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게시물 434건
   
[임의진의 시골 편지] 머리를 식히는 방법/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6-09-21 (수) 16:54 조회 : 1,406
글주소 :


머리를 식히는 방법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짱이신 로빈슨 크루소. 내 키만큼 생긴 카약이 있는데 이름을 로빈슨이라 지었다. 요트는 돈이 꽤 들지만 카약은 노를 저을 알통 근육만 있으면 된다. 뙤약볕이 물러났으니 다시 이 친구를 꺼내 강물을 저어갔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레드 피트가 형이랑 둘이 나무배를 끌고 폭포수로 뛰어들던 위험천만한 장면. 카약에 확 끌렸다. 태풍이 몰고 온 폭우로 호수마다 물이 찰랑찰랑하고 강 상류는 용맹하게 흐르더라. 


“숫염소처럼 생긴 고독한 카약에 올라타 강물을 저어 흘러가면 한달음 마도로스가 되고는 한다. 물보라빛과 입술을 나누고서 느린 곡조의 이별 노래를 부르기 전에... 북극성 주의를 맴도는 떠돌이별처럼 카약은 멀리 가지 않고 앵두꽃이 지는 저물 무렵 집에 돌아오고는 하였다. 가족사진에 없어도 로빈슨은 내 가족.... 강물의 릭샤꾼인 바람이 건들 불고 주술의 길이 열리자 나는 객사 앞에서 로빈슨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약에 잠시 앉아 머리를 식히고 돌아왔지. 식힌다는 것. 그러려면 찬물이 필요해. 더운물은 어느덧 찬물로 바뀌어 있고, 찬물에 쏙~ 뛰어드니 정신이 번쩍났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 가운데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고 있다. 축구 이야기를 하지 않는 방법, 텔레비전에서 동네의 바보가 누군지 알아보는 방법, 미술 전시회 도록에 서문을 쓰는 방법,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 과부를 경계하는 방법,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까지... 낄낄 웃으며 배울만한 내용이 많다. 머리를 식히는 방법 가운데 진짜 찬물로 뛰어든 인간의 글을 지금 그대는 읽고 계시는 거다. 정답은 어쩌면 쉽고 단순한 것이 아닐까. 가기 싫은 곳엔 안가면 되는 것이고, 꼴 보기 싫으면 안보면 후련해진다. 스님이 절 싫으면 떠나는 것이 장땡이다. 정치권력이 문제일 때 당장 끌어내리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참고 견디고 어쩌고 하다간 울화증만 깊어져. 시원하게 흘러가는 물을 보고 만지고 했더니 속이 뻥 뚫리더라. 


“시골 유모차엔 아기 대신에 무나 배추 몇 포기가 타는 것처럼 내 카약에는 시와 별과 구름과 음표가 탔고 나는 이를 윽물고서 노를 저었다” 


<경향신문>





   

게시물 434건
번호 이미지 제목 날짜
309 [임의진의 시골 편지] 보온병과 별들/ 경향신문 02-15
308 [임의진의 시골 편지] 태극기/ 경향신문 02-08
307 [임의진의 시골 편지] 염병과 콜라병/ 경향신문 02-01
306 [임의진의 시골 편지] 머시락/ 경향신문 01-25
305 [임의진의 시골 편지] 블랙 리스트/ 경향신문 01-18
304 [임의진의 시골 편지] 구둣발차기/ 경향신문 01-11
303 [임의진의 시골 편지] 우주의 기운/ 경향신문 01-04
302 [임의진의 시골 편지] 육식에서 채식으로/ 경향신문 12-28
301 [임의진의 시골 편지] 여우골 성탄절/ 경향신문 12-21
300 [임의진의 시골 편지] 간장 종지/ 경향신문 12-14
299 [임의진의 시골 편지] 담뱃불과 촛불/ 경향신문 12-07
298 [임의진의 시골 편지] 고산병/ 경향신문 11-29
297 [임의진의 시골 편지] 사상누각/ 경향신문 11-23
296 [임의진의 시골 편지] 망자의 망초꽃/ 경향신문 11-07
295 [임의진의 시골 편지] 바지락 반지락/ 경향신문 11-07
294 [임의진의 시골 편지] 부사령관 아저씨/ 경향신문 11-07
293 [임의진의 시골 편지] 마리아치 악단/ 경향신문 11-07
292 [임의진의 시골 편지] 오르골 소리/ 경향신문 10-19
291 [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 특집] 구르는 돌멩이, 불멸의 음유시인 밥 딜런/ 경향신문 10-14
290 [임의진의 시골 편지] 시골 군인의 노래/ 경향신문 10-12
289 [임의진의 시골 편지] 선한 미소/ 경향신문 10-05
288 [임의진의 시골 편지] 단식 인생/ 경향신문 09-28
287 [임의진의 시골 편지] 머리를 식히는 방법/ 경향신문 09-21
286 [임의진의 시골 편지] 마추픽추/ 경향신문 09-07
285 [임의진의 시골 편지] 야경꾼/ 경향신문 08-31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