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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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평창동계올림픽유감- 나무를 기억하는 일/ 전국녹색연합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4-11-03 (월) 16:39 조회 : 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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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기억하는 일
 
 
임의진


마음이 어지럽고 아플 때 나무에게 찾아갔다
신발을 사러 나온 사람처럼 서성이기도 하고
유배지에서 늙어버린 사내가 산진달래 사랑하듯
나무에게 다가가면 기우뚱한 어깨위 잎사귀 져도
발은 푸르게 푸르게 젖어가고만 그랬다
옆구리가 시리고 외로울 때 나무에게로 갔다
팔짱을 끼고 곁에 섰으면 붉고 처연한 저녁에도 
하나 두려웁지 않았다, 든든한 사랑이었다 
갸웃갸웃 나를 훔쳐보던 새가 사는 둥지에는
가지런히 서너 개의 알들이 잠을 자고 있었고 
한동안 별이 뜨지 않던 하늘도 별들이 보였다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사랑이었다 
 
 

소치 동계올림픽에 대한 유일한 기억은 소프라노 히블라 게르즈마바(Hibla Gerzmaba)가 등장한 폐막식 소식이었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소프라노 게르즈마바가 범러시아 방송 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미모사 꽃을 한 아름 들고서 ‘굿바이 소치’를 노래했다. 반짝 흘러가는 단신의 뉴스에도 게르즈마바를 기억하는 것은 그녀가 베르디의 오페라 <오델로> 중에 오델로의 부인 데스데모나 역을 맡아 3막 아리아를 부르면서 펑펑 흐느끼는 명장면 때문이다. 그녀처럼 서럽고 갸륵하게 울며 노래하는 가수를 나는 일찍이 본적이 없었다. 곡목은 ‘버드나무 그늘아래 앉아서’... Willow song...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는 이 소프라노가 소치에서 폐막 주제가를 불렀다고 하니 잘려나간 나무들에 바치는 진혼곡 가수로는 적격이었겠구나 싶었다.
 

 
제주도 서귀포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울창한 먼나무가 있다. 진짜 먼나무라는 이름의 나무가 있는데, 그대 아실랑가 몰라라. 나에게 서귀포는 먼나무를 사랑하게 하는 곳이렷다. 서귀포의 유명한 관광지들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곳에 살고 있는 먼나무를 기억하는 일, 이것이 나의 여행이며 나의 사랑이다. 앞서 올림픽보다 소프라노를 기억하고, 그녀가 부른 슬픈 아리아를 기억하는 일과 마찬가지 일. 스포츠 마피아의 대제전은 내 관심사 바깥이고 뒷걸음질을 잘해야 이기는 경기 줄다리기라면 모를까...
 
 
나무아래 서 있던 것들을 잔뜩 기억해본다. 키 큰 나무는 대개 할머니이거나 할아버지다. 장수마을에 105살 할아버지가 계셨다. 사람들이 할아버지에게 항상 묻는 건 나이였다. “어르신은 몇 살이세요?” “다섯살이라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랍니까?” “응. 백살은 너무 무거워서 집에다 두고 다니거든.” 항상 다섯 살처럼 웃고 사시는 할아버지는 오래된 나무를 닮아 주름이 가득하시지만 마음은 푸르러 잎사귀마다 살부작 거린다. 

바람이 차가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강원도에는 벌써 첫눈 소식이 들린다. 은빛으로 출렁이는 작약나무, 다시 눈망울을 마주하지 못할 나무들의 주검으로 널브러진 가리왕산의 벌목 소식은 스키장 슬로프를 내는 굵은 지주들과 곤돌라에 올라타 탄성을 올릴 이들의 웃음소리로 벌써 채워지고 있는 것 같다. 인공눈이 이곳에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물길을 이어야 하고 물에다가 화학물질을 첨가해야만 되는데 이 땅이 ‘자연 그대로’ 회복되는 일은 전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스키장 하나 만드는데 1천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는 이 대공사는 물론 동계올림픽을 위한 것인데, 구경 좋아하는 이 말고는 올림픽과 무관한 사람들이나 동식물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는 현실이다. 나는 올림픽을 연 국가와 도시만을 존중하고 찾아가는 여행을 해본 일이 없고, 자본가들의 신종 주사위판인 국가대항전 스포츠게임의 폐해와 거짓된 애국심을 경고하는 무정부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며칠간의 축제를 위한 이러한 학살을 지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분개해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겠지만, 아마 대부분 내 생각과 다르겠지만.
 
만들기는 어려워도 부수기는 얼마나 쉬운가.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점차 허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건강을 얻으려고 사이보그 인조인간이 되어가고, 육체의 기능 향상을 위해 허구와 환영, 유령 허깨비들을 불러온다. 결국에 가서는 인간성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겠다.
입술 오므린 새들이 가지 끝에서 낮게 흐느낀다. 언젠가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암울한 묵시록의 전주곡 같다. 납작하게 뭉개져 보이지 않던 토끼풀 같은 존재들이 나무들 속에서 무어라 무엇이라고 옹알이가 들려온다. 벙어리 절름발이 귀머거리 나무들이 일제히 바람에 따라 춤을 추며 웅성거리는 가을밤. 
 
“가난하나 다정하고 외로우나 자랑에 찬 시인들이 모인 나라는 시의 공화국. 아! 달처럼 동그란 공화국의 시인들은 녹색 모자를 쓰자...시인이자 농부가 농사를 한다. 시인이자 건축가가 건축을 한다. 시인이자 직조공이 직조를 한다. 시인이자 공업가가 공업을 맡고 시인이자 원정(*정원의 화단이나 수목을 가꾸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 시인이자 목축가, 시인이자 어부들이 고기 잡고, 마소 치고, 꽃도 심고, 길도 닦고 시인이자 음악가, 시인이자 화가들이, 조각가들이, 시인들이 모여 사는 시의 나라 살림을 무엇이고 서로 맡고 서로 도와 한다.”(박두진, 시인공화국) 아, 멸망할 수 없는 시인들의 공화국에 산다면 저 나무들 한그루 한그루 이유도 모르고 목숨 잃지는 않을 텐데...
 
비장한 순례길, 나무들의 그늘이 없다면 시인은 얼마나 가여운 뙤약볕이런가. 빗금으로 반짝이던 빗방울조차 나무에게 깃들어 한세상이었고 들길은 숲에 이르러 비로소 소박한 오솔길의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열이 펄펄 끓어 곧 죽어가는 이들을 식힌 저 나무에게 도끼질이라니. 거리를 헤매는 무적자들을 거두어주었던 나무에 대한 이 무식한 시대의 학살극. 
 
다윈의 논문 “식물에 있어서의 운동성”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식물의 뿌리 끝이 하등 동물에 있어서의 두뇌의 역할, 다시 말해서 몸의 맨 앞부분에 위치하여 감각 기관으로부터 인상을 받아들여 몇 가지 운동을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더라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종알종알 말을 하는 나무, 진실하게 사랑하는 나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나무, 기다리며 애타하는 나무, 죽음 앞에 무서워 떠는 나무, 오페라 속의 소프라노보다 서럽게 우는 나무에 대하여 나는 알고 있다. 나무는 살아있고, 의식이 분명한 존재이다. 나무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말하면 당신은 나를 미친 녀석이라고 그러겠지? 
 
반송 백송 구상나무 삼나무 가래나무 굴피나무 박태기나무 보리수나무 마가목 조팝나무 화살나무 단풍나무 소밥나무 황칠나무 층층나무 버즘나무 탱자나무 노각나무 말채나무 가죽나무 쉬나무 풍게나무 느릅나무 느티나무 졸참 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밤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구골나무 물푸레나무 들메나무 이팝나무 미선나무 버드나무 목서나무 쥐똥나무 가막살나무 때죽나무 자작나무 사스래나무 개암나무 오리나무 박달나무 아왜나무 이나무 오미자나무 녹나무 후박나무 비목나무 갈매나무 헛개나무...  나무들이 쓰러져 누운 그 무덤, 가리왕산에서 정녕 시인들은 활강코스에 오를 수 없으리라. 시인이자 사람인 그들은 시인공화국의 절실함을 또 한 번 다짐하는 것 말고는 어떤 대책도 마련할  수 없는 이 현실앞에 안타까울 뿐. 무릎이 꺾인 낙타의 눈물처럼 이 어두운 사막에서 별빛조차 까마득하고 차가워라. 
 

 
미개한 난개발의 연속선상, 종의 먹이사슬 최상위 인간들에 의해 저질러진 파국은 숨이 막힐 정도 빠른 속도의 급행열차로 전지구적인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 파국 앞에서 무엇을 시방 해야 하는가. 입은 살아 있어 말이라도 한마디 꺼내보는 것인데... ‘버드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슬픈 아리아를 듣는 것으로 오후는 끝이 났고, 추워진 날씨에 장작을 패기 전 죽은 나무에게 합장하는 것으로 마음을, 나무에 대한 기억을 모을 따름이렷다. 나무에 엉겨 붙은 불은 타오르지만 마음이 춥고 슬프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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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목사. 경향신문에 8년간 시골편지 칼럼을 쓰고 있으며, 담양 숲속에 거주하며 두해 전부터 광주정신으로 빚은 최초 시민자생 예술공간 <메이홀>의 관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자연과 유랑을 노래하는 월드뮤직 <여행자의 노래 7 다른 공기>를 최근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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