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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국화꽃 향기/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4-11-12 (수) 12:54 조회 :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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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
 

국화향이 가장 진할 시기다. 마실 길에 맨손으로 뜯어온 국화 몇 단. 큼지막한 머그잔에 담아놓고 지켜보는데 온 집안이 국화향이다. 내 손바닥에서도 국화꽃 향기가 맵게 배었다. 이럴 때 얼른 당신이랑 손잡아야 하는데... 바깥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졌어. 맹물을 팔팔 끓여 홀짝이며 마셨지. 향기 때문인가 꽃차를 마시는 기분이 들더군.

 
가을비로 말갛게 씻고 향수를 바른 몸, 국화는 깨끗하고 요염하여라. 중세 유럽에선 씻지 않고 악취를 풍기는 것이야말로 수도자의 도력이 높다는 증거로 삼았단다. 성 아몬은 출가 서원한 뒤 한 번도 자기 알몸을 본 일이 없었다지. 성 에우프락시아는 130명의 수녀들과 같이 지냈는데 그곳 수녀님들은 평생 발을 씻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목욕이라는 말만 들어도 까무러칠 정도였단다. 그밖에도 많은 수도원들이 일 년에 딱 두 번 목욕을 허용했다. 악취를 풍겨야 수도생활에 정진했다는 증표라니 차라리 악취 향수가 필요했겠어. 
 
세탁기도 자주 돌리고 담배를 태우지도 않는데 친구들이 가끔 향수 선물을 준다. 나이가 들었으니 몸단장 옷단장 하고 다니란 소리겠다. 가끔 국제공항 면세점에서 향수병 샘플을 맡아보기도 해. 꽃향기만은 못해도 왠지 끌리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옷깃에 가볍게 묻혀온 사람을 만나면 배나 친근하고 근사하게 느껴진다. 
 
촌에서 풍겨나는 향기는 주로 흙냄새 불냄새 똥냄새. 소를 키우는 집에선 송아지 냄새가 나고 꽃을 가꾸는 집에선 꽃내가 나겠지. 마음에서 풍기는 향기는 유리병에 담은 향수와 비교할 수 없음이렷다. 어떤 게 소중한 향기인지 모르고 값비싼 향수를 몸에 들이부은들 무엇 하리요.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 냄새가 난다.” 월북시인 오장환의 ‘북방의 길’ 첫 소절이다. 증기열차 석탄 냄새와 송아지 냄새, 백두산 호랑이 오줌 냄새도 난다. 보라 이 사람, 보라 이 꽃! 킁킁거리다가 사람과 꽃에 덩달아 취하고 마는, 어느 꽃핀 날.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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