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게시물 434건
   
[임의진의 시골 편지] 태극기/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7-02-08 (수) 16:15 조회 : 869
글주소 :


태극기 
 

극기 훈련하면 역시 태~극기. 어려서 길을 걷다가도 애국가가 울리면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바쳐야 했다. 모른척하고 걷다가는 선생님에게 걸려 귀싸대기를 얻어맞아야 했다. 누구처럼 무릎 꿇린 채 따귀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랬다. 나도 증인이다. 우리 교회 형이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목사님 설교를 곧이곧대로 알아먹고 대들었다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유신에 반대하는 이런 엑스 소리를 들으며 발길질에 날아갔다. 장기파열로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태극기는 그렇게 무서운 대상이었다.  
공기놀이를 하다가도, 줄넘기를 하다가도 일동 일어섯! 국기가 있는 학교 교정을 향해 동작 그만, 얼~음. 뽕이나 어우동을 보러 극장을 찾은 어른들도 일동 차렷! 국기에 대한 경례. 뽀옹 방귀라도 뀌면 사복 비밀경찰이 어느새 나타나 호루라기를 불만큼 엄숙한 장면. 

그 시절 그 풍경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 갑다. 관공서 말고 태극기가 항상 걸려있는 쪽은 무당 점집 같은 곳. 동그라미 태극 문양이나 눈썹처럼 둘러친 괘는 고대 샤먼 세계와 떼어놓을 수 없는 상징들. 나라 무당 만신들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뜀뛰기를 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대표선수 마사이족보다 더 높이 뛸 수가 있다. 
또 우익 집회에서도 항상 태극기는 단골손님. 우리나라 우익들은 신기하게도 미국 성조기까지 양손에 들고 응원이다. 십자군을 자처하면서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했다니 우리가 이렇게 큰 대국인지 미처 몰랐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연방이 부럽지가 않구나. 

지금은 쏙 사라지고 없지만, 한때는 한반도기가 유행이었다. 남북단일팀 탁구도 재밌었고 축구 실력도 엄청났지. 낮은 단계 통일이라도 금방 오는 줄 알았다. 한반도기와 태극기, 인공기가 친근하게 펄럭이고 남북이 얼싸안으면서 같이 울었다. 몇 해가 뭔가, 육이오 때로 후퇴한 지금 분위기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을 그때는 함께 했구나. 
가까운 면사무소에도 태극기와 나란히 새마을기가 걸려있다. 새마을 기는 내려야 할 때가 된듯 싶다. 너무 오래 새마을이었다. 태극기는 통일의 그날까지 펄럭일 것인데, 독재자처럼, 세월호 선장처럼, 동작 그만!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지 않으면 천번 만번 경례해주마. 흔들어주마. 


(경향신문)
 
 
 

   

게시물 434건
번호 이미지 제목 날짜
309 [임의진의 시골 편지] 보온병과 별들/ 경향신문 02-15
308 [임의진의 시골 편지] 태극기/ 경향신문 02-08
307 [임의진의 시골 편지] 염병과 콜라병/ 경향신문 02-01
306 [임의진의 시골 편지] 머시락/ 경향신문 01-25
305 [임의진의 시골 편지] 블랙 리스트/ 경향신문 01-18
304 [임의진의 시골 편지] 구둣발차기/ 경향신문 01-11
303 [임의진의 시골 편지] 우주의 기운/ 경향신문 01-04
302 [임의진의 시골 편지] 육식에서 채식으로/ 경향신문 12-28
301 [임의진의 시골 편지] 여우골 성탄절/ 경향신문 12-21
300 [임의진의 시골 편지] 간장 종지/ 경향신문 12-14
299 [임의진의 시골 편지] 담뱃불과 촛불/ 경향신문 12-07
298 [임의진의 시골 편지] 고산병/ 경향신문 11-29
297 [임의진의 시골 편지] 사상누각/ 경향신문 11-23
296 [임의진의 시골 편지] 망자의 망초꽃/ 경향신문 11-07
295 [임의진의 시골 편지] 바지락 반지락/ 경향신문 11-07
294 [임의진의 시골 편지] 부사령관 아저씨/ 경향신문 11-07
293 [임의진의 시골 편지] 마리아치 악단/ 경향신문 11-07
292 [임의진의 시골 편지] 오르골 소리/ 경향신문 10-19
291 [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 특집] 구르는 돌멩이, 불멸의 음유시인 밥 딜런/ 경향신문 10-14
290 [임의진의 시골 편지] 시골 군인의 노래/ 경향신문 10-12
289 [임의진의 시골 편지] 선한 미소/ 경향신문 10-05
288 [임의진의 시골 편지] 단식 인생/ 경향신문 09-28
287 [임의진의 시골 편지] 머리를 식히는 방법/ 경향신문 09-21
286 [임의진의 시골 편지] 마추픽추/ 경향신문 09-07
285 [임의진의 시골 편지] 야경꾼/ 경향신문 08-31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