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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나뭇잎 시인/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5-10-21 (수) 10:59 조회 :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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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시인 



산은 잎들을 버리고 텅비어 가네. 우왕 이리 눈부실 수가. 바라보다가는 눈이 시려서라도 눈물이 나지. 은빛 자작나무숲, 건너편은 넓은 잎사귀의 은백양나무숲. 산은 단풍으로 붉고 골짜기는 은빛으로 출렁거리네. 이달 또 다음 달 저 숲의 나뭇잎들은 대부분 사라지겠지. 나는 나뭇잎의 소원을 알고 있다네. 


“아, 나뭇잎이 대지위에 떨어질 때 사람이 될 것을 소원하며 내 배를 부드럽게 스치고 갔네.” 

몽골 다르항이 고향인 유목민의 딸 롭상로르찌 을지터그스의 시. 여자의 배를 스쳐간 나뭇잎들은 사람으로 태어나겠지. 평화롭게 누운 여인의 이마에는 찌푸린 골짜기가 없지. 모든 일을 절망보다는 희망으로 읽어내는 사람에게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가을은 복이 있나니. 아이들이 태어나면 반드시 숲을 찾을 것이네. 아버지인 숲을 찾은 아이들은 생명과 평화의 땅을 약속할 거라네. 나뭇잎인 아이들. 나뭇잎인 시인들.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책 <시를 쓴다는 것>을 아껴 읽었네. “뭔가를 쓰려고 할 때는 가능한 한 제 자신을 텅 비우려고 합니다. 텅 비우면 말이 들어옵니다. 그러지 않고 내 안에 말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판에 박은 표현으로 끌려가 버려요...” 집필을 거부하는 일은 때로 텅 비우는 시기이기도 하겠네. 정의를 위해서, 침묵의 시위로 글쟁이들은 때로 절필을 하기도 해. 예비비 44억을 고스란히 통장에 넣어준대도 학자가 양심을 판 글을 쓸 수는 없는 법이지. 나뭇잎이 지는 거룩한 일에 동참하는 마음들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웠다네. 

나도 신간을 내지 않은지 벌써 십년도 넘었네. 많은 글을 쓰고 또 버렸다네. 글을 버리는 일은 마치 나무가 잎을 버리는 일처럼 장엄한 경험이어서 세월을 그저 가을로 여겼지. 꼭 게을러서만은 아니었어. 봄이 가을로 가듯 문장마다 깊어지고 싶었어. 재기로 넘친 산만하고 난잡한 글. 독자의 환심을 사려는 글. 누군가 비위를 맞추는 글. 거짓으로 꿀을 바른 글. 알량한 고료나 명예를 위한 따위가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날 나뭇잎의 글을 소원했네. 욕망을 비운 진실한 글들은 이 지루한 싸움에서 결국 승리의 월계관을 가져올 것이라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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