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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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봄날의 코스모스/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6-05-18 (수) 13:36 조회 :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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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코스모스 




코끼리 귀때기가 바람에 펄럭이듯 넓적해진 잎사귀들이 한뼘씩이다. 이른 여름이라 그늘이 좋고 바람도 좋아. 누옥은 햇살이 무서운 남향, 솔그늘에 앉아 지평선 끝 무등산을 구경한다. 볕이 가마니로 부어지다보니 철없는 코스모스가 봄날에 필듯도 해.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이제는 법구를 버리고 몸에 불을 넣은 속명 정세현, 그 사람 범능 스님과는 개인적으로도 오랜 인연이 있다. 고규태 시인의 시에 스님이 곡을 붙인 노래는 전남대생 박승희 열사 추모곡. “어여쁜 가을꽃아 봄날에 피지마라. 스무살 코스모스 너 홀로 피지마라. 철 이른 그대 넋이 불타네 타오르네. 온 몸에 불을 놓아 새날이 밝아오네. 그대의 뜻을 따라 민주의 불꽃이 되어 뜨겁게 타오르리. 내 사랑 아가다여 봄날에 지지마라. 스무살 고운 꽃잎 너 홀로 지지마라. 해맑은 그대 숨결 들리네 살아오네. 순결한 꽃이 되어 어둠을 불사르네. 그대의 뜻을 따라 민주의 불꽃이 되어 뜨겁게 타오르리.” 

남녘의 딸 박승희가 온몸에 불을 놓아 코스모스가 되었던 그해 봄날을 기억한다. 당시 신문은 연일 젊은이들의 분신과 의문사로 도배되었다. 옥시보다 무서운 최루탄을 국민을 향해 부어대던 군부독재는 입에 거짓말을 달고 다니는 용가리. 불통 독재자들과 그 재롱둥이들은 지금까지도 비겁한 거짓말과 가증스러운 거드름을 뿜어댄다. 하지만 우린 더 세고 강하지. 우리는 수천만 여럿이니까. 가끔 조선대, 전남대에 공놀이를 간다. 엊그제는 강연이 있어 호남신학교를 찾았다. 학생들 눈은 꽃보다 별보다 맑고 선량하여라. 과거 데모와 최루탄으로 자욱하던 캠퍼스엔 청춘들이 사슴처럼 거닐고 잔디밭에서 짜장면도 시켜먹는다.

나도 안다. 최악의 취업난과 하루살이 알바인 청년들의 눈물. 하지만 꽃이 죽지 않고 피어있지 아니한가. 죽지 않고 피어있다는 건 얼마나 고맙고 갸륵한 일인가. 세월은 가고 마른 눈물자위에 주름조차 깊어졌다. 저문 강물은 구불구불 돌아 어디로 흐르려나. 강변에 꽃들 피고 나와 우리는 이제 격문이 아닌 수필과 시를 쓰며 산다. 앞서간 열사들과 저 평등의 기도터 무등산 덕분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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