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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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땅콩만한 별들/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4-12-10 (수) 13:47 조회 :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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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만한 별들
 
 
 
누구 땜에 땅콩이 급 땡겨서리 마트에서 찾아봤는데 죄다 중국산. 건너편 호두는 미국산. 그냥 땅콩이 든 과자 한 봉지 골라 운전하면서 먹었지. 아버지는 목사관 딸린 텃밭에다 땅콩 농사도 지으셨다. 배고픈 들쥐는 목사님에게 감사인사를 넙죽. 우리는 쥐가 큰 맘 쓰고 남겨준 땅콩을 몇 알 주워 먹은 게 고작이었어. 그 때가 문득 아슴해졌다.
 
 
어디 식당들에선 땅콩을 간장에 졸여 주전부리로 내놓기도 하더라. 또는 번데기를 주기도 하는데 난 번데기 알레르기가 있어. 번데기를 먹으면 목이 퉁퉁 붓고 응급실로 직행. 나로선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게 번데기다. 날 미워하는 여자가 번데기를 갈아서 몰래 줄까봐 여자랑은 같이 못살지. 내 친구 녀석 한 놈은 땅콩을 먹으면 온 몸이 근질간질. 겨드랑이에  오돌토돌 뭐가 나기도 한대. 세탁소 주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구기자차’를 먹어도 두드러기가 난다던가. 저마다 그런 게 하나씩 있나보더라. 다행히 나는 땅콩은 괜찮다. 땅콩 껍질을 부술 때 묘한 쾌감을 느낀다. 내 힘으로 부술 수 있는 게 단지 이 것 뿐이라는 생각에 잠시 슬퍼지기도 해.
 
 
순록의 뿔을 나뭇가지인 줄 알고 새들이 잘못 앉고, 아가가 자는 토끼굴인 줄 모르고 불콰한 사냥꾼은 구덩이에 오줌을 누고 간다. 변변한 사람대접 한번 못 받고 혀짜래기 말이나 하다가 진탕 술로 쓰러져가는 이웃들. 사지가 잘려나가 바닥을 기는 뱀처럼 서글픈 서민들. 경기는 바닥을 헤매고 민주주의는 곤두박질. 여행자의 비행기도 어이없는 후진. 먼지 맞으며 갓길에 피었던 사루비야를 본 게 꿈만 같은 시절이어라.

 
 
신학교 다닐 때 땅콩만큼 작지만 야무진 여자 전도사를 알았다. 달동네 공부방 책임자였던 그 여자의 처소에서 몇이 맥주를 마셨는데, 맥주병이 찰만큼 하도 눈물을 쏟는 통에 안주로 내온 땅콩을 씹어 먹기도 뭐하여 혼자 밖으로 나왔지. 마침 하늘에 땅콩만한 별들이 가득 보였어. 서울에도 별은 뜨는가? 달동네엔 그래도 성탄을 대망하는 별들이 수수수 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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