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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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오브리가도/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4-09-17 (수) 12:04 조회 :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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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리가도
 
 
 
 
초의 선사는 동백꽃을 가리켜 산다화라 불렀다지. 엄동 추위에 매화가 필 때, 매화 옆에서 빨간 동백꽃도 곁들어 피느니... 산에 피는 차꽃. 매화 편에서 산다화는 얼마나 고마운 존재이겠나. 힘들고 어려울 때, 아프고 쓰라릴 때 팔짱을 끼고 같이 가주고, 배려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며 속엣말을 나누는 사람. 그래서 매화는 친구 덕분에 마침내 겨울을 뚫어내고 산천을 매화향으로 뒤덮을 수 있음이겠다.
 
 
고마운 사람아. 변심과 배신이 만연하여 정 붙일 곳 하나 없는 이 쓸쓸한 별에서 당신은 홀로 깊고 뜨거우며 진실하여라. 도시의 바깥을 지키는 외딴 집들, 외딴 불빛들 속에 당신이 머물고 있음은 내겐 그 무엇보다 큰 위로이며 안심이어라. 물에 잘 풀리는 창호지처럼 당신앞에선 자존심 따위 세워봐야 민망해. 존재 자체로 선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귀한 사람. 당신과 함께 있으면 세상의 모든 근심도 역경도 고맙고 감사해라. 기진맥진 쓰러진 나에게 슬픔 두려움 낙심, 이런 인생의 난제들을 헤쳐 나가도록 용기를 부어주고 기도해준 사람.
 
 
여기는 멀리 남태평양 동티모르. 내 입에서 “오브리가도(고맙습니다)”가 거의 남발 수준으로 튀어나온다.
산자락을 타고 어스름이 내려오는 시간. 소박한 저녁밥상 앞에서 오브리가도를 크게 외친다. 보고 싶은 친구들을 다시 보게 되고, 한 밥상에 둘러앉아 있음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산스크리트어로 ‘보디사트바’를 우리는 보살이라 부른다.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마음 ‘보디치타’에서 나온 말이란다. 내 마음속 은인을 알고 모시는 마음. 고마운 존재.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이들. 나는 당신의 보살이고 당신은 나의 보살이 될 수 있기를. 오브리가도, 새끼손가락 하날 붙잡고서 수줍은 목소리로 뇌어보는 말. 잦은 서운함 때문에 미처 몰랐던 그 고마움이 왈칵 눈물로 쏟아지는 날.
 
 
 
<경향신문>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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