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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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부채춤/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5-03-25 (수) 13:38 조회 :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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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춤




가을 운동회가 온 동네 잔치였다면 봄 운동회는 서먹한 새내기들 학교에 정붙이는 효과 정도. 조촐했으나 빠지지 않는 게 부채춤이었다. 누나들이 여럿인 우리 집엔 새털인가 깃털인가 묶어놓은 부채들이 방마다 걸려 있었다. 무슨 부채도사 무당집도 아니고 자기 꼬리를 물고 돈다는 우주뱀 ‘오우로보로스’였던가 그것이. 이 방 저 방 부채도사들이 춤 연습한다며 난리굿이었다. 세탁기에 내 웃옷 빨래가 양팔을 벌려 회오리치듯 누나들의 부채춤은 돌고 돌다가 드넓은 학교운동장까지 늘어졌다. 둥그렇게 펼쳐진 누나들의 부채춤 대형을 향해 축구공을 뻥하니 날리던 드센 형아가 있었다. 이소룡의 절권도에 빠져 살던 그 형아가 참한 얼굴로 바뀌어 교회에 나타날 줄은 정녕 몰랐다. 게다가 부채춤을 훼방 놓은 일을 석고대죄까지. 말쑥한 교회 오빠로 변모하더니 부채를 펼쳐 여학생들 가슴마다 묘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중고등부에서 문학의 밤이라는 걸 했다. 캠퍼스 커플은 싱거운 연인이고 교회에서 만난 짝이야말로 주말을 함께하는 우월한 조건 만남. 교회 오빠 동생 불 댕기는 시작점이 바로 문학의 밤이었다. 시낭송도 오래하면 지루하여 부채춤을 살짝 끼워 넣었지. 엉뚱하게도 국악대신 가스펠 테잎을 틀어놓고 하얀 겨드랑이 살을 살짝 보여주면서. 경건파 목사님은 춤이 못마땅해 시종 헛기침이었다. 화석 직전의 날개를 몸속 깊이 숨겨두고 살던 타조 같은 할머니 교인들이 이때다 싶어 무대 위로 맹 돌진. 막걸리 없이도 어절씨구 궁둥이 춤. 참다못한 목사님은 폐회 기도를 서둘렀다. 문학의 밤은 드디어 연애의 밤으로! 나 같은 동생들은 엄마 찌찌나 만지며 이른 잠을 청해야 했지. 부채를 날개 삼아 도회지로 바삐 떠난 누나들. 더러는 서울로 가서 잘 살기도 했겠지만 누구는 주한미군 상대하는 양공주도 되고. 


내 생전 벼라 별 부채춤을 다 보았으나 미국 대사님 쾌유기원 부채춤은 정말 대략난감. 같이 갑시다마는 교회 누나들 부채춤은 앙~돼요.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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