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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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걱정 하나 없는 밤길/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5-03-18 (수) 12:53 조회 :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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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하나 없는 밤길



햇빛 따뜻한 강변에서 놀다가 매화 생각나 얼른 산골로. 며칠 전부터 밭에도 뜰에도 매화가 피어 가지째 꺾어설랑 매화차도 마시고 꿀벌 날아오는 구경도 하며 늴리리야 니나노. 
감기에 쿨럭이던 아짐이 자리 털고 일어나 쑥 캐러 나온 청답길. 전에 보이지 않던 털복숭이 강아지들이 대문을 넘어설랑 재주를 구르며 노닐었다. 장날 분명히 내다 팔릴 운명들. 어미 개는 짐작도 못하고 본숭만숭 딴청이로고. 아직도 젖을 찾으니 괴롭기도 해서겠지. 인생도 헤어질 줄 모르고 이렇게 소원하게 사는갑다. 꽃피는 봄이니만큼 꽃등심이나 먹자며 출발한 서울 친구놈은 오다가 낮술에 퍼져 소식이 없네. 여자들을 만난다더니 누구 하나 예뻤을까. 

고기 구우려고 숯불도 지폈는데 밍밍한 누룽지밥. 운동겸 밤길이 걷고 싶어 손전등을 꺼냈다. 가을에 폐막한 그림자 영화제가 다시 열릴 듯. 나무들은 새로 돋아난 잎사귀들을 부지런히 연기훈련 중이었다. 가로등이 켜지자 잎사귀 그림자들이 일제히 땅바닥 스크린에다 낮에 본 새를 그리기도 하고 먼 미래의 구름을 보여주기도. 이 야외극장을 독차지하며 한발 두발. 밭에 들러 달밤에 핀 매화도 구경했지. 소복 입고 설치는 귀신 할머니만 안계시면 시골의 밤길은 두려울 게 하나 없어라.

작년 이맘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음악공연을 찾아갔다. 택시 기사가 밤길 무서우니 조심하라더니 잔금을 위조지폐로 주는 것이었다. 공연도 별로였고 호텔로 귀가하려니 야심한 시간. 치안이라곤 가로등이 전부. 그런데 애당초 가진 게 없는 인간이니 두려울 게 또 없어 꽤 먼 길을 걷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호신용으로 맥주병을 하나 사들고서 병나발을 불어댔지. 어떤 부흥사는 찬송가를 부르면 밤길이 염려없다고. 모르는 소리. 주님도 밤에는 영업 접으시고 푹 쉬신다. 가난하면 두렵지가 않아라. 가진 게 없으면 밤길이 걱정 없는 법이다. 내세의 여행까지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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