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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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하루만 햇새/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4-11-05 (수) 13:09 조회 :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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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햇새
 
 

바스락거리는 수풀사이로 새들이 모여 산다. 뒷산은 매 일가족이 살아 매봉이라고 부른다. 한 번씩 공중에 붕- 뜨면 온 동네 들쥐들은 쥐구멍을 찾아 비상대피. 그동안 내린 비 족족 마르고 따사한 햇살을 쬐며 매가 날았다. 어린 매가 자랐었나봐 처녀비행도 펼쳐졌다. 엄마를 따라 후계자가 처음 보이자 숲은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헤르만 헤세 말고 하루만 햇새. 내일부터는 햇새가 아니라 이 동네를 지키는 늠름한 텃새가 되겠지. 무사한 비행을 마치고 쏜살같이 숲으로 사라진 매들. 하늘이 이토록 높고 푸를 수 있는 걸까. 정수리를 지나 목덜미까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깊은 하늘이었다. 그 하늘로부터 빳빳한 빛줄기가 내리꽂히고, 덤불속에서 굵은 새알은 눈을 뜨며 깨어났을테지. 어떻게 이 많은 새들 가운데 매가 존재하고, 매는 매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꼭 닮은 아기 매를 낳을 수 있었을까.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어라.
 
 
가까스로 목선을 몰고 피항 하듯 당신은 집을 향해 바쁜 걸음이었다. 햄 소시지와 라면 두어 개, 달걀 한판. 저녁나절 금성마트 앞길에서 만난 당신은 저 멀리 아시아 남쪽에서 날아온 새. 새를 닮은 사람. 어쩌다가 이 동네까지 흘러들어 온 걸까. 외국에서 시집온 여성들도 꽤 살고 있고, 공장에 취업중인 팔목이 굵은 아시안 친구들도 더러 보인다.
 
 
작년부터 다문화가족을 위한 송년축제 단장이란 감투를 썼다. 그냥 친구들이 알아서 갖다 붙인 일벼슬. 연말이면 반쪽 고향이 더욱 그리울 다문화가족.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밥도 먹자며 그렇게 시작한 일이다. 올핸 어떤 인연들로 하루를 즐길까. 자기를 닮은 아이들, 햇새들도 즐겁게 해줘야 할 텐데. 외국인 노동자는 겹겹이 바람이 쟁여진 면사거리에서 집으로 향했다. 쓸쓸히 둥지를 찾아가는 한 마리 매. 고향나라에 두고 온 아기 매는 잘 자라고 있을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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