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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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야경꾼/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6-08-31 (수) 17:14 조회 : 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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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꾼

지난주만 하더라도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면서 '사네 못 사네' 투덜댔었는데 이젠 춥기까지 하다. 털실로 짠 옷을 꺼내 입는가 하면 이불을 안고서도 냉기가 느껴질 지경이다. 길거리엔 갈꽃 코스모스가 우주여행을 떠나자며 무장하게 피어나는 중. 담배건조장은 마른풀들이 몸을 뒤척이는데 그도 언젠가 연기가 되어 밤하늘 높다란 데까지 승천할 것이리라. 
탱자나무 울타리는 푸르스름한 아기별들이 다다귀다다귀 떠있다. 나는 야경꾼이 되어 세상의 여러 어둠속을 헤매고 다녔었는데 한번은 늑대 무리가 달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탱자나 유자, 감귤이 은하수에 동동 떠가는 모습도 구경했었다. 

“사람은 잠들 수 없을 때 비로소 밤이 얼마나 긴지 알게 된다.” 중국 속담은 지독한 밤의 재앙인 불면증에 소름끼쳐하고 있구나. 그렇다고 잠 못 이루는 밤이 누군들 피해갈 소냐. 밤은 잠의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낮을 늘리기 위해 시간을 빌려오기도 해야 한다. “우리가 낮을 늘리는 최고의 방법은 밤에서 몇 시간을 훔쳐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듀드니, <밤으로의 여행>에서)

인공 불빛 속에 어둠을 잃어버린 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시골살이겠다. 나는 방해받지 않으면서 고스란히 어둠을 만끽하고 사는 럭키 보이다. 작은 스탠드로 독서를 하고, 과도를 꺼내 조심조심 복숭아를 깎아 먹기도 한다. 운문사 주지를 살고 계신 친구 스님이 명물 청도 복숭아를 한 짝 보내주시어 잘 먹었는데, 복숭아는 예로부터 밤에 먹어야 그 맛이 일품이렷다. 그러나 무엇보다 술이든 과일이든 친구가 사주는 것이라면 다 맛있는 법이겠다. 

요사이 밤에 약속들이 많았다. 꿀물을 타서 마셨더니 더 속이 데리고 아리는 것 같다. 밤에 밖으로 사람 구경 다니기보다는 식탁보를 내 집안에 펼치자꾸나. 전어회, 전어구이가 아무리 유혹을 해싸도 집에다 거미줄을 치고 매달려서 손님을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 올 가을 첫 번째 손님은 달빛이었다. 창문을 여니 달빛이 무릎께까지 다가와 뭉그작거린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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