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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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무와 무관심/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5-11-18 (수) 11:30 조회 :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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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와 무관심


닭들이 홰를 치고 꼬꼬댁 울면 누렁이가 못 이겨 흙을 털고 일어나 동네 순찰을 돈다. 새벽별보고 학교가야 하는 아이들이 있는 집만 어수선하고 바빠라. 간밤에 바싹 마른 칫솔이 찬물벼락을 맞을 시간. 이부자리에서 아직 일어나지 못해 뒹구는 귓속으로다가 레이디스 앤 젠틀맨, 동네 확성기 방송. 시절이 한참 지난 이미자 메들리가 쏟아져 들어온다. 열아홉 순정 흑산도아가씨 동백아가씨, 아가씨 타령이 지겨우면 기러기 아빠, 김장을 앞둔 배추들도 메들리처럼 일렬종대. 에이오에이 천사 아가씨들은 발붙일 데 없는 구식 동네. 

“요로코롬바키 못허겄능가? 조깐 얌전허게 묶어보랑께.” 뽑혀 올라온 무와 무단을 보고 동네 누구씨가 순한 마누라를 족치는 소리. 간밤 달궈진 불기가 남은 아궁이며 굴뚝, 보일러들이 동시에 쿨럭거리고, 식은 자리에 태양과 숲의 온기가 차츰 쌓이기 시작한다.  

김소형 시인의 따끈한 시집 <숲>을 읽었는데 ‘십일월’이란 시가 바로 이때로구나. “나한테 묻지 마. 시간은 결코 좋아지는 법이 없어.” 시간뿐만 아니라 시절도 그러한 모양이 분명해. 누가 물대포에 죽어나가도 누가 실직하고 서러워도 대답은 일월이나 십일월이나 마찬가지. “묻지마 바쁘다니깐, 나는 시계처럼 단호하게 대답했다.” 무관심으로 가득찬 이 우주에 신은 오늘도 아이를 점지하고 아이를 낳으시고. 저 가련한 집닭의 똥 묻은 달걀까지도 쑹쑹 태어나고 있음이렷다.

남정네 허벅지만한 무를 뽑아 수확되는 시기. 이 싸늘한 무관심의 세상에 '있을 무'가 엄연히 존재하누나. 처녀귀신을 위한 총각김치만이 냉혈한 세상을 구할 유일한 명약인가. 하얀 무들이 뽑혀 누워있는 밭들. 이처럼 긴 딜레이의 시간. 기다려도 기다려 봐도 오지 않는 첫눈이여. 물 빠진 검정색인 잿빛의 우울에서 구해낼 무와 폭설을 대망한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달아도 될 것처럼 새빨갛고 맛있는 깍두기도 반가워라. 무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다. 봄날의 노란 단무지. 무를 나눠먹으며 무관심과 싸우다보면 달고 따순 삼사월이 성큼 오려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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