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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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단식 인생/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6-09-28 (수) 10:54 조회 :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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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인생




민어에 이어 전어가 제철인대다 서남해안 개펄 낙지는 지독한 유혹이요 미혹이렷다. 날것을 겁 없이 집어먹었더니 탈이 났나봐. 뭘 안 먹어 보려 나도 단식모드에 들어가 있었는데 칭찬해주실 누님도 없고, 에라 모르겠당 밥 생각이 나서 그만 포기할 수밖에. 무엇보다 목소리에 힘이 빠져 모기소리가 났다. 언젠가 전인권 아저씨 밥 드시는 모습. 어찌나 맛나게 잘 드시던지. 밥은 그렇게 황홀한 표정으로 먹어야 힘이 생기지. 그래 노래할 때 힘이 넘치시나봐. 밥을 맛나게 자시는 분들을 보면 굶어 죽는 쪽 보다는 먹고 죽는 쪽으로 싸악 기울게 된다. 탄수화물 밥을 끊고 고단백질 육고기로 배를 채워보자는 분들도 계시던데, 한순간에 그렇게는 못할 거 같아. 예수님도 사막에서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단식을 오래 하셨는데 허깨비 악마가 세 차례나 나타나 맘고생을 하셨다는 성경 얘기. 무려 사십일을 굶으셨다고. 엄마가 얼마나 속이 상했을꼬. 두번다시 그러지 마세요. 억울하게 자식들 잃고 곡기를 끊은 부모님들 앞에서 통닭을 시켜먹으며 조롱하던 젊은이들 사건도 떠오른다. 통닭 값을 대신 내주는가 하면 철딱서니 없는 것들 말리는 건 고사하고 같은 편을 들던 인간들도 똑똑히 기억한다. 인간이 참 별나고 가지가지 하는 종자들이 많은 거 같아. 


신학교 댕길 때 두어주 밥숟가락 놓고 기도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 어지럼증으로 상당기간 고생했다. 단식투쟁을 하는 무리들엔 될 수 있으면 끼지 않으려 했으나 이른바 운동권으로 분류되면서 인생이 원대로 되질 않았지. 요새는 밥을 두 끼 차려 먹고 아침은 간단한 미숫가루. 밖에서 먹으면 탈이 나는 경우가 잦아 번거로워도 집밥을 지어먹는다. 배탈이 나거나 정신없이 바빠 끼니를 놓치면 거창하게 이 나라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단식투쟁이라 생각하고 혀를 살짝 깨물지. 시큼한 위액이 올라오면 ‘하나님 아부지~’ 하고 애교를 부리면서. 나도 은행잔고 걱정이 되어 살짝 비굴한 기도가 나오기도 하는데 하늘은 진짜 싸늘하다 못해 이런 시베리아. 단식으로 뭘 해본다면 스코트 니어링처럼 죽음 앞에서가 좋을 거 같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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