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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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설국의 터널/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5-02-25 (수) 13:27 조회 :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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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의 터널




차바퀴가 미끄러질 만큼 제대로 눈 폭탄 한번 없이 복수초 피고 봄까치꽃 융융해라. 이맘때 춘설이 장관이곤 하였으며 삼월에도 눈구름으로 거무스름해지곤 그랬는데... 이제 얼마 후면  벚꽃 피고 벚꽃 엔딩. 가수 박지윤은 망사로 된 옷을 입지 않고 댄스곡도 접더니 ‘봄눈’을 어떻게 불렀다지? 그게 이상하게 슬프더라. “자, 내 얘기를 들어보렴... 계절을 견디고 이렇게 마주앉은 그대여. 벚꽃은 봄눈 되어 하얗게 덥힌 거리. 겨우내 움을 틔우듯 돋아난 사랑...” 벚꽃은 말할 것 없고 세상의 눈이라는 눈은 죄다 내리는 고장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을 써서 노벨상을 받았는데, 첫 소절은 위대한 문학적 성취일 것이다. “긴 국경의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밤은 아랫녘까지 새하얗구나. 비로소 신호소에 열차가 멈추었다.” 얼마 전 눈으로 뒤 덮인 니가타 현을 홀로 걸었다. 소설 속 무대 마을. 계속되는 폭설에 모두 길을 잃고 이른 잠을 청해야 했지. 문명의 잃어버린 밤이 그곳에 실재하였다. 길이 끊기는 산간의 폭설이 그런 것처럼 밤의 어둠도 세상을 신비와 무욕의 편으로 이끈다. 


“논리와 설교로는 확신을 얻기 힘들다네. 밤의 습기야말로 나를 영혼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들게 해.” 월트 휘트먼의 시 한 소절. 전도사 시절, 밤이면 일기장 첫머리에 히브리어로 ‘아도나이 오리’라 적고는 했다. “주님은 빛이시라!” 빛을 좇아 살아가는 순례의 생애. 설국의 터널을 지나면 빛의 영지에 다다를거나.


“살아재샜소? 불살개(불쏘시개) 잔(조금) 할라고 나왔는디 금매 더와불겄소. 꽃멍얼도 간간이 뵈이고잉.” 코빼기도 뵈지 않던 할매들이 쏟아져 나온 경칩 목전. “저녁답엔(무렵엔) 춥습디다. 뒤바람(북풍)이 아직은 거세라. 새해복 합북(듬뿍) 받으십시요.” 목례를 드렸다.  

날씨와 다르게 세계는 차가운 설국이구나.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나라가 정신세계를 잃고 우경화 되어 한심스럽기 짝이 없어라. 과거 침략전쟁에 진심어린 사죄도 없고. 또 이 땅의 비뚤어진 몽니들은 일가친척을 홍어라 낄낄대며 고인들을 어묵에 빗댄다. 우리가 인간이지 짐승인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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