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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버버리 곡꾼/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6-04-20 (수) 10:30 조회 :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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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 곡꾼

곡식 곡자에 봄비 우자 곡우날. 농사철에 맞춰 반가운 비소식. 바지런한 편이라 밤엔 녹초가 되어 눕곤 한다. 간혹 고독감에 지쳐 잠을 설치는데 냅다 막일을 해버리면 꿀잠이 솔솔. 드물게 꿈도 꾸는데 귀한만큼 생생해. 다운증후군 장애인 형을 꿈에서 봤어. 부모님 여읜지 오래되어 꿈에서라도 뵈면 반갑고 깬 뒤엔 한참 울적해. 말을 못해 버버리로 놀림 받던 형은 꿈에 잘 나오질 않는데 무슨 일일까. 나오더라도 하늘에서 말을 배워 유창하던데 어젯밤엔 예전처럼 어버버버버 뿐.
 
언젠가 김해자 시인의 시를 읽고 울었던 기억. “초분 옆에 살던 버버리... 동네 초상이 나면 귀신같이 알고 와서 곡했네. 옷 한 벌 얻어 입고 때 되면 밥 얻어먹고 내내 울었네... 어으으 어으으 노래하는 동안은 떼 지어 뒤쫓아 다니던 아이들 돌팔매도 멈췄네. 짚으로 둘둘만 어린아이 풀무덤이 생기면 관도 없는 주검 곁 아주 살았네. 으어어 버버버 토닥토닥 아기 재우는 듯 무덤가에 핀 고사리 삐비꽃 억새 철 따라 장식했네... 대신 울어주러 왔네.” (버버리 곡꾼) 

장례식에 울어주는 이들을 ‘곡꾼’이라 부르는데, 개처럼 운다하여 이 때 쓰는 곡자는 울다 곡자. 버버리 곡꾼, 맞아 우리 형도 그랬어. 목청 좋은 거위처럼 깍깍 꺽꺽 한도 없이 울었지. 나도 피식하면 울어 의진이 아닌 울보 우진이라 불렸는데 형은 한술 더 떴다. 형은 남이 울면 이유 없이 따라 울었지. 내가 울면 뒤질 새라 개처럼 거위처럼 울었다. 곁에 살포시 앉아 함께 울어주는 일, 버버리 작은형이 내게 내민 유대와 사랑이었다. 

없는 것도 서러운데 멸시천대가 다반사인 구조악. 낙타 바늘귀가 된 취업문턱에서 버려지는 청년들. 야만적인 한편은 노란 리본의 세월호 유족들을 비정하게 외면이다. 반대로 죽은 아이들이 우리를 이 풍랑속에서 구조중이란 생각이다. 자본이 아닌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삶. 곡꾼 되어 연민어린 삶들 사시라고.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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