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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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강철 새잎/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5-01-14 (수) 02:45 조회 :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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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새잎
 
 
 
기상캐스터만 짧은 미니 차림일 뿐 아직 세한도 그림 속 까마득한 절벽인데, 연초 날씨가 풀려 양지쪽 나무들은 새순이 날름 보인다. 이런 풀린 날이 며칠 더 가면 철 잊고 핀 꽃대궁도 더러 보게 되리라. 기미라고 해야하나? 봄이 올 것 같은 기미. 정치권에선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기미... 
 
박노해 시인을 가끔 길에서 뵙고 반갑게 약주한잔 나눈 지도 꽤 되었다. 옛날 목사관에 하룻밤 주무시고 가신 일이 있었는데 그날 청했던 시가 바로 강철 새잎이었다.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손 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하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대충 첫술이라도 외우는 몇 안 되는 시다. 이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뭔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져. 손끝에서 귓불에서 발가락에서 팔꿈치에서도 새순이 돋아 날 거 같아. 온갖 패배주의와 기회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한 사람’, 그런 새순 같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 
 
시란 사람을 힘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언젠가 손택수 시인의 글을 읽었는데, 아버지가 시란 쓸모없는 짓이니 그만 두라셨단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기왕 시작한 일이니 최선을 다해보라셨단다. 시인의 슬픔이고 시인을 버티게 하는 힘은 바로 쓸모없는 짓에 최선을 다하라는 아버지 말씀이라니 코끝이 찡해질 밖에. 시란 아주 작은 목소리이지만 강철 새잎이나 진배없다. 작년이나 올해나 똑같은 누구의 기자회견보다 시인들의 시낭송은 그래서 무시무시한 일갈이요 일성인 게다. 
 
나는 강철 새잎을 수없이 만나고 산다. 말뿐인 어설픈 친척들 보다 피붙이 같은 분들. 겨울에 구워먹는 은행 알처럼 구수한 지혜를 가득가득 알고 계시는... 재산이 29만 1천원인 전직 대통령보다는 더 부자여서 행복했는데, 그 군인 출신 대통령은 생떼같은 가족들을 죽였지. 남녘에는 새순이 더러 보인다. 죽은 청춘들의 부활이겠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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