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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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책상 위의 램프등/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4-09-03 (수) 11:52 조회 :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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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램프등
 
 

“섬에는 정전이 잦다. 태풍이 불거나 폭풍이 근처를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 때고 전기가 끊어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시장에서 사온 램프등을 켜놓고 답장을 썼다.” (류시화, 딱정벌레) 여기 내가 혼자서 막 지은 황토집도 번개만 쳤다하면 차단기가 내려가곤 한다. 집에 있으면 두꺼비집을 올리지만 집을 비운 날은 냉장고의 반찬들을 죄 버리고 만다. 냉동실엔 고등어 한 토막, 잠 안 올 때 마시는 보드카 한 병이 달랑달랑, 장아찌 정도로 간단하게 구비하면서 먹고 살아야 안심이 된다.
 
 
정전에 대비한 조그만 램프 등이 몇 개 있다. 하나는 나에게 처음 책을 내도록 용기를 준 류시화 시인에게서 선물 받은 등이고, 다른 몇 개는 여행하면서 사가지고 온 예쁜 등잔과 미니 등. 네팔에서 고근호 조각가가 사온 푸른 램프등. 너무 소중한 내 분신들.
 
 
내 작업실을 찾은 친구들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어둡지 않느냐, 조도가 낮다고 한소리씩 꼭 궁시렁. 국정원 직원도 아닌데 음지, 어두운 곳에서 일하기를 좋아해. 멀리 무등산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곳인데도 항상 창문을 커튼으로 가린 체 생활한다. 창문도 환기할 때나 가끔 열어야 귀하고 사랑스럽지. 드라큘라 백작이랑 사는 스타일이 뭐 비등비등하겠다. 어둡고 침울한 독거자의 집, 빨간 색 선지국을 끓여 먹으면 딱 흡혈귀 포스가 난다.
 
 
요즘 난 집을 수리하고 있다. 책이 너무 늘어나 목수를 모셔와 또닥또닥 책방을 하나 짓고 있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 나간 길에 책상에 놓을 등을 한 개 구했다. 전기를 먹는 갓등인데 책을 볼 때 가까이 두려고 빈티지 골목에서 산 낡은 등... 버지니아 울프의 방에 놓인 연갈색 책상처럼 손때 묻은 책상, 그 위에 이 전등을 올려놓고 김수영이나 네루다, 타고르의 시를 읽어야지. 가을은 책읽기 좋은 계절. 영화 <만추>의 사운드트랙을 올려놓으니 책이 되지 못한 운명의 나무들이 찬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책의 이야기들을 궁금해 한다. 이 가을 당신에게 부탁하나. 올 가을엔 술집보다 서점에 자주가시길.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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