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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옥수수 사람/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4-07-02 (수) 16:22 조회 :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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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사람
 
 
 
할매가 씨이익, 영감은 싸아악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면 금니 틀니도 덩달아 더글더글. 금테를 두른 틀니를 꺼내어 물에 씻고 난 다음 다시 장착. 오만가지 수다를 와르르 쿵쿵 쏟아낼 때쯤 하늘도 입을 벌려 후두둑 장맛비를 쏟아낸다. 이빨이 빠지면 옥수수가 털렸다고 우스갯소리로 그러는데 옥수수가 다 털린 할매와 영감. 잇몸과 틀니를 동원하여 가까스로 호물짝 거리면서 옥수수를 드시는 모습은 애처롭고도 숭고하여라.

시방 밭에는 옥수수가 실하게 여무는 중이렷다. 그것도 물컹물컹 어르신들이 드시기 편한 찰옥수수가. 잉카 마야 전설에 의하면 신이 처음 인간을 창조할 때 흙이 아니라 옥수수를 찧어 이겨 그 반죽으로 우릴 만들었다지. 그러니 옥수수 이빨도 틀린 말이 아니겠네 뭐.

나 어려서 자랐던 동네에 옥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 집이 째지게 가난하여 옥수수와 감자로 끼니를  주로 때웠다. 나를 오빠 오빠아~ 따르면서 좋아했는데, 목사관에서 고봉밥과 달걀 반찬을 대접받고 돌아가는 날엔 더 아양스럽고 길다랗게 오빠아~를 불러재꼈지. 옥수수를 보면 그 아이 배고픔이 문득 생각이 난다. 

옥수수를 여러 조각으로 쪼개 나눠먹으면 엄마는 항상 끄트머리 꽁지. 굵고 토실한 알갱이는 자식들을 먹였다. 당신의 어머니, 할머니, 증조와 고조할머니... 옥수수로 당신이 지음 받고 길러졌음은 정녕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옥수수를 쪄놓고 기다리시던 부모님. 옥수수대만큼 키가 자란 자식들을 대견해하던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할매들에게 옥수수를 가끔 얻어먹는데, 나눠먹자고 한 토막 건네실 때는 가장 굵고 토실한 부분을 안겨주신다. 어머니의 사랑이렷다.
 
금니로 살짝 웃으시며 옥수수로 성체분병. 핵이빨로 물어뜯는 축구선수 수아레스보다 더 옥수수를 꽉 깨문다. 깨물어주고 싶게끔 사랑스런 당신. 누런 옥수수 피부를 가진 내 님, 옥수수 사람이여. 나는 어느덧 옥수수수염까지. 마음은 아직 이팔청춘인데 턱에 하얀 수염이 나기 시작했다. 이를 어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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