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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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벌초/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4-08-20 (수) 16:33 조회 :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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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밤새 이놈으 저년으 하고 쌈박질 하다가 살을 섞는다. 깨진 살림살이 곁 지친 잠에 떨어진 딸년도 밀어놓고 단칸 셋방에 눈물로 눈물로만 누워 전설같이 살을 섞는다.” (오봉옥 ‘살다가’) 단칸, 아니면 두어 칸 아주 가난한 살림집에 인기척이 들려. 젊어서처럼 대책 없는 무대뽀 사랑은 아닐지라도 주책인 포옹으로 능소화의 볼을 부끄럽게 물들이는 나날들. 골목은 그렇게들 이어져 둔덕의 개울을 휘돌다가 불끈 솟은 정자나무를 만나고 젖가슴 같이 봉긋한 뒷산에 이른다. 사람의 형상을 꼭 빼닮은 게 마을 지도다. 

“치열하게 싸운 자는 적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긋지긋한 집구석.” (황지우) 정말 지긋지긋했을 온갖 사연들. 땟국물 낀 집구석들의 연결망인 골목과 계단. 그 끝인 뒷산의 무덤. 인생의 끝도 종국엔 죽음 아니런가. 지긋지긋했던 일들 모두 잊고 조르라니 누운 무덤은 달고 벅찬 영생의 안식 중이렷다. 어려운 고난을 같이해야 진짜 동무지. 좋을 때만, 잔치 때만이 아니라 궂긴 일과 슬피 우는 날 함께했던 이들이 맞이하는 장엄한 위로. 서로에게 내어준 곁마다 화안한 환생의 무덤이여. 

추석이 다가오니 벌초를 하는 소리로 산마다 우우웅 예초기 엔진소리. 효성스런 후손들이 있어 그나마 벌초라도 대접받는 무덤이 있는가 하면 잊히고 버려진 무덤들도 허다하다. 인부를 사서 벌초를 하는 묘지가 점차 늘고 있는데, 정성이 부족하면 안되겠다 싶어 일부러 선영을 찾은 자녀들. 이슬람 신자들보다 더 갸륵하게 넙죽 절하고. 
이맘때쯤엔 죽은 사람 말고 산 사람 벌초도 해야 한다. 어르신들은 이발을 단정하게 하고 자랑삼아 밖을 나다니신다. 친척들을 보려고 처음 먼저 하는 일이 이발. 거름 한 바작 이고 비투름 바투름 걸어가는 영감님, 각진 스포츠머리가 이른 명절 분위기다. 부모님 머리 단장하러 읍내 모시고 가던 일이 마치 엊그제만 같아. 언젠가 당신도 무덤의 풀을 뽑는, 이발이 아닌 벌초하는 처지가 될 것이리. 이번 주엔 내 머리도 벌초를 해야겠다. 아니 이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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