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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튀밥이 내리는 날/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4-11-26 (수) 14:38 조회 :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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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밥이 내리는 날
 
 
 
자전거를 갖고 싶은 아이가 있었어. 침상에 눕기 전 큰 소리로 기도했대. “하느님이 귀가 멀었겠니. 왜 큰 소리로 기도하는거야?” “하느님은 들으시겠지만 아빠가 못 들으실까봐서요.” 흐흐, 맹랑한 녀석. 나도 오늘은 큰소리로 기도하고 잠들어야지. 내일은 제발 함박눈이 내리게 해달라고. 하늘나라 선녀님들은 단체로 클럽에 놀러 가셨나들. 송이송이 눈꽃송이 자꾸자꾸 뿌려줘야지 뭐하신대들.
 
 
빌리 조엘의 신나는 방랑 주제곡 ‘the stranger’를 귀에 꽂고 남미 페루를 여행하고 다닐 때였어. “모두들 남쪽으로 길을 떠나지. 낯선 여행자는 비밀을 안고 있다네. 네 속에도 은밀한 이방인이 숨어 있지. 낯선 이방인과 마주치면 너는 대번 흔들리고 말지.”
 
 
쿠스코에서 파는 옥수수는 그야말로 떡니, 산토끼 앞니만큼이나 굵었어. 그 옥수수로 뻥튀기를 하는데, 우리나라 뻥튀기 장수랑 똑같은 행색을 한 아저씨가 뻥튀기 기계를 돌리고 있었지. 크나
큰 옥수수가 펑펑, 폭죽을 쏘아 올리면 아이들이 몰려왔어. 가끔 쌀을 한바가지, 튀밥도 펑펑. 고소한 냄새와 함께 튀밥처럼 생긴 눈이 사방으로 흩날렸지.
 
서로에게 흔들린 여행자들은 튀밥을 나눠먹더군. 그들 머리 위로 모자를 흔드는 바람, 높은 구릉을 넘어온 눈발이 수수 날리고. 점점이 굵직한 튀밥눈이 내려오면 목마른 아이들은 다투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렸어. 혀가 젖을 때 쯤 하늘은 맑게 갰고 개들은 광장에다 묽은 똥을 누더니 산동네로 사라져갔다. 
 
 
아픈 무르팍을 끌고 그 길들을 오가면서 먹었던 튀밥을 잊지 못해. 과자가 흔해진 세상. 비싼 초콜릿과 케이크. 느닷없는 빼빼로 데이. 이런 세상에 곶감과 튀밥이라니. 물고구마와 희고 긴 가래떡을 화덕에 구워먹길 좋아하는 이방인. 그래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방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네. 튀밥을 먹고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 길거리에 흔해. 샌드위치를 든 아이들이 누룽지를 찾는 아저씨를 흘겨봐. 검은 하늘에선 튀밥 대신 방사능 묻은 창조경제 범벅눈이 만들어지고 있다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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