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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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선인장과 프리다 칼로/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6-07-20 (수) 14:36 조회 :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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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과 프리다 칼로 


여름엔 선인장이다. 산더미만큼 크다는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을 한번쯤 보고 싶다. 애리조나 광야엔 언제서야 가보나. 선인장 하면 엄지손가락은 단연 멕시코겠다. 한번은 화가 프리다 칼로의 행적을 따라 출생지 코요아칸과 ‘꽃피는 땅’이라는 뜻을 지닌 소치밀코를 순례했다. 도심 외곽은 야생선인장들이 전봇대보다 더 촘촘하고 끝도 없는 숲을 이루었다. 날카로운 가시 끝엔 울긋불긋 꽃들. 배고플 때 새들과 도마뱀이 따먹기도 한다더라. 프리다 칼로는 나 같은 조무래기쯤 만나주지도 않겠지. 내세에 소원이 있다면 선인장 나무아래 설탕차를 마시면서 프리다와 딱 한번이라도 티타임을 나눠봤으면. 그녀의 푸른 집을 다시 방문해 벽에다 등을 기대고 앉아 한참 쉬다오고 싶어라. 

라틴 미술 전시기획자인 안진옥 샘이 옮긴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를 요즘 읽고 있다. 프리다의 마음을 통째 가져간 디에고 아저씨가 너무 부러울 따름. “디에고! 진실은 너무나 거대해서, 나는 말하기도, 잠들기도, 듣기도, 좋아하기도 싫어져요.... 사원이나 마법의 힘없이 나는 당신의 두려움, 커다란 불안, 당신의 심장 소리 안에 갇히고 싶어요... 나는 당신을 그리고 싶어요. 하지만 적합한 색깔이 없네요. 당신은 너무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 당신은 매순간 나의 아이. 날 때부터 내 아이. 매 순간, 매일 나의 것.” 

디에고처럼 키가 크고 뚱뚱한 선인장들. 겨울 추위만 없다면 꽃밭에 그런 커다란 선인장을 몇 그루 심고 싶어라. 외부세력 내부세력 꽃들은 그런 거 모른다. 모두가 조화롭게 연대하고 이슬 한모금이라도 나눠마시며 장엄한 꽃송이들을 피워낸다. 요즘 귀촌하여 집짓는 사람들 보면 꽃밭은 만들지 않고 돼지고기 굽는 불판과 고기 싸먹을 상추 배추밭에만 집착한다. 정성을 들여 정원을 가꿀 생각도 여유도 없으면서 왜들 저렇게 숲을 허물고 집들을 짓는 걸까.

앵무새와 비둘기, 원숭이, 백합꽃과 선인장, 달과 태양과 솜브레로 모자를 눌러쓴 농부들. 이국적인 정원이 기억속에 생생해. 아삭아삭 씹히는 참외와 해바라기 꽃밭을 갈아엎고 그 자리에 전쟁무기를 들여놓자는 사람들을 본다. 무슨 선인장 독가시처럼 생겨먹은 귀신에 홀린 자들일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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