솟는 거 같아. 고통, 절망, 외로움, 슬픔 따위들, 호수가 별들을 거울처럼 비춰주듯 창문 밖의 ‘코발트 블루’ 싯푸른 하늘은 언제나 나를 말없이 끌어안고 위로해 주는 내 사랑이다.
‘퍼펙트 블루’ 하늘이 참 푸르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건 파리나 런던, 뉴욕이나 마드리드, 도쿄나 베이징, 서울에서가 아니라 이처럼 시골 구석진 마을에서 올려다 볼 때 드는 마음일 게다. 후텁지근하고 먼지와 매연으로 버무림 된 도시 멕시코시티를 여행하고 돌아와 한동안 각막염과 기관지염을 앓았었다. 오래전엔 그 도시도 자그마한 마을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어디를 거닐거나 짙푸른 하늘과 신선한 공기가 살았을 동네다. 그러나 요새는 그렇지가 않다. 지구상 어디나 올려다보면 푸른 하늘이었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고 해야 맞다. 철강기계와 석유산업으로 빚어진 현대문명은 태곳적부터 푸르던 하늘을 아무런 기억조차 못하게 검은 물감으로 덧칠하고 있는 중이렷다.
화가 프리다 칼로의 집으로 가는 길. 무수한 해골이 뒹구는 공동묘지로 올라가는 길에 꽃대가 나온 선인장은 내 키보다 족히 두 배는 커보였다. 기름기 없는 살림집에 내려앉은 비둘기는 나뭇가지만큼 깡말랐어라. 비둘기의 노래 ‘라 팔로마’를 부르는 집시가 모자를 벗어 동전을 구걸했다. 뒤춤에 권총을 숨긴 불퉁 배가 튀어나온 사내 하나는 골목 끝에서 꿀떡꿀떡 어린 여자의 꽃이파리 같은 입술을 빨아댔다. 풀잎 속에 숨은 도마뱀이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도망치는 그 골목 끝에 프리다의 옛집이 무거운 침묵을 하고 서 있었다.
영화 <프리다>의 주제곡은 ‘Burn it Blue'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브라질 음악을 대표하는 카에타노 벨로조. 그리고 또 한 사람, 중남미 음악풍과 아프리카 토속 사운드, 인디오 전래음악에 영향을 깊이 받은 릴라 다운스가 듀엣으로 부른 노래다. 만약 다시 프리다의 집에 내가 찾아간다면, 그래서 그녀가 디에고 리베라랑 나란히 앉아 조막손을 내밀었을 그 나무의자에 앉게 된다면, 나는 가만히 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분명 이 노래를 듣고 있을 것이리라.
“집을 태워라 . 블루로 태워라. 내 가슴은 모두 소진되어 당신을 잃은 것 같아. 그러나 이 밤하늘은 불꽃을 피우고, 불타는 침대가 높게 떠다니면 그녀는 비로소 날기위해 자유로워 지리라. 기진맥진한 여자여. 오직 하나 망가지지 않은 날개를 펼쳐라. 제비가 노래부를 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라. 그래 불꽃놀이로 돌아오라. 어둡던 여자가 가만히 웃네. 그녀는 불타고 있네. 오늘 밤을 태우리. 까맣고 푸르게."(Burn it Blue)
침대에 누워 지내며 질긴 투병 끝에 죽어간 프리다. 그녀의 집이 불타고, 생애의 빛깔이었던 푸름이 모두 불타고, 비둘기보다 새하얀 해골은 자유를 얻어 비둘기처럼 창공으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꽃비가 내리고 태초부터 갈라졌던 두 개의 영혼은 비로소 하나의 영혼으로 완성되어 영면에 들었을 순간...
2
별떨기 꽃떨기 환히 핀 산골 누옥에서 나도 짬짬이 그림을 그린다. 어쩌다보니 화가라는 표 딱지까지 붙게 되었는데,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면 짤랑거리는 동전보다 물컹대는 그림물감을 만지작거리는 날이 많다. 내 다사다난한 세월을 대변할 법정대리인을 세운다면 프리다 칼로밖에 없는데, 그녀도 벌써 죽고 없고, 내 몸에 새겨진 여자의 지문들을 애써 지우며 나는 전혀 다른 생각, 다른 채색, 다른 그림을 그리면서 호젓이 살고 있다. 어렵사리 잠이 들면 꿈에 별안간 집이 통째 불타고, 멀쩡하게 푸른 하늘이 종말의 장면처럼 불타고, 블루가 불타 레드로 바뀌고, 백주의 유혈은 홍역을 하듯 뜨거워지다가 활화산으로 낭자한다. 풍파가 준 이 깊은 내면의 상처들... 옛일은 생각할수록 쓰라리고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뒤척이다가 깨어보면 하늘도 코발트 블루 물감이 풀어져서 곳곳 피멍이 들어 있곤 하였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가래로 산밭을 갈다가 오후에 다다르면 소월이 노래했던 것처럼 ‘연주홍물 엎지른 하늘 위에 바람의 흰비둘기 나돌으며 나뭇가지는 운다... 해 넘어가기 전 한참은 처량하기도 짝었다’, 오- 딱 그러한 풍경에 맞닥뜨린다. 이승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탈상’처럼 하늘은 아쉬운 블루로 크게 한번 출렁거리며 곡을 한다. 돛이 부풀대로 부푼 하늘에 하얀 구름이 걸릴 때 쯤,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을 한 동네 어르신들이 잠깐 대문 밖에서 담배를 물다가 저녁진지 자시란 할매 호령에 다시 집으로 쏙 들어가신다. 식당에서 순두부백반을 먹고 나온 김씨와 이씨. 멕시코 선인장 가시처럼 생긴 이쑤시개를 들어 이빨을 쑤시다가 감청색으로 바뀐 블루를 한번 바라보고는 “아따메 시간이 요라고 되어부렀당가?” 그리고 동시에 담배를 꺼내 지끈 문다. “라이터, 자네 라이터 있능가?” 라이터를 찾아 친구에게 불을 당겨준다. 순간, 바로 그 순간 하늘도 동시에 발화하여 불타기 시작한다.
보라! 저 붉은, 레드의 노을. 블루가 레드로 바뀌는 순간이다. 툇마루에서 발톱을 깎던 할배가 매일 마지막 같은 노을을 지켜본다. 쓰레기 소각장 옆에서 불우한 신세인 강낭콩 덩굴도 잠깐 붉어진 볼따구를 하고 하늘을 쳐다본다. 부박한 인생들, 버스 창문을 열고 일제히 노을을 바라본다. 블루가 레드가 되는 신비한 변모의 그 순간에 맞추어 먼바다 집어등이 켜지고 산골짝 외등이 일제히 깜박거린다. 레드가 블랙으로 저물기 전에 누구하나 나침반 없이 실족할까봐 “나는 여기에 있어요, 여기!” 하늘이 봉화불을 지피듯 불타오른다. 담뱃불처럼 불을 지르고, 그러다가 집에 불을 지르고, 밤하늘에다가도 달빛 별빛 무구무장한 기름호수 은하수까지 외등을 밝힌다. 하얀 구름을 꽃처럼 매달았던 나무들도 잠시 노을을 매달아 붉은 꽃밭이 된다. 블루는 산그늘에 조금씩 눕더니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디서 들려오는 다비장 구령에 마지막까지 태우며, 물빛 셔츠가 바다에 젖듯이 온전히 레드로 바뀌어버린다. 낮의 심장이요 형형인 블루가 사라지자 동백숲과 솔숲에 살던 블랙이 휘파람새와 함께 휘휘 입술을 오무락거리면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길에선 느닷없는 교통사고로 육신을 잃은 영혼들이 안타까운 이별을 아쉬워하며 현장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나는 재빨리 붓을 꺼내 그들의 귀소를 지정하는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머리칼을 싹둑 잘라버린 프리다의 그림처럼 절망하는 그들 시퍼런 얼굴들에게 붉은 불을 당겨준다. 노을과 함께 부디 마음 편히 먹고 훨훨 타오르라고, 화장장에서는 지피지 못하는 불을 내가 대신 지펴주고는 한다.
3
벨로조가 부른 이런 노래를 또 하나 알고 있어. 'Un vestido y un amor -옷 한벌과 사랑하나' 라는 노래다. "너를 보았지. 사람들 사이로 너는 인사를 하러 나왔네. 태양과 달과 별들이 다시금 웃음 짓고 만다라의 열쇠는 부서져 버렸다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쓸데없는 말들. 빛들은 언제나 영혼 속에서 활활 불타고 있음을. 내가 거리에서 길을 잃고 있을 때 너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지. 이 모든 게 그저 한순간 지나가는 일일 뿐임을... 네가 이 나라에 대해 감사할 것이라곤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아네. 다만 네가 가진 것이라곤 옷 한벌과 사랑 하나. 나는 그러니까 온전히 너만을 보았던 게야."
남미의 정신 피토 피에스의 대표곡인데 벨로조가 공연 때마다 부르는 노래다. 인생은 모두 순례자처럼 떠나갈 존재들. 영원히 푸를 수 없는 유한한 목숨들. 우리는 언젠가 소진되어 노을처럼 불타 사라질 운명.
습기 어린 욕망도 점차 누그러질 것이고, 선연한 보름달 눈망울도 암실 관속에 갇힐 것이며, 딸기며 밀감을 맛보던 혀도 돌처럼 굳어갈 것이다. 엄마에게 자박자박 걸어가던 그 두발은 낡은 휠체어에 올라타야 할런지도 몰라. 청춘의 블루는 잠시 잠깐. 하루 낮 때 생애가 아쉽게도 저물 것이다. 아단성에서 젊은 날 전사한 온달장군처럼 아쉬워 상여가 꼼짝도 않고 멈출 때 "온달이여! 죽고 사는 일은 이미 하늘이 정한 뜻이예요." 평강공주처럼 이렇게 단호히, 그러나 슬프게 말할 수 있는 당신이길. 우리이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